엷은 커피 – 클라라의 커피에서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4월 3일 경기도 두물머리 클라라의 커피에서

그 집의 바리스타는 신비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커피를 아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나를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느 일요일 오후,
그 집의 바리스타는 내게 엷게 커피를 내려주었다.
엷게 내린 커피를 입에 물자
머리를 맞대고 소근소근 얘기를 나누는 듯한 느낌이 났다.
무작정 엷게 내린다고 커피가 소근거리진 않는다.
지나치게 엷으면 커피의 얘기가 사라지고 만다.
얘기는 물의 얘기에 가까워진다.
둘이 속닥거리지만 사랑의 향취는 맡을 수가 없다.
내 여인과 이마를 맞댔다고 생각했는데
소근거림에서 퍼뜩 깨닫게 된다.
엇, 이건 다른 여인인데.
그러니 지나치게 엷게 해선 안된다.
물론 너무 진해서도 안된다.
진한 커피는 속닥거리지 않는다.
진한 커피는 온몸을 커피로 물들인다.
그럼 커피 한잔을 마시고 난 뒤
누군가의 깊은 가슴에 몸을 묻은 느낌이 난다.
사람에 따라 그렇게 누군가의 가슴에 온몸을 묻은 듯한 느낌을 좋아하여
진한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유형이 아니다.
난 이마를 맞대고 소근거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너무 엷지도 않고, 너무 진하지도 않은 그 경계선에
입에 물었을 때 소근대는 커피가 놓인다.
그 날의 커피가 그랬다.
커피는 내게 나만 들을 수 있는 낮은 목소리로 소근댔다.
다 마시고 난 뒤 내려다 보았더니
소근거린 얘기의 끝이 여운처럼 잔밑을 맴돌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4월 3일 경기도 두물머리 클라라의 커피에서

11 thoughts on “엷은 커피 – 클라라의 커피에서

  1. 제가 집에서 커피머신으로 내리면 나오는 색과 거의 비슷해
    맛을 보지 않았어도 어떤 맛일지 대충 짐작이 가는군요.
    물론 원두의 블렌딩이나 로스팅에서 많이 달라 쨉이 안 되지만,
    그래도 이런 건 왠지 머그에 가득 담아 마시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2. 소근소근…은 어떻게 하는거야?
    그런데 글로 봐서는 소곤보다 더 작게 속삭이는게 소근대는거 같은 느낌이야.

    이런 글에서 요런 실수가 나와주면 보는 사람이 즐거워. 워워~ ㅋㅋㅋ

    1. 소근소근은 소곤소곤의 작은 말로 곧 국어사전에 등록될 예정입니다. 현재 사전을 개정하지 못해 잘못된 말로 나와 있습니다. 곤은 작게 말하면서 꼭꼭 찌르는 경우를 뜻합니다. 알것슈?

  3. 아, 진짜 커피인으로서 좌절이네요.
    그렇게 많은 커피를 들이마셔 놓고도 커피의 소근거림을 제대로 한 번 못 들어보다니…
    커피 배우신 지도 얼마 안 되신 분이 어떠케 그런 귀와 느낌과 언어를 가질 수가 있으세요. 질투나요.ㅠㅠㅠㅠ
    질투나서 트위터에 홍보해 버릴래요.

    1. 최근에는 들를 때마다 공짜로 주니까 좀 미안하기도 하고..
      커피 얘기 듣는 재미도 괜찮은 거 같아요.
      오랜 침묵의 사이를 비집는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는데.. 틈을 비집고 나니 정말 좋은 말들을 잔뜩 준비해둔 분을 만나는 느낌이랄까.

  4. *^_^* 커피의 마음 조차… 스르르 말문을 열어
    함께 속닥속닥^^ 김동원님의 감성이 새삼 참 부럽고 놀라워요
    그렇게 말씀하시니…커피…참 맛있고 멋있고 좀 짱입니당!^^

    1. 사람의 취향에 따라 커피를 달리 내려줘요.
      거기다 갈 때마다 내려주는 커피가 달라요.
      바리스타가 시적이라.. 이 커피 저 커피를 섞어서 새로운 커피맛을 만들어내는 것 같더라구요.
      이번에는 멕시코하고 말라위 커피를 사왔는데
      때로는 여러 커피를 섞어서 만든 이런 저런 커피를 내놓기도 해요.
      숲의 물방울이라는 커피가 있었는데.. 커피를 섞으면서 그런 느낌을 담는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듯.

    2. 햐….. 숲의 물방울… 어머 어쩜 이뻐요!^^
      그 바리스타님 시인이 맞네여…
      어떤 사람들은 … 유년의 숲에서 올려다 본 순간
      나무잎 사이 물방울의 청아함을 평생 소중하게
      기억하는데..다 엎어 버리는 사람들이…밉네요…ㅠ..ㅠ

  5. 아~ 신비롭네요^^ 다른 성향의 세계
    저에게는 태생적으로 부족한 성향,,
    “외부세계를 직관하는 상징적 표현”
    “난 이마를 맞대고 소근거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 아 완전 딱 맞아!

    저는 주로 “내부세계를 직관하는 상징적 표현”을 주로 하고 살죠~^.,^

    1. 두물머리가면 한번 들러보세요.
      찾기가 쉽지 않고.. 찾아도 문이 닫힌 경우가 많지만..
      한번 마시면 두물머리갈 때마다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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