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집회에 나갔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에 항의하고
그러한 불공정한 선거를 기반으로 당선된 박근혜가
과연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이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촛불이 되어 모인 자리이다.
지난 주, 그러니까 7월 27일의 집회는
시청앞의 서울광장에서 있었으며
2만5천명이 모였다고 했다.
나는 이번에는 나 하나를 보태어 5만의 촛불을 만들고 싶었다.
아쉽게도 나 하나를 보태어 이룬 수치는 3만이었다.
그러나 오래간만에 함께한 촛불은 여전히 감동이었다.
그 날의 자리를 사진과 함께 전한다.
이 날은 한국의 현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을 두 가지나 겪었다.
하나는 종로3가에서 지하철을 내렸을 때 벌어졌다.
지하철에서 내리니 역구내에서
경찰이 대학생들을 잡아놓고 싱갱이를 벌이고 있었다.
언듯 보기에 촛불집회에 가는 학생들 같았다.
경찰의 얘기로는 학생들이 지하철에서 불법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으니
이 학생들을 처리해 달라는 신고가 들어왔고
그래서 학생들이 종로3가역에서 내린다는 말을 듣고
급하게 역으로 들어와 학생들을 잡은 것이었다.
경찰은 학생들에게 주민등록증 제시를 요구했고
학생들은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냐고 항의하며
주민등록증 제시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었다.
내가 놀란 것은 정부에 비판적인 유인물을 나눠준다고
그것을 경찰에 신고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박정희의 군사독재 시절에나 있었다고 들었던 일이 다시 벌어지고 있었다.
그 시절에 술자리에서 대통령 욕했다가
누군가가 신고를 하는 바람에 잡혀간 일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두번째로 놀란 것은 신고가 들어왔다고 하여
유인물의 내용은 확인하지도 않고 신고자의 말에만 의존하여
계속 불법 유인물을 나눠준다는 신고가 들어왔으니
신분을 확인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를 반복하고 있는 경찰이었다.
지나가던 한 아저씨는 경찰에게
지금이 무슨 5공시절이냐며 어떻게 이런 유인물 나눠준다고
학생들에게 주민등록증 제시를 요구할 수 있냐고 항의했다.
나는 경찰에게 유인물이 불법인지 아닌지를
현장에서 확인하고 판단할 수 있는 자율성은
일선 경찰에게 주어지는 것 아니냐며
이 정도의 유인물은 스스로 확인한 뒤에
학생들을 그냥 보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결국 경찰은 유연하게 합의를 해주었다.
학생들을 그냥 보내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답답함은 있었다.
주변의 나이든 노인 분들은
학생들이 공부나 하지 쓸데없이
이게 무슨 짓이냐고 학생들을 타박했다.
그들은 학생들의 단체가 등록된 단체냐고 물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모일 수 있는 권리를 정부의 허가에서 찾고 있었다.
사실 우리의 어머니이자 아버지들이다.
설득할 수 없는 세대이기도 하다.
답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생들에게도 아쉬움이 있었다.
학생들은 경찰에게 지금 새누리당 집권했을 때
우리 잡아서 승진하려고 이러는 것 아니냐고
아주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내가 보기엔 그곳에 내려온 경찰도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유약해 보였다.
박근혜가 집권하면서 젊은이들이 많이 예민해진 듯 보였다.
좀더 유연한 젊음이 아쉬웠다.
그러나 경찰 앞에서도 당당한 태도는
부럽고 또 장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노년의 세대는 답답했지만 여전히 희망은 젊은이에게 있었다.
경찰이 학생들을 그냥 보낼 때까지 함께 자리를 지켜 주었다.
어른 구실하는 느낌이었다.
한 학생이 작은 목소리로 고맙다고 인사하고 갔다.
촛불집회는 청계광장에서 열렸다.
국정원 개혁을 촉구하는 10만인 서명을 받고 있었다.
촛불집회 때면 항상 듣는
윤민석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흐르고 있었다.
