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2011

올해는 난생 처음으로 명절 때마다
명절을 지내지 않고 그녀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덕분에 설과 추석에 우리는 여행길 위에 있었다.
또 올해는 딸이 휴학을 하고 귀국을 했다.
2년 정도 우리와 함께 지내다
다시 복학하여 학교를 다닐 계획이다.
올해는 그동안 살던 집을 떠나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한 해이기도 하다.
단독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처음 살아보는 아파트 생활이다.
다른 해에 비해 굵직한 일들이 많았던 해이다.
올해도 역시 간간히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올해 찍은 사진 가운데서 한달마다 한장씩의 사진을 골랐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1월 23일 경기도 팔당의 두물머리에서)

1
눈은 세상의 색을 제 품으로 모두 거두어가더니
세상을 오직 흑과 백으로만 칠해 버렸다.
그러나 흑과 백으로 채색된 눈의 세상에선
흑백이 서로를 갈라 싸움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열고 있었다.
색의 흠을 덮어줄 때,
비로소 흑백의 세상이 아름다웠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5일 전남 청산도에서)

2
대개 어느 곳에서나 해는 아침을 여는데 그치지만
청산도에선 그림 한폭을 그려서 건네주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3월 9일 부산 영도의 절영해안에서)

3
해는 붉은 융단이 일렁이는 바닷길을 걸어
서쪽 산을 넘어갔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4월 11일 경기도 팔당 예봉산 자락의 직녀봉에서 바라본 두물머리)

4
북한강과 남한강이 흘러와
하나로 합쳐지는 곳,
갈라서 걸어온 길을
하나로 합친 자리로
북과 남의 접두사를 떼어 버리고
이제 그냥 한강이 되어 흘러간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5월 9일 경기도 팔당의 두물머리에서)

5
바람이 숨을 죽였다.
산그림자를 조용히
강의 품에 내려놓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6월 16일 서울 천호동의 한강 둔치 출입구)

6
모서리와 모서리가 맞물린 곳에서
벽과 길이 함께 푸른 숨을 쉰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7월 30일 경기도 팔당의 두물머리에서)

7
연꽃 하나가 연밥 마이크를 앞에 두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꽃잎이 피고 또 지고…”를 부르는 듯도 했고,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를 부르는 듯도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8월 21일 서울 천호동의 우리 아파트 계단에서)

8
한 창에는 저 세상이 담겨 있었고,
한 창에는 이 세상이 담겨 있었다.
저 세상과 이 세상의 사이로
아파트 8층의 내가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2일 강원도 정선의 가리왕산 휴양림에서)

9
올여름은 정말 비가 많았다.
비의 위세를 등에 업고 이끼들이 푸르게 번식했고
세상을 뒤덮었다.
여름이 끝날 것 같지를 않았다.
그러나 9월에 만난 기리왕산 휴양림의 담쟁이들은
이미 손에 봉숭아물처럼 빨간 물을 들이고 있었다.
담쟁이가 손에 빨갛게 물을 들이면
곧 가을이 온다는 신호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10월 3일 경기도 남양주의 천마산에서)

10
양희은은 노래했었다.
산과 바다에 우리가 살고 있고
기쁜 일이면 그 산과 바다에 주고
슬픈 일은 님에게 주고 또 내가 받는다고.
하지만 정작 아는 사람들과 산에 올라보면
그와는 정반대이다.
하루 종일 산의 품에서 즐거움을 주고 받다 온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11월 5일 서울 북한산 우이동 둘레길에서)

11
단풍나무는 한여름내 초록빛을 손에 들고 무더위를 넘긴다.
그러다 가을이 오면 돌연 붉은 빛을 쏟아내며
계절이 바뀌었음을 선포한다.
단풍나무에게 여름은 초록빛으로 견뎌가는 계절이고
가을은 붉은 빛으로 선언하는 계절이다.
단풍나무에게 선언은 붉은 빛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12월 19일 서울 상암동의 월드컵 공원에서)

12
나뭇잎 두 개가 얼음 위에 누웠다.
나뭇잎에 무슨 체온이 있을까 싶지만
나뭇잎 주변이 더 먼저 녹는다.
얼음은 싸늘하여 햇볕도 쉽게 다가서지 못하나
나뭇잎은 그 햇볕을 얼음보다 더 먼저 몸에 품는다.
얼음을 녹이는 것은 날 것의 햇볕이 아니라
햇볕을 몸에 품은 나뭇잎의 체온이다.
날씨가 가라앉아도
체온을 가진 자는 겨울을 넘길 수 있으며
서로 부등켜 안고 하나되면
어떤 겨울도 녹일 수 있다.

8 thoughts on “Photo 2011

  1. 정말. 대단해요. 어쩜 이렇게 말입니다. 갑자기 막 피가 뜨거워지면서.
    아놔. 이건 이대로 시간이 흘러가면서 밀려나는 포스팅으로 되기에는 너무 아꿉고. 동원님 작품. 손으로 잡히고 두눈으로 직접 보고싶습니다.

    1. 여행이 좋은 사진을 남겨주는 것 같으니까 뜰기님도 여행을 많이 다녀요.
      지난 해 사진들 보니까 절반은 두물머리 사진인 듯.
      올해는 좀 일찍 일어나서 산으로 바다로 나가봐야 겠어요.

  2. 한해를 마무리하는 날에 들렸다 갑니다
    한 번 뵈었을뿐인데
    상당히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2012년에도 여전히 아름답고 멋있는 작품들 왕성하게 창작하시기를 기원합니다

    1.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 뵈었을 때 영화 주인공인 줄 알았어요.
      성원에 힘입어 내년에도 열심히 사진 찍으러 다니겠습니다.
      행복으로 가득찬 새해가 되길 빌겠습니다.

  3. 올해 트윗으로 좋은 인연을 만나서 정말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좋은 글로 만나뵙고 정말로 시간이 되면 한 번 뵙고 싶네요.
    사진 중에 담쟁이 사진을 개인적인 연하장 배경으로 사용해도 될까요?

    1. 사용해도 되구 말구요.
      항상 트위터에서 말걸어 주셔서 너무 고마운 걸요.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예쁜 딸과 행복이 넘치는 한해 꾸려가시길요.

  4. 참 아름답습니다. 참 따뜻합니다. 참 정겹습니다.
    털보님 덕에 올해도 하루하루가 즐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1. 사진 중의 천마산 사진에는 iami님과 함께 한 하루의 추억이 서려있어요.
      올해는 연말 모임을 못했는데 내년 연초 모임에서 얼굴 뵙겠습니다.
      함께한 행복한 순간들 잘 간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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