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판식 시집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시와 단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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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판식 시집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p.5 – 박판식이 그의 시집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에 적어놓은 자서를 읽다 보면 “살해된 감정들”이란 말을 만난다. 내가 무슨 말인가를 하면 상대방이 감정이 상할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의 감정을 살해하는 것일까? 박판식의 자서 속에서 살해된 감정은 남의 감정이 아니라 나의 감정이다. “그는 매일 밤 자신을 죽임으로써 아침마다 어려졌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처받은 감정은 죽지 않는다. 앞뒤를 재지 않고 분노로 일어선다. 그럼 감정은 어떨 때 살해당하는가. 상처받은 감정으로 인한 분노를 참고 억누를 때이다. 그러니 시인이 말한 ‘그’(“아주 놀라운 고집으로/자신을 자존심의 왕자라고 여겼”던 “어느 신발 노동자의 아들이었던 거지”)는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한 것이 아니라 상한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억누른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남의 말에 상처받은 데다가 그 상처로 인하여 일어나는 분노를 스스로 억눌렀다. 분노의 목을 조른 것이다. 따라서 그의 감정은 두 번 죽었다. 한번은 타인에게, 또 한번은 스스로에게. 참는다는 것은 상대와 내가 공모하여 자신의 감정을 두 번 살해하는 일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두 번이나 죽은 그가 “아침마다 어려”지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때로 참고 억누르면 내가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명이 더욱 푸르러진다. 그렇다고 참고 살으란 얘기가 아니다. 다만 그런 역설의 경우가 있다는 얘기일 뿐이다. 참고 산다고 모두가 죽지는 않는다. 그러나 참고 살면 대부분은 죽게 마련이다. 시인은 흔치 않은 경우를 본 것 뿐이다. 내가 참아야하는지, 분노를 일으켜야 하는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각자 알아서들 결정할 일이다.

p.11 – 박판식은 그의 시 「가족사진」에서 “돼지고기를 좋아했지만 장이 좋지 않은 여자가/금니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 여자가 “제 아들의 어머니”라고 말한다. 아들의 어머니면 결국은 자신의 아내이다. 왜 아내라고 하지 않고 아들의 어머니라고 한 것일까. 아내가 아들의 저편으로 멀어졌기 때문이다. 아내가 아들의 저편으로 멀어지면 그때부터 아내는 아내가 아니라 아들의 어머니가 된다.

p.13 – 여름철에 산에 가면 날파리가 정말 귀찮게 달려든다. 꼭 얼굴 앞을 맴돌며 시선을 어지럽힌다. 손을 휘저어 쫓긴 하지만 신경질이 돋다 보면 부딪친 두 손바닥 안에서 비명횡사하는 녀석들이 있게 마련이다. 왜 저 죽을 줄 모르고 달려드는지 알 수가 없다. 시인 박판식은 그의 시 「공(球)」에서 “비 그친 옥상에 방치된 새끼 고양이는/파리의 끈질긴 구애를 받고” 있었다는 얘기로 내게 그것이 구애였다고 일러준다. 사랑 앞에선 역시 무서운게 없다. 목숨까지 버리면서 내게 달려들게 만들다니.

p.14 – 우리는 모두 운명이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한다. 시인 박판식은 그의 시 「결별의 불」에서 “운명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그게 낫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들이 원하는 대로 운명이 움직여준다면 결과는 뻔하다. 운명의 대충돌밖에 무엇이 남겠는가. 끔찍할 것이다. 운명은 우리들을 비켜가면서 아슬아슬하게 세상을 구원하고 있다. 나를 비켜간 운명으로 우리가 산다.

p.20 – 박판식은 그의 시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에서 “모자와 박쥐우산,” “애완용 개”는 “나와 어울리지 않”지만 “죽은 개”는 “나와 어울린다”고 말한다. 어디에도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얘기는 없다. 나는 문득 그가 말한 ‘나’가 내 주변의 모든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나이다. 나는 독립적이고 개인적인 존재가 아니라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 나와 어울리는 것들과 연계되어 이룩되고 있는 어떤 총체적 삶의 존재이다.

