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마지막날의 시간이 오후로 접어들고 있었다.
9월 6일의 오전을 김영갑 갤러리에서 보낸 우리는
바다를 따라가다 시간 맞춰 공항으로 향하기로 했다.
여행은 새로운 경험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아울러 추억을 다시 복기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제주에 대한 여행의 추억을 갖고 있었고
그 추억은 성산 일출봉에서 공통의 분모를 찾아내고 있었다.
우리의 차는 바닷가를 따라 달리다 서다를 반복하며
성산에 심어놓은 우리들 각자의 추억을 향해 가고 있었다.
바닷가로 나오자 가장 먼저 우리의 발걸음을 멈춰세운 것은
바람에 날리고 있는 오징어였다.
영옥씨와 선애씨, 그 오징어 앞에서 사진 한 장 찍었다.
오징어는 바람에 날리며 맛있게 말라가고
우리 여행에도 오징어처럼 이런저런 맛의 재미가 배고 있었다.
바다는 육지로 몰려들고
육지는 바다로 마중을 나간다.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기쁨은
만남이 격렬해지면 아주 하얗게 튀어오른다.
하얗게 튀어오른 파도가 높을수록 만남의 기쁨이 크다는 징조이다.
우리들이 악수나 인사로 만남의 기쁨을 표현하듯이
다 각자 기쁨의 표현 방식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육지와 바다처럼
하루 종일 만남의 기쁨으로 들떠사는 사이도 드물다.
바닷가에 서면 누구나 스타가 될 수 있다.
보시라.
종명씨가 바닷가에 섰더니 바다가 온통 그 뒷통수라도 보겠다고
아우성을 치며 뛰어오르지 않던가.
이 어찌 질소냐.
선애씨도 스타 대열에 뛰어들었다.
파도들이 얼굴이라도 한번보려고
하얗게 질리는 것도 마다않고 공중 점프에 도전이다.
“야, 신선애다, 신선애!”
“뭐, 신선애? 신선애가 누구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어. 바닷가에 서면 누구나 스타가 되는 걸.”
뛰어오르고 내리며를 반복하며 파도가 왁자지껄이었다.
팬 서비스 차원에서 바다에 사인도 해줄 수 있다.
신발벗고 맨발로 수면에 쓱쓱 그려주면 된다.
꼬랑내나는 사인도 마다않고 투명한 가슴에 그대로 품는다.
우리는 보통 바다를 너른 품이라고 보는데
종종 육지가 너른 품이기도 하다.
육지가 팔을 벌려 바다를 안고 있었다.
육지는 말한다.
어서 오라, 바다여.
내 너를 온몸히 하얗게 부서지도록 뜨겁게 안아주리라.
어떤 바다는 오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엉겁결에 육지에 안기고 있기도 했다.
그들의 포옹은 끝이 없었다.
이야, 엽서 한 장 얻었다.
푸른 하늘에 흰구름만 몇 점 얹었으면 끝내주었을 풍경이다.
멀리 보이는 곳은 성산 일출봉이다.
그녀와 함께 오래 전에 이 산의 아래쪽 마을에서 묵은 뒤
일출봉에 오른 적이 있었다.
오래 전의 기억이라 흐릿하지만
그때 분지에 쏟아지던 아침 햇볕은 눈이 시리도록 찬란했다.
혹시 성산은 원래부터 저기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디 멀리서 파도가 싣고 온 것은 아니었을까.
아름다운 곳에 선물 하나 놓고 가고 싶은 심정으로
아름다운 섬 제주에 파도가 가져다 놓고 싶은 선물로 들고온 것이
지금의 성산은 아니었을까.
제주는 역시 사랑의 섬인가 본다.
여기저기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사진의 무대들이 있었다.
아마 봄에는 아름다운 꽃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이곳에서 사진찍고 사랑을 약속했던 분들,
제주에선 그때의 꽃들이 다 졌지만 그때 심었던 사랑은
영원히 아름답게 가꾸어 가시길.
성산 일출봉은 올라봤지만
성산포항은 구경한 적이 없다.
차를 몰아 항구로 들어갔다.
배들이 잔물결에 엉덩이를 슬쩍슬쩍 흔들며 모여 있었다.
노란 등대와 빨간 등대도 있었다.
노란 등대 켜줄까, 빨간 등대 켜줄까.
지나는 배들에게 그렇게 묻지는 않겠지?
성산이 빤히 보이는 곳에서 점심 먹었다.
오분자기탕이란 것이었는데
오분자기는 전복보다 크기가 작은 떡조개를 가리킨다고 한다.
성게알도 들어 있었다.
다들 배고팠는지 정신없이 먹었다.
물론 술 한잔 곁들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점심을 먹는 동안 바닷물이 끊임없이 성산의 턱밑을 들고 났다.
점심 먹고 나니 갑자기 시간이 빠듯해졌다.
더 이상 해변에 머물 수 없게 되었다.
성산이 멀리 보이는 해변에 차를 세우고 바다에 안녕을 고했다.
잘 있으라.
기약은 없지만 언젠가 또 오리라.
우리의 여행 마지막날 오후,
성산이 보이는 제주의 바닷가에서 마무리되고 있었다.
제주 여행 1 – 김포에서 제주로
제주 여행 2 – 성판악 코스로 한라산 백록담에 오르다
제주 여행 3 – 관음사 코스로 한라산을 내려오다
제주 여행 4 –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6 thoughts on “제주 여행 5 – 성산 일출봉”
아, 파도에 대한 표현이 너무 멋지십니다.
만남의 기쁨을 하루종일 노래하는 곳….
오래전에 다녀온 성산일출봉을 잊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꼭 카메라에 담아 오려고요.
말이 한마리 들어가니 정말 엽서같네요.
점심 식사 메뉴도 맘에 꼭 듭니다^^;;
다시한번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제주도는 좀 특별한 섬 같아요.
아름다움으로 빚어진 섬이랄까.
저도 성산일출봉의 추억을 갖고 있는데
이번에는 올라가보질 못했어요.
또 몇년 살다 제주도 갈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어요.
역시 털보님의 생생한 여행일정 글이
나를 그곳으로 다시 이끌어주네…
좋은 이들과 함께 했던 여행이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것 같아요..
털보님의 열정이 조금은 질투가 나려하네
멋진사진과 글을보면서…ㅋㅋ
간만에 결혼전처럼 놀아본 것 같아요.
나머지 사진은 천천히 시간나는 대로 정리해서 나누자구요.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정말 대단한 일정이었던 것 같어.
지금도 내가 한라산을 넘었다는 게 신기하고
그곳에서 애들처럼 놀았다는 것도 재미나구…
어쩜 우린 너무 애들같은게 아닐까 싶어.ㅋ
이번 제주 여행은 한라산이 백미였지.
비많이 오고 백록담에 물이 절반쯤 찼을 때의 풍경도 담고 싶다.
한장의 사진을 위하여 여섯 시간을 가야하는 곳, 멋지잖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