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월 4일 경기도 하남의 한강변에서
고니는 오리과의 물새이다. 그러나 도대체 어딜봐서 오리과란 것일까를 궁금하게 만들 정도로 고니는 오리와는 차원이 다른 우아한 품격을 보여준다. 헤엄칠 때의 모습이 그렇고 날 때의 모습은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고니가 오리과란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 있다. 바로 먹이를 구하기 위해 물속에 코를 박고 엉덩이만 물밖으로 내놓고 있을 때이다. 이때의 고니는 영락없는 오리의 판박이다.
아마도 먹고 살기 위해 돈벌이에 나섰을 때의 우리들도 똑같을 것이다. 삶의 대해에 코를 박고 엉덩이만 물밖으로 내놓은 채 오직 돈을 쫓는데만 여념이 없는 순간이다. 어떤 우아한 고니도 그 순간을 피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고니의 우아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시 물을 헤엄치고 하늘을 날 때 고니의 우아함은 즉각 복원된다. 우리도 비슷해서 좋은 커피향을 앞에 두고 카페에 앉아 흘려 보내는 시간을 갖는 순간, 우리의 우아함도 즉각 복원된다. 그 시간에 손에 좋은 시집이라도 한 권 들면 우아함은 더욱 증폭된다.
고니가 오리과인 것을 보면 오리가 먼저이고 그 다음에 고니가 오리에서 진화를 한 듯하다. 아마도 먹고 사는 것이 삶의 전부인 것이 오리의 삶이었고 그 삶에 회의가 왔을 때 헤엄칠 때나 날 때만이라도 우아함을 갖추어 보자는 생각에 고니가 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우아함이 아름다움을 열어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고니는 예술적으로 진화한 새이다.
예술을 산다는 것은 먹고 사는 일을 손에서 놓는 것이 아니다. 예술로서의 삶이 복원되는 순간을 잊지 않는 것 뿐이다. 고니가 그렇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