p.20 – 박판식은 그의 시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에서 “웅덩이가 모자처럼 떨어져 있다 인생은/그 위를 지나가는 멀리서 온 구름이다”라고 말한다. 가끔 비가 온 뒤끝에서 도로에 고인 물웅덩이를 만난다. 종종 웅덩이 속으로 구름이 비칠 때가 있다. 박판식은 그 웅덩이에 비친 구름에서 인생을 보았다. 잡을 수 없이 멀리 떠있는데도 작은 웅덩이 속에 모두 담겨 있는 듯 보였기 때문일까. 생각해보면 삶이 그렇다. 삶이란 것이 뜬구름처럼 생각되다가도 물웅덩이 같은 내 몸에 담겨, 아니 내 몸에 비치면서 한 생을 지나간다.

p.22 – 박판식은 그의 시 「나이아가라」에서 “오늘은 색깔만 있는 꿈을 꾸고/어제는 소리만 들리는 꿈을 꾸었다”고 했다. 가령 시인이 말한 색깔만 있는 꿈은 “짙은 파랑 바탕에 노랑과 빨강”이 등장하는 꿈이다. 시인은 색깔만 있다고 했지만 나는 푸른 바다에 떠 있는 노랗거나 빨간 튜브를 상상했다. 사실 시인은 실제의 세상에서 형체를 제거하고 색만 취한 것이다. 왜 그런 것일까. 나는 장미의 사진을 찍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날 보았던 장미와 똑같은 색의 옷을 입고 있는 여자를 본 적이 있다. 문득 여자가 장미에게서 색만 빼내 몸에 걸쳤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가끔 색과 소리만 빼내고 싶을 때가 있다.

p.25 – 박판식은 그의 시 「빗사발」에서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친구”를 가리켜 “꽉 잠기지 않는 수도꼭지”라고 말한다. 꽉 잠가둘 수 있는 우리는 정신이 새지 않고, 그 친구는 그것을 못해 약간씩 정신이 샌다. 정신이 새면 벗어놓은 ‘장화’가 “자신의 구멍”이 된다. 사실 발만 들어가서 그렇지 구멍은 구멍이다.

p.26 – 박판식은 그의 시 「당신의 이름이 태어난 자리」에서 “공중에 떠 있는 공이 자신의 탄력을 믿듯이/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들이 곧바로 지면 위로 튀어 오른다”고 말한다. 생명의 탄생은 시인에겐 공이 튀어오르는 것과 같이 탄력적인 일이다. 그리고 그 탄력에 대한 믿음으로 생명이 태어난다. 병아리와 달리 우리는 그 탄력을 갖는데 다소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생명의 탄력에 대한 믿음이 약하다.

p. 28 – 박판식은 그의 시 「口(구)」에서 “누군가의 마음이 절박하게 쏟아지기 때문에 비는 퍼붓”는 것이라고 했다. 하긴 나도 어디선가 지반이 내려앉았다는 소식이 들리면 오늘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쉰게 누구였을까를 의심하곤 했었다. 그나저나 올여름, 한국의 중부 지방쪽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이 많이 절박한가 보다.

p.30 – 박판식은 그의 시 「망(茫)」에서 “향은 불쏘시개 모양의 외젓가락을 잿더미 속에 꽂아 두고/자신의 몫이 줄어드는 것을 본다”고 했다. 향은 타면서 향내를 낸다. 시인의 눈엔 그것이 자기 몫을 줄여 향내를 내놓는 일이다.

p.32 – 박판식은 그의 시 「물벌레들의 하루」에서 “사는 데 너무 지쳐서/누가 자신을 벼랑 끝에서 밀어 주기만을 바라는 자는/다리 위의 가벼운 미풍에도 주저앉을 듯 휘청거”린다고 했다. 삶에 지치면 우리의 삶은 미풍에도 휘청거릴 정도로 약해진다. 가진 자들아, 사람들의 삶을 너무 힘들게 하지 마라. 가벼운 바람에도 그들의 삶이 무너진다.

