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 지향성 딸기

처음에는 베란다 화분에서
딸기가 열리고 익는 줄 알았다.
그런데 계속 관찰을 하다보니
이상한 기미가 눈에 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2월 25일 우리 집 베란다에서

처음부터 이상한 기미를 눈치채지 못한 것은
딸기가 처음 열렸을 때
무려 4개가 한꺼번에 열려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개는 컸고, 다른 하나는 작았으며
또 다른 하나는 키우는 사람만 알 수 있을 정도의 미세한 크기였다.
그래서 그냥 딸기가 저렇듯 여러 개 열리는 구나하고 생각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3월 6일 우리 집 베란다에서

그런데 그 중 두 개의 딸기가
서서히 서로의 색을 맞추어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둘의 관계를 눈치채지 못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3월 13일 우리 집 베란다에서

그러더니 가운데 딸기 두 개를 제쳐두고
양쪽의 딸기 두 개가 완전히 커플색을 맞추었다.
딸기가 익은 것이 아니라
양쪽의 둘이 눈이 맞은 것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3월 19일 우리 집 베란다에

처음에는 넷 중에서 둘이 눈이 맞았는데
다른 한켠에선 아예 둘밖에 없었다.
한쪽 딸기가 붉게 달아올라
노골적으로 구애에 나서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3월 19일 우리 집 베란다에서

커플 딸기 둘이 우리의 식탁으로 옮겨간 뒤로
둘의 사이에서 커플 딸기의 농염짙은 사랑을 지켜보며
시샘깨나 했을 남은 딸기들도
이제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었다.
이들 둘도 시기만 엿보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3월 19일 우리 집 베란다에서

그리고 다른 쪽에선
아직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라고
연두빛으로 슬쩍 베일을 치고 있었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그 곳의 딸기 둘도 커플임이 분명하다는 것을.
우리 집 화분의 딸기들은
알고보니 거의 모두가 커플 지향성이다.
그 때문에 익어가는 것이 아니라
둘둘 짝을 지어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그리고 사랑이 익을 때쯤
그들이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커플색으로 갈아입는다.
작은 화분의 곳곳에서 딸기들이 사랑질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3월 19일 우리 집 베란다에서

그런데 살펴보다 보니 딱 하나
홀로 자라고 있는 딸기가 있다.
이 노골적인 커플들의 세상에서 무슨 일인가 싶다.
야, 너는 뭐니?
딸기가 말한다.
뭐긴 뭐야, 커플 천국의 싱글 지옥이지.
혼자인 것도 신경질나는데 말시키지마.

**베란다 화분의 딸기 얘기는 다음에서 이어지고 있다
딸기에 색이 차다
딸기의 부끄러움
드디어 딸기가 열리다
햇볕의 선물: 처음 딸기 꽃이 피었을 때의 얘기

4 thoughts on “커플 지향성 딸기

  1. 유니 룩에서 커플 룩으로의 변화가 재밌네요.
    그러고보니 딸기맛이 새콤달콤한 이유도 녀석들의 사랑 때문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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