여행을 하면 여러 숙소에서 묵게 된다.
숙소는 잠자는 곳에 그치지 않는다.
올해 9월에 영월과 정선을 여행하면서
세 가지 숙소에 묵었다.
모두 느낌이 달랐다.
현대적 시설의 콘도.
시설로 보면 가장 좋다.
대도시의 광랜에서나 누릴 수 있는
엄청난 속도의 인터넷을 기본으로 제공한다.
밤늦게까지 매점이 문을 열어
꼭지가 돌도록 술도 마실 수 있다.
카운터에서 방을 배정받아 잠을 잔 뒤
다음 날 열쇠를 돌려주고 나왔다.
자연 휴양림의 숙박 시설.
역시 시설이 좋다.
인터넷은 되지 않지만 샤워 시설이 갖추어져 있고
문만 열어놓으면 바로 앞을 흘러가는 계곡의 물소리가 방안으로 밀려든다.
먹고 마실 수 있는 곳과는 멀리 단절이 되어
차를 끌고 나갔다 오거나 아니면 아예 사갖고 들어가야 한다.
숙박 시설에서 멀리 떨어진 휴양림의 입구에서 방을 배정받아 열쇠를 받고
잠은 잔 뒤에는 그냥 청소를 하러 온 분께 열쇠를 건네고 나왔다.
오래되고 낡은 여관.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사람이 없다.
오른쪽으로 넓은 식당이 있고,
투명한 유리창으로 들여다보니
나이든 아주머니 한 분이 텔레비젼에 시선을 꽂고 계시다.
문을 밀며 인기척을 했더니 돌아보신다.
묵을 방이 있냐고 했더니 있다고 한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3만5천원이라고 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이런 경우 대개 3만원으로 흥정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럼 방하나 달라고 하고 밖으로 나와
차에서 여행짐을 꺼내 다시 여관으로 들어섰다.
내가 5천원을 깎지 않은 것은 그 날 내리고 있던 빗줄기 때문이었다.
밤새도록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잘 수 있을테니
3만5천원을 그냥 지불해도 괜찮을 듯 싶었다.
아주머니는 방의 호수를 일러주며 들어가라고 한다.
열쇠는 안주냐고 했더니 무슨 열쇠가 필요있겠냐고 한다.
그래도 저녁 먹으러 나갔다 올건데라고 했더니
열쇠를 찾아 방으로 향하고 있는 우리를 따라 들어온다.
그러더니 방을 잠그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단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또다시 방문이 하나 나온다.
여관 주인은 바깥문은 꼭지를 눌러서 잠그고
안의 방문은 잠그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여관 주인이 가르쳐준 것은 꼭지를 눌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관이 아주 낡아 온수가 나올까 걱정이었지만
그래도 틀면 온수는 그때그때 나왔다.
화장실 문의 아래쪽은 낡아서 덧칠해진 페인트를 떨어내고
원래의 나뭇결을 너덜너덜하게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여장을 풀고 아주머니에게 여기 저녁 식사 할만한 곳이 없냐고 물었더니
아래쪽에 어떤 식당이 있다며 이곳 여관의 전속 식당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저녁을 먹었다.
들어가는 길에 손님이 우리밖에 없는 것 같다고 했더니
예약한 손님이 둘 있었는데 너무 비가와서 오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그 여관에서 묵었다.
보통 이런 여관은 이불과 베개에서 냄새가 나는데
이 여관은 그런 냄새가 하나도 없었다.
낡았지만 침구는 깔끔한 여관이었다.
그날 바깥에선 밤새도록 비가 내렸다.
비는 밤잠도 자지않고 세상을 적셨다.
하루 지난 뒤 다시 그곳을 들렀다가 산책길에서
여관의 아주머니를 다시 만났다.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어제 비오는 날, 묵었던 사람이라고 했더니 아, 기억나요라고 했다.
오래되고 낡은 숙소에서만 사람과 말을 나누었고,
그곳만 사람에 대한 추억을 남겨주었다.
2 thoughts on “세 가지의 숙소”
정선 화암장도 겉보기엔 그리 낡아 보이지 않는데요.^^
영월과 정선의 숙소는 웬만하면 산을 끼고 있어 일단 기본점수는 먹고 들어가네요.
저는 셋 중에서 하나만 이용할 수 있다면 가리왕산 휴양림입니다.
주변을 생각하면 어디나 묵을만한 듯 싶어요.
음식도 그렇고… 가장 그곳을 느낄 수 있었던 건 화암장 여관이더라구요.
여관이 다 그렇지는 않을텐데 재수가 좋았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