p.32 – 박판식은 그의 시 「물벌레들의 하루」에서 “죽고 싶은데/죽지 못한 사람이 미치는 법”이라고 말한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세상일로 골치 아플 때면 “두통도 살고 싶다는 작은 절규”라는 것을 시인은 안다. 그럴 때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다만 죽음으로 그 모든 일을 끌어안고 끝을 보고 싶은 것인지 죽고 싶은 것은 아니다. 죽고 싶다와,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현실 사이에 끼어있을 때, 우리가 미친다.

p.35 – 박판식은 그의 시 「발가숭이들의 거짓말」에서 “대부분의 인생은 이미 마침표를 얻은 법칙들입니다”라고 말한다. 마침표를 얻었으니 더 이상의 퇴고없이 쓰여진 대로 인생이 흘러갈 것이다. 나이를 들수록 더 그런 것 같다.

p.36 – 박판식은 그의 시 「번쩍거리다」에서 “누나의 액자를 밟아 부숴 버리자 버들 꽃이 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 액자가 어떤 액자였는지는 분명치가 않다. 그 누나가 “죽은 누나”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장례식 때 쓴 누나의 영정 사진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그림에 관해 듣는다/이상한 사흘을 그렸다고 한다”는 얘기에 이르면 그 누나가 그린 그림을 넣어놓은 액자가 아니었을까 싶어진다. 후자라면 장례식을 치룬 사람들이 죽은 자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그 액자를 부숴버린 것이 된다. 그러나 유품을 부숴버렸다고 버들꽃이 지기 시작했을 리는 없다. 그런데도 시인은 그 현상을 인과관계로 묶어 하나를 원인으로 삼고 또다른 하나를 그 원인이 불러온 결과처럼 말한다. 그 누나에겐 두 동생이 남아 있다. 남아있는 두 동생은 “귀머거리와 벙어리”이다. 누나가 “누더기를 기워 입었다”는 말로 미루어 누나와 그 두 동생은 밥을 빌어먹으며 살아왔던 것이 아닐까 싶다. “벙어리와 귀머거리는/서로 누나의 누더기를 차지하려고 다”툴 정도로 철이 없다. 그러니 누나의 죽음은 마치 때되면 오고 때되면 가는 계절처럼 지나갈 것이며, 지나가고 나면 모두에게 잊혀질 것이다. 시인에겐 그것이 안타까웠던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계절만큼은 누나의 죽음을 기억할 수 있도록 부셔뜨린 액자와 지는 버들꽃을 인과관계로 엮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아무도 기억못할 죽음을 계절만큼은 기억하도록 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많이 잘살게 되었다고 하는데도 우리의 세상에서 시인이 그 기억을 부탁할 곳이 오직 계절밖에 없는 죽음이 우리 곁을 지나가고 있다.

p.40 – 박판식은 그의 시 「서광」에서 “사람이 지나가지 않는 골목으로/중요한 일과처럼 태양이 지나간다”고 말한다. 가끔 거르지 않는 그 일과가 참 고마울 때가 있다.

p.42 – 박판식은 그의 시 「성(聖) 서울」에서 “시의원이 아버지라면 그가 지독한 위선자라도 자랑스러울까”라고 묻는다. 나도 종종 궁금하다. 전두환이나 박정희의 자식들은 자신들의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또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사람들을 살육했는지 알고나 있는지. 또 그것을 알고도 그렇게 자신들의 아버지가 자랑스러운지. 돈과 지위, 권력이 모든 위선을 가릴 수 있는 세상의 대표적 도시가 서울이다.

p.44 – 박판식은 그의 시 「성(聖) 서울」에서 “잠실 야구장에서 느끼는 영세적 기분을/나는 그렇게 부”른다며, 그 기분을 ‘구원’이라는 말로 요약한다. 그곳에선 “60개의 홈런 기록도 61개의 기록도 불멸”이 된다. 그 불멸의 기록으로 세례를 받으며 사람들은 구원받는다. 시인은 “교황 폴이 야구장을 찾아/미사를 본 것도 이상할 게 없”다고 말하며, “베이비 루스도 조 디마지오도 머지 않아 신이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스포츠가 만들어내는 미국식 구원이 어느 덧 우리의 서울에서도 현실이 되었다.

