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행 지하철이 금정역으로 미끄러져 들어갑니다.
금정역은 지상에 있는 역입니다.
한낮에는 햇볕으로 환합니다.
지상에 있는 역은 지하철역이라도 한낮에는 햇볕이 들어와 놀 수 있습니다.
물론 지붕에 가로막혀
햇볕이 날 것으로 쨍하게 바닥에 뒹구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냥 빈틈으로 슬쩍 발을 들이민 정도라고 할까요.
그것만으로도 역은 환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열차가 서고, 고개를 90도에서 조금 더 꺾어 밖을 내다 보았습니다.
아니, 저게 뭐지?
창밖으로 질경이가 보입니다.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승강장의 한쪽 벽면 구석에 질경이가 있었습니다.
푸른 이파리를 손처럼 펼치고 있습니다.
바늘끝으로 찌르면 바늘이 이빨 부러지는 아픔으로 비명을 지를 듯한,
빈틈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블럭과 블럭 사이의 빈틈에서
그렇게 풀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비가 내리면 빗줄기가 승강장으로 들이치기도 하는가 봅니다.
금정역엔 햇볕이 드나들고, 비도 드나들고,
그리고 바람에 실려온 풀씨들도 드나드는 곳이 분명합니다.
그 전의 어느 역에서도,
또 그 후의 어느 역에서도
푸른 풀이 사는 역은 보질 못했습니다.
금정역에 내려 발밑에서 숨쉬는 그 푸른 풀들을 내려다보며
하루 종일 머물고 싶었습니다.
—
서울의 지하철로 집에 돌아옵니다.
말그대로 지하로 다니는 지하철입니다.
한낮에도 빛이 드나들지 못합니다.
전등들이 눈을 부릅뜨고 어둠을 경계하죠.
등들이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사면의 벽에서 어둠이 쏟아져 나와 그곳을 까맣게 점령해 버릴 겁니다.
비는 언감생심 안을 엿볼 생각도 못합니다.
어쩌다 바람에 실려 어렵게 날아든 풀씨가 있을지 몰라도
푸른 꿈을 피우긴 어렵습니다.
어떤 역에선 문이 이중으로 막혀 있습니다.
지하철의 문밖에 또 문이 있죠.
바깥문의 바깥으로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서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이지만 아래쪽의 다리에 실린 사람들의 기다림밖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창에 비친 안쪽의 사람들이 그 위에 덧칠되어
바깥에 서 있는 사람들 위로 어른거립니다.
서로 겹쳐 어른거리면서도
두 겹의 유리를 사이에 두고 더더욱 확고하게 갈라서 있는게
지하철의 안과 바깥입니다.
빛도 막히고, 바람도 막히고, 비도 막혀 있습니다.
문은 이중으로 막혀 있습니다.
그런데도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열리고 닫히는 그 틈새로 잘도 비집고 들어갔다 나오며
그곳을 삶의 통로삼아 잘 살고 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사람들은 그곳이 이중으로 삼중으로 막힌 곳이란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지
도착지에 내리기가 무섭게
모두가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빠져나가 버립니다.
금정역에선 가던 길을 접고 그곳에 내려 한참 머물고 싶었지만
서울의 지하철에선 가려는 곳에 도착하기 무섭게 그곳을 빠져나가고 싶어집니다.
12 thoughts on “금정역엔 푸른 풀들이 산다”
제가 서울에 살때 가까운 전철역이 신답역이었어요.
역이 아담한 공원으로 꾸며져있는 곳이죠.
멀미도 심한 데다가 멀리까지 외출할 일이 많지 않았던 어린시절에는
모든 지하철역이 신답역처럼 예쁜 공원인줄 알았답니다.
여름밤이 너무 더우면 아빠랑 더위식히러 들르기도 하고
친구들 만날 약속장소로도 좋았구요.
벌써 십수년도 더 된 일이라, 지금도 여전했으면 좋겠어요.^^
신답역이면 제가 다닌 대학의 근처에 있는 역인데…
저는 전농동에 있는 서울시립대 다녔거든요.
물론 제가 다닐 때는 그 역이 없었죠.
하지만 요즘은 가끔 학교에 갈 때 신답역에서 내려 마을 버스를 타고 학교로 가요.
바로 학교 앞에서 서는 버스가 있더라구요.
아.. 그러셨군요.
가끔 시립대 도서관을 이용하곤 했었는데..
물론 지금은 잘 생각은 안나요.^^;;
혹시.. 연못같은게 있었던가요?
도서관 바로 앞에 작은 연못이 하나 있죠.
요근래에 서울 가서 느낀건데,
제가 좋아하는 뒷모습 보는게 싫어질 것 같았어요.
여기서는 여간해선 뒷모습 보는게 쉬운 일이 아닌데,
지하철 내려 우르르 걸어가며 온통 뒷모습뿐인 거예요.
그래서 역시나 서울에서 오래 살 게 아니라,
가끔 여행삼아 들려야지란 생각을 했죠. ㅋ
동원님은 풀을 찾아내는 쏘모즈 눈을 가지셨네요~
정말이지 그 풀 때문에 금정역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을 정도였어요.
지하철타면 참 도시적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의 행동들이.^^
신도림역은 너무 공포스러웠던 기억뿐이구요.
사람들에 떠밀려서 철로로 떨어질것만 같은 공포. 무서웠어요.^^
사실 지상에 있는 지하철역에선 풀들이 역사의 바깥 쪽 지역에 있는 경우를 종종 보았는데 이렇게 승강장에 있는 경우는 처음 봤어요.
출근시간대의 지하철은 생존을 위한 전쟁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프리랜서라 혼잡할 때는 피해서 다니는데 가끔 그게 겹치면 사는게 참 힘겹다는 생각이 절로 들곤 하더라구요.
‘안과 밖’이로군요. ^^
지하철은 좋은 사진의 무대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하루종일 지하철만 어슬렁거려도 좋은 사진을 많이 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진을 보내야 하는데 여기에는 쪽지 보내기 기능이 없네요.
왜 쪽지 보내기 기능이 없을까 하고 봤더니
무늬는 오블 비슷한데 오블이 아니네요.
사진을 어디로 보낼까요?
요건 설치형 블로그라고 해서, 스스로 설치해서 운영하는 독립 블로그예요. 제가 오블의 쪽지로 연락처를 알려드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