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눈을 맞출 때

Photo by Kim Dong Won
2025년 1월 27일 우리 집에서

가끔 고양이와 눈을 맞춘다. 처음에는 경계심으로 가득찼던 눈이었다. 경계심은 서서히 지워졌다. 바로 옆에 나를 두고도 안심하고 자게 되었다. 처음에는 발끝을 세운 조심스러운 발자국 소리에도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던 두려움이 고양이에게 있었다. 이제는 발자국 소리가 나도 잠을 끊지 않는 무던함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마치 연인처럼 서로 눈을 맞추게 되었다. 눈속의 어디에도 두려움이나 경계심은 없다. 나는 무엇이 경계심을 지웠는지 알고 있다. 아마도 때마다 챙겨주는 밥과 가끔 내주는 간식이 경계심을 지우는데 크게 한몫했을 것이다.
집안의 고양이는 더 이상 먹을 것을 찾아 세상을 헤매지 않는다. 먹을 것을 구하지 못했을 때의 배고픔은 아득한 옛날 얘기이다. 아울러 집안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인도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비크람 세스(Vikram Seth)는 그의 시 「주황색 고양이」(THE ORANGE CAT)에서 “배가 고프지 않은 고양이는/욕망의 고통이 살짝 /섞여 드는 즐거움으로 /새소리를 편안하게 들을 수 있다”고 말한다. 새는 고양이에게 먹이라는 욕망의 대상이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은 고통스럽다. 새소리는 욕망을 자극하지만 그 욕망이 항상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새소리를 편안하게 들을 수 있을 때가 있다. 시인에 의하면 그때가 바로 배가 찼을 때이다. 배가 고프지 않을 때는 고양이도 새소리를 즐겁고 편안하게 듣는다.
시인은 그때의 고양이를 가리켜 누드나 오달리스크 그림 앞에 섰을 때의 우리들과 같다고 말한다. 하렘의 여자 노예를 그린 오달리스크는 종종 관능적인 누드화인 경우가 많다. 누드는 욕망을 자극하지만 누드가 그림이 되고 나면 그 앞에서 어떤 욕망을 느끼더라도 우리들이 그런 욕망을 채우지 못해 부딪치게 되는 고통은 없다. 그림이 신비로운 것은 우리가 그런 고통 없이 전혀 다른 유형의 욕망으로 그림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래서 누드 그림 앞에서의 우리들을 위험이 없는 흥분 상태라고 말한다. 시인의 비유는 계속된다. “달콤한 전율의 실패”(Of failure, sweet frisson)와 “숙취 없는 술”(Like drink, and no hangover)이 그 중 한 예이다. 실패는 달콤하지 않다. 씁쓸한 법이다. 하지만 실패도 달콤할 때가 있다. 술에는 숙취의 고통이 따른다. 숙취의 고통이 없다면 그것처럼 좋은 술도 없을 것이다.
집안의 고양이에겐 배고픔도 두려움도 없다. 고양이와 눈을 맞출 때 나는 누드의 그림 앞에 섰을 때의 우리들처럼 아무 고통 없는 욕망이 된다. 시인은 시의 마지막에서 그러한 것의 한 예를 두고 “어색한 관계가 지워진 사랑”이라고 했다. 사랑도 어색함이 둘 사이에 놓여 있는 시기가 있는 법이다. 고양이의 눈은 그런 어색함이 지워졌다 말한다. 난 아무리 마셔도 숙취가 전혀 없는 좋은 술이다. 고양이와 함께 살면 눈을 마주하는 것으로 가끔 내가 그런 존재가 되는 시간을 맛볼 수 있다.

0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