p.44 – 박판식은 그의 시 「성(聖) 서울」에서 “잠자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할 때 사람은 비로소 죽습니다”라고 말한다. 죽음이 욕망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시인의 눈에는 죽는 것도 잠에 대한 욕망의 극단으로 보이게 만드는 곳이 서울이다.

p.44 – 가끔 서울의 도심에서 교통사고 안내판을 볼 때가 있다. 박판식도 그 안내판을 보았나 보다. 그의 시 「성(聖) 서울」에서 그 안내판은 “어제 하루 시내 교통사고 상황, 부상 144명, 사망 0명”임을 알려준다. 나는 그 안내판에서 교통사고 통계를 보고 지나쳤지만 시인은 그 안내판에서 서울이 비록 “인간의 마음이 바라는 모든 것이 바로 이곳에 있”는 도시이긴 하지만 우리들이 바라는 것이 “언제나 죽음과 치열하게 싸우며” 살아야 하는 삶 속에서 얻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또다른 목소리를 들었다. 다 살려고 하는 일이라고 말하면서 서울의 우리는 목숨을 걸고 우리가 바라는 것을 얻는다.

p.47 – 프로포즈의 이벤트에 찬물좀 끼얹어 보자. 연인들은 사랑할 때면 종종 이벤트를 마련한다. 나도 텔레비젼에서 몇 번 본 것 같다. 남자가 무릎을 꿇고 나랑 결혼해줘라고 말하며 여자에게 꽃을 건넬 때 자동차의 뒷트렁크가 열리면서 색색의 풍선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것이 요즘의 사랑이다. 시인은 그래서 사랑이란 무엇인가 라고 묻지 않는다. 시인 박판식은 그의 시 「언제나」에서 “사랑은 무슨 모양인가”라고 묻는다. 사랑은 이제 모양을 갖추어야 한다. 시인은 그렇게 하여 우리 시대가 갖추게 된 사랑의 모양, 바로 “여름날의 하늘로 솟아오르는 색색의 풍선들, 그것들은 영원히/가질 수 없는 사랑의 기념비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시인의 말이 이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다. 시인은 그것을 “어둠이면서도 스스로를/빛이라고 착각하는 꿈”이라고 덧붙인다. 하루 아침에 그 착각이 밝혀지진 않는다. 몇년 지난 뒤에 밝혀지곤 한다. 재수 좋으면 신혼여행 길에서 밝혀지기도 한다. 그래도 그 착각을 부여잡고 몇 년을 버티곤 한다. 거의 언제나 그렇다.

p.48 – 박판식은 그의 시 「슬픔의 기원」에서 “포탈라 궁에도 봄이 온다”고 말한다. 포탈라 궁은 티벳에 있는 궁이다. 티벳 망명정부에게는 빼앗긴 궁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면 시인의 얘기는 빼앗긴 땅에도 봄은 온다가 된다. 계절은 빼앗긴 땅의 슬픔을 헤아리지 않는다. 그래서 빼앗긴 땅에 오는 봄은 더 슬프다.

p.54 – 박판식은 그의 시 「아이리스」에서 “하필 서쪽으로 석양이 지는 것은 밤의 깊이가 아이리스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이리스는 여자 이름이다. 밤의 깊이가 아이리스를 사랑한 것이 행복한 일이었는지 불행한 일이었는지는 판단이 서질 않는다. 그러나 밤의 깊이가 사랑하면 “눈앞이 캄캄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p.55 – 박판식은 그의 시 「오후 4시 51분 15초」에서 “행복이란 나로 태어나 나를 하나씩 벗어던지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아마도 불행을 겹겹으로 껴입었나 보다.

