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 집을 처음 찾았을 때,
난 그 집의 커피맛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날 난 그 집의 떡은 맛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밖에도 몇가지 사실을 더 알아낼 수 있었다.
우선 그 집의 클라라씨가 성당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클라라씨가 성당에 가 있는 시간엔
커피를 맛볼 수 없다는 사실도 덤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그 집을 두번째 찾았을 때도
난 그 집의 커피맛을 보지 못했다.
이번에는 떡도 맛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 날도 난 몇가지 사실을 추가로 더 알아낼 수 있었다.
그건 그 집의 떡이 일찍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여유있게 걸음했다 싶은 시간에도
떡을 맛보지 못할 수 있는 것이 그 집이었다.
그 날은 클라라씨 얼굴은 볼 수 있었지만
커피 기계를 깨끗이 청소하고 난 다음에는
역시 뒤늦은 걸음을 아쉬움으로 돌리며
다음 기회를 기약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난 세번 째 그 집을 찾았을 때는
드디어 그 집의 커피를 맛볼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몇 가지 사실을 추가로 알아낼 수 있었다.
보통의 커피집은 대개 주인이 가게에서 손님들을 기다리는데
그 집은 집을 기웃거리다가 커피를 먹을 수 있는가를
그 집의 아버님이나 어머님에게 넌즈시 말을 건네 물어보고
그럼 아버님이나 어머님이 클라라씨를 불러내 준다는 것이었다.
나는 별로 커피를 즐기는 편이 아니지만
클라라씨가 내준 커피를 마시면서
다음에도 시간이 늦지 않게 서둘러
커피를 마시러 와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집은 양수리에 있다.
그 집은 “클라라의 떡 & 커피”라 불린다.
오, 세련되고 현대적인 서구풍의 카페를 상상하지 마시라.
양수리에서 서종 방면의 길로 들어서면
길가에 마치 이마에 큰 스티커를 붙인 듯
간판을 머리에 인 상점들이 늘어서 있고,
그런 상점의 간판을 하나하나 짚어가다 보면 갑자기 높이를 뚝 떨어뜨리며
지붕을 맨머리 그대로 드러낸 상점 하나가 낮게 주저 앉아있다.
설마 저기가 싶은 그곳이 바로 “클라라의 떡 & 커피”이다.
클라라씨가 없어도 떡집은 엿볼 수 있다.
테두리를 흰색으로 치장한 창안으로
떡이 보인다면 최소한 떡은 맛볼 수 있다.
한손에 잡힐 것 같은 작은 커피집의 내부는
주인이 깔끔한 여자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커피집의 앞에는 두 개의 작은 입간판이 서 있다.
하나는 30년된 떡집임을 알리고 있고
다른 하나는 이젤 위의 그림으로 하얀 커피향을 피우고 있다.
모두 접이식의 간판이며
몸을 포개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린 간판을 보았다면
그 날은 커피마실 인연에 못미친 날이다.
가게 안의 커피 기계는 금속성의 느낌을 준다.
금속성의 느낌은 차다.
그러나 그 금속성의 기계에서 향이 좋은 뜨거운 커피가 나오고,
우리는 그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눈다.
그때의 커피는 매우 인간적이다.
가끔 인간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적 느낌이 삭제된 기계에서 인간적 채취의 커피를 뽑아낸다.
기계가 커피를 만들어내는 것 같지만
결국 알고보면 커피의 맛을 결정짓는 것은 그 기계를 움직이는 인간이다.
그녀는 에스프레소를 한잔 마셨다.
클라라씨는 붉은 테두리가 인상적인 커피잔에
에스프레소를 내주었다.
누군가의 붉은 입술 같았다.
하긴 에스프레소는 뜨거운 입술처럼 진하리라.
난 꽃무늬가 새겨진 카푸치노를 한잔 마셨다.
거품을 입에 물자 그 아래쪽에서 은은한 커피맛이 찰랑거렸다.
클라라씨가 갓나온 인절미를 곁들여 주었다.
떡을 곁들이자 “클라라의 떡 & 커피”가 제대로 구색을 맞추었다.
양수리에 가면 아는 사람들만 아는 “클라라의 떡 & 커피”가 있고,
나도 이제 그곳을 아는 사람의 하나가 되었다.
11 thoughts on “클라라의 떡 & 커피”
방앗간 구경도 매우 좋습니다. 고소한 참깨향.
가래떡과 커피의 절묘한 조화.
바로 그 옆의 국수집도 가 보세요.
반드시 멸치국수와 비빔국수를 드세요.
담에 가면 국수맛 한번 봐야 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릴적에는 떡을 무척 싫어했지만
요즘은 없어서 못먹습니다.
식성만큼 용불용설을 증명하는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무식한 표현이지만 커피가 참 맛있어 보입니다.
커피값도 착하네요.
저런 커피값 어디가서 구경하기도 어렵죠.
커피맛 아는 사람들 말에 따르면
호텔 커피는 갔다대지도 못할 수준이라더군요.
저도 그곳을 아는 사람 중의 하나예요.
보통은 주인이 손님을 기다리는데, 손님이 주인을 기다리는 곳.
그 사람이 클라라씨이기 때문에 매력이 있는곳.
클라라의 떡&커피(일명 석봉카페)에 딱 맞는 카피네요.
언제 그곳에서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음번엔 환갑은 분명히 지났을, 백살쯤을 됐을 자두나무가 있는 수능리 농부네집에 들러보세요. 전 그집에서 쌀 가져다 먹거든요.
너도바람님 덕분에 곳곳의 비밀을 하나둘 손에 넣는 기분이예요. 요즘은 제 고향의 비밀도 너도바람님이 쥐고 있는 듯 느껴져요.
그럴리가요. 말씀하신 고향의 기와집.. 인연이 닿으면 만나겠구나 생각하고 있었지요. 주위 사람 모두가 알아주는 건망증인데, 이상하게도 혹은 역마살 낀 생답게 길, 길에서 만난 작은 느낌은 아주 오래 기억하게되요. 별 볼일없는 드라마 화면으로 스친 곳, 크레딧 자막에서조차요. 일종의 병이지요 뭐.
종종 제 고향이 그런 곳이었나를 남들 눈을 통해 새롭게 확인하게 되곤 합니다. 한때 오규원 시인이 주천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엮어낸 시들을 보고 많이 놀란 적이 있었어요. 그곳이 시의 잉태지란 생각을 별로 해보질 못했었거든요. 너도바람님 글에 등장하는 영월, 주천, 태백과 같은 익숙한 지명들의 얘기들도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데 그치질 않고 고향을 새롭게 보게 만드는 것 같아요. 비밀을 종종 나그네들이 쥐고 있다니까요.
클라라씨의 인절미를 보니 침이 꼴깍 넘어가네요.
말랑말랑 고소한 인절미와 아메리카노 한 잔…
한국에 나가고 싶은 강한 충동이 올라오고 있어요.
대개 커피집은 실제로는 커피만 있고 주인은 있어도 지워져 있는데 이곳은 커피와 함께 클라라씨가 있다는게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싶어요. 무슨 큰 비밀을 하나 몰래 챙겨둔 기분이예요.
커피와 떡맛은 말할 나위가 없죠. 항상 양수리가면 강변에서 사진만 찍다가 왔는데 이제는 필수로 들르는 곳이 되어 버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