웃기는 것은 바로 그 옆에서
어떤 보수 단체가 6.25의 노래를 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어릴 때 수도없이 들었던 노래였다.
반공 이데올로기의 질병을 우리의 뇌속에 깊숙이 심었던 노래이기도 했다.
치유되었다고 믿었던 질병의 바이러스가
오랜 잠복기를 거쳐 다시 고개를 든 느낌이었다.
어쩌다 전쟁의 상처가 오늘의 부정을 참고 살아야 한다는 의식을 심은 것일까.
이명박과 박근혜가 당선된 것이 이 사회의 병리현상 같이 느껴졌다.
지역에 따라 간헐적으로 빗발이 훑고 지나가기도 했지만
하늘은 푸르고, 그 하늘에 흰구름이 흘러가는 날씨 좋은 날이었다.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을 외치는 목소리가
구름과 함께 그 하늘을 날고 있었다.
청계광장의 골뱅이탑이 위로 흰구름이 좋았다.
구름은 구름의 가운데를 비워 잠시 사각의 창을 냈다.
마치 오늘의 집회를 내려다보기 위해
하늘에 낸 창 같은 느낌이었다.
구름이 지나가고 나자 하늘 전체가 창이 되었다.
한 참가자가 “12.19 부정선거 박근혜는 물러가라”라는 구호를 앞세우고
말없이 서 있었다.
민주주의는 선거의 공정성으로 숨을 쉴 것이다.
그러니 부정선거는 민주주의의 숨통을 조이는 짓이다.
그것을 참을 수가 없었던 분이리라.
촛불 집회의 한 구호는 말한다.
“국정원 해체하고 박근혜 퇴진하라”고.
어떤 사람들은 너무 구호가 과격하지 않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격한 구호가 아니다.
불법 선거 운동을 한 국가 기관은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고
부정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은 무효란 뜻이다.
한사람이 촛불을 켰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켜지 않은채
그냥 초를 들고 있었다.
곧 켜지않은 초들도 모두 촛불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촛불을 품고 있다.
곧 그 촛불들도 광장에서 함께 할 것이다.
촛불은 오늘이자 미래이다.
오늘을 고쳐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공정하고 인간다운 세상으로 열려하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아이스께끼를 파는 청년도 신이 났다.
연신 아이스께끼를 외치며 목청을 높였다.
많이 팔았나 모르겠다.
한때 우리는 풀이었다.
풀은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났다.
촛불은 풀과는 다르다.
촛불은 우리와 함께 앉았다가
우리와 함께 일어나곤 했다.
이제 우리는 촛불이었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촛불이었다.
바람에 꺼지면 옆사람의 불을 빌려 다시 켜지는 촛불이었다.
촛불은 하나, 둘, 셋으로 셀 수 있는 갯수가 아니다.
그것은 한 걸음이요, 또 두 걸음이다.
촛불이 켜질 때마다
좀더 나은 민주주의 세상으로
우리가 한 걸음, 두 걸음 더 가까이 간다.
2013년의 8월 3일 토요일에는 그렇게 하여 3만의 걸음을 전진했다.
허가된 구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경찰은 청계광장의 뒤쪽으로 차벽을 쳤다.
사람들이 계속 늘어났기 때문이다.
차벽의 뒷쪽에서 촛불을 밝힌 사람들도 많았다.
차의 통행보다 민주주의의 통행이 더 중요하고 소중하다.
촛불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마음으로 켜는 불이다.
단순한 불이 아니라 사람들이 마음으로 밝히는 불이다.
아이들을 많이 보았다.
촛불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가족 행사이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민주주의에서 권력의 원천인 국민이
민주주의를 외치며 모이는 자리는
어디나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축제의 자리이다.
한국의 촛불은 빛이자 소금이다.
빛으로는 어둔 세상의 길을 밝히려 하고
그 빛속의 소금기로는 권력이 썩는 것을 막으려 한다.
앞에도, 옆에도,
그리고 집회가 끝나고 돌아서니
뒤에도 촛불이 있