p.56 – 박판식은 그의 시 「안락의자, 작별 인사」에서 “깨진 그릇 때문에, 그 하찮은 접시 때문에 잠시나마 죽어야겠다고 결심했던 하녀처럼/그는 다리를 조심조심 건너고 있었다”고 말한다. 하녀는 보았을 것이다. 접시를 자신보다 더 애지중지하는 주인의 모습을. 주인이 아주 노골적으로 말했을 지도 모른다. 너를 팔아도 이 접시 하나 살 수가 없다고. 인간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다고들 하지만 종종 가진 것들이 인간의 목숨을 하찮은 접시만도 못하게 여긴다. 가지면 가질수록 인간이 하찮아질 것이다. 그러니 인간의 존엄을 위해서도 너무 많은 것을 가지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p.60 – 박판식은 그의 시 「옷장 속 거울」에서 “가까이 다가갔다고 해서 해후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때로 누군가를 다시 만나는데 거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세상에는 가까이 있어도 먼 사람이 있고, 멀리 있어도 함께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p.62 – 박판식은 그의 시 「완전히, 죽다」에서 “당신은 죽어서도 날카로운 쇳소리를 낼 줄 알았는데//조용하다”고 말한다. 만날 때마다 너무 시끄럽게 떠들면 죽은 뒤에 정말 이런 소리 들을 것 같다. 그래도 시인은 누워있는 자의 앞에서 “‘약하고 발가벗은’이란 수사는/물만 뿌리면 잠시 동안 되살아나는 흰 국화가 아니라/죽은 자의 넋에 바치고 싶다”고 말한다.

p.64 – 박판식은 그의 시 「우아하게」에서 “사랑은 믿음에서 태어난 질병이라 믿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 질병은 아니다. 함께 살다보면 저절로 치유된다.

p.66 – 여자가 예쁘면 모든 것이 다 용서되는 것이 우리의 세상이다. 박판식은 그의 시 「우아하게」에서 한 여자의 얘기를 전한다. 여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젊고 아름다웠을 때,/내 목소리는 한 번도 말에 사로잡힌 적이 없었거든요”라고. 젊고 예쁜 여자는 어떤 말을 해도 말이 여자의 미모가 갖는 위력을 손상시키지 못한다. 젊고 예쁜 여자가 우리의 눈앞에 앉아 있다면 우리가 듣는 것은 그녀의 목소리이지 말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p.67 – 박판식은 그의 시 「음(音)」에서 “이유가 있어 싫어지는 게 아니라/싫어졌기 때문에 이유를 찾는 겁니다”라고 말한다. 하긴 좋아할 때는 그의 문제에 대해 분명하게 얘기를 해주어도 상대의 귀에는 들리질 않는다. 싫어지고 나면 그 얘기를 왜 지금 해주냐고 한다. 근데 정반대로 뒤집으면 작업걸 때 사용하기 딱 좋은 얘기이다. 당신이 좋다, 그러니 사귀자라고 말했을 때 상대가 내가 왜 좋냐고 물어오면 “이유가 있어 좋아하는 게 아니라 좋아졌기 때문에 그 이유는 앞으로 길고 오랫 동안 하나하나 남김없이 찾아갈 겁니다”라고 하면 괜찮은 작업 문구가 되지 않을까. 시는 연애를 하는데도 매우 유용하다.

p.70 – 박판식은 그의 시 「전락」에서 “돌아보면 내 과거는 천사들의 한숨이 구름으로 비유되던 날들이었다”고 말한다. 한숨도 구름처럼 느껴질 수 있었다면 아름다운 날들이 분명했겠다.

p.72 – 박판식은 그의 시 「지나간다」에서 “쌀쌀한 날씨 때문에 서로에게 달라붙어 있는/그러나 서로를 미워하는 멧새들처럼 우리는 사랑했지”라고 고백한다. 다행히 그렇게 살아도 계절이 흐르고 시간이 지나간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럴 때마다 시간이 멈추고 흐르지 않는다면 정말 고통스러울 것이다.

p.76 – 박판식은 그의 시 「카나리아」에서 “서로 진담만 얘기하다 보면 울게 되는 겁니다”라고 말한다. 진담이란 것은 진실된 것이라기보다 솔직한 속마음 같은 것이리라.

p.79 – 박판식은 그의 시 「토르소」에서 “모두 죽어간다, 하지만 크게 앓고 난 인간은 마치/한 번도 손대지 않는 불꽃처럼 다시 살아난다”고 말한다. 큰 병이 아니라 작은 감기를 앓고 난 뒤에도 삶이 새롭게 일어나는 듯한 느낌일 때가 있다. 병을 이기면서 우리는 작게 나마 죽음을 넘어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p.84 – 가을엔 떨어져 물속에 가라앉은 단풍잎을 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박판식의 시 「쿰이라는 나라의 오해」를 들여다보면 비슷한 풍경을 만난다. 시인은 그 풍경을 “물속에 가라앉아 가을을 올려다보는 잎사귀들”이라는 말에 실어서 전한다. 내가 물속의 잎사귀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 잎사귀들은 내 표정에선 어떤 계절을 읽었을까 모르겠다.

