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휴학을 하고 돌아와 알바를 하기 시작한 뒤로
매일 그녀가 딸의 도시락을 싸주고 있다.
어릴 적 내가 싸갖고 다니던 도시락과는 완연히 다르다.
나의 도시락은 생존의 도구였기 때문에
그냥 점심 한끼를 떼울 수 있으면
그것으로 모든 요건이 충족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싸주는 딸의 도시락은 생존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한끼를 떼우려는 간단한 식사라기보다
거의 작품에 가깝다.
우리는 대개 반찬과 밥이 한자리에 같이한 도시락이어서
가끔 반찬 국물이 밥쪽으로 넘어가기도 했지만
이제는 반찬과 밥을 따로 싸가지고 다닌다.
계란과 방울 토마토, 돈까스, 그리고 또 무슨 반찬인가를
작은 반찬통에 보기 좋게 넣고는 비닐로 싸놓았다.
냄새는 나지 않을 듯하다.
사실 딸은 고등학교 다닐 때도
학교 급식을 먹지 않고 그녀가 싸주는 도시락을 들고 다녔다.
그녀는 도시락싸는게 힘들다고 투덜투덜하면서도
아이 도시락 싸줄 때의 표정을 살펴보면
힘들다기보다 오히려 행복한 표정이다.
입에서 나오는 말은 힘들다고 하는데 표정은 말과 다르다.
말을 믿을 수가 없다.
가끔 진실은 표정을 봐야 알 수가 있다.
반찬에 이어 밥을 담았다.
저걸 먹고 어찌사나 싶다.
반찬과 밥의 양이 똑같다.
요즘은 밥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반찬의 힘이 반, 밥의 힘이 반인 시대인가 보다.
반찬과 밥을 담은 도시락을 겹치고
그 둘을 밴드로 묶어준다.
일본에서 쓰던 것인데 그대로 가지고 왔다.
이어 도시락 보자기로 한번 싸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도시락 가방 속에 넣어준다.
도시락 가방에 들어갈 때 수저와 젓가락을 함께 챙겨주는데
그녀가 가끔 수저와 젓가락을 까먹을 때가 있다.
아울러 이때 두유 한 팩을 함께 넣어준다.
이 정도면 작품이라 불러서 손색이 없을 듯하다.
갖고 다니는 딸도 도시락을 펼칠 때마다 아주 만족감이 클 듯하다.
지난 해 도쿄에 갔을 때 보니
딸은 그곳에서 학교를 다닐 때도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고 있었다.
반찬의 색깔 배합이나 밥에 얹은 첨가물로 보아
작품성에서 엄마에게 밀리지 않는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작은 주방에서 뚝딱거리며
밥을 하고 도시락을 싸고 있었다.
일본에 있을 때는
이런 꽃이 핀 까만 도시락 보자기를 이용하고 있었다.
딸이 거주하는 곳이 2층이어서
학교가는 딸을 베란다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지금은 아파트 8층이라 출근하는 딸을 거의 볼 수가 없다.
며칠 도쿄에 머무는 동안
매일 학교가는 아이를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요즘은 가끔 현관에서 아이와 출근 인사를 나눈다.
자식은 묘한 존재이다.
해주면서 느끼는 행복을 가르쳐주는 존재랄까.
그녀가 매일 딸의 도시락을 싸면서 그 행복을 누리고 있다.
나는 그 행복을 지켜보며 흐뭇하다.
2 thoughts on “그녀가 싸는 딸의 도시락”
스산한 날씨에 이글까지 읽으니 하늘시에 계시는 엄마생각이 간절하네요. 저희땐 급식이란게 없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엄마표 도시락이었는데. 따끈한 보온 도시락열다 국물도 몇번 쏟기도 하고. 그러면 집에가서 괜한 성질도 부렸는데. 매일 새벽 너땜에 힘들어죽겠다하면서도 내일 반찬을 물어보시고 어늘 반찬 반응도 살피신 엄마.^^
가끔 혼자 있을 때 라면이라도 한끼 끓여먹어 보면
정말 세끼 밥을 먹여준다는 것이
보통 사랑이 아닌 듯하다는 느낌이 들곤해요.
도시락에 들어가는 정성은 보통이 아니란 느낌이예요.
급식과는 차원이 다른 것 같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