p.90 – 박판식은 그의 시 「하이델베르크로 가는 첫 번째 여행」에서 “나는 왼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기형인 여자를 사랑했다”고 말한다. 시인은 사랑한 여자의 신체적 특징 하나를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얼굴과 이름은 기억나지만 뚜렷한 신체적 특징은 하나도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아무 특징도 기억에 남기지 못한채 여자들은 흘러가 버렸다.

p.94 – 박판식은 그의 시 「헛소리」에서 “되돌릴 수 없는 것을 되돌리기 위하여/내일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이 “영원히 헛물켜기”라는 말을 곧바로 덧붙인다. 내가 생각해도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p.101 – 박판식은 그의 시 「A에서 A까지의 귀머거리」에서 “내가 당신이 되어 꿈을 꾸는 때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당신이 되어 꿈을 꾼 시인은 “당신은 왜 이런 괴로움과 슬픔 속에 당신을 방치해 두었나”라고 묻는다. 그러나 시인의 의문은 불행히도 답을 찾을 수가 없다. 그 답은 시인이 아니라 ‘당신’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꿈은 꾸지 않는 것이 좋다. 그 “꿈의 주인”은 시인이 아니라 ‘당신’이기 때문이다.
(2013년 7월 30일)

**이 단상들의 대상이 된 시들은 다음 시집에 실려있다.
박판식,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민음사, 2013

8 thoughts on “박판식 시집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시와 단상 1

  1. 난해시 해설 전문가 ㅎㅎㅎㅎ

    운동경기할때 해설자 있잖아요..

    난해시에도 해설자가 옆에서 이것 이렇더라 저렇더라하면 도움많이 되는^^..

  2. 흐 블로그 이웃 몇분에게 이시집..주문해서 선물 또 둘릴까 해서요..

    시집을 선물하고.선물 받고.둘러 읽고 함께 나눠보고..
    세상이 참 아름다워질텐데요.문자로 아름다워지는 세상..머찌잖아요.

    사실 시집 한권값이..프랜차이즈 커피점 커피 두잔값.

    창작한 사람은 단어하나 문장하나에 날밤이라도 지샜을수도 있을텐데.
    그 노고에 비하면 참 아쉬운 시집가치라서요.

    자본의 논리가 폭력화되지 않고, 언어의 논리가 미학으로 나타난다면,
    세상이 참 아름다울텐데 말예요..그렇죠?

    1. 아이구, 감사합니다.
      정말 멋진 분이네요.
      근데 이 시집은 좀 난해하긴 해요.
      친구들이 너무 어려운 시집이라고 할지도 몰라요. ^^

  3. 이런 스타일은 시를 읽는 독법을 엿볼 수 있어 좋네요.
    이런 작업 위에서 종횡변주하면서 시 평론이 탄생하는 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시 평론도 종종 이런 형식으로 해 줘도 좋겠다 싶습니다.
    ㅁ자와 ㅇ자로 포인트를 준 민음사 시집 표지는 언제 봐도 정갈하네요.

    1. 기존 방식은 시집 속에 있는 좋은 문구들은 언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무래도 스토리를 짜다보니 이야기 밖에 있으면 언급을 못하죠.
      이런 방식은 마음에 들었던 문구만 얘기할 수 있어서 좋더라구요.
      박판식 시인의 이번 시집에선 거울 이미지가 자주 등장하더군요.
      그것만 따로 떼어서 글을 한편 쓰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이제는 시집 읽을 때마다 이런 식으로 정리해서 올려보려구요.

    1. 순서없이 읽으셔도 되요.
      최근에 나온 아주 따끈따끈한 시집이예요.
      두번째 시집인데 첫번째 시집도 아주 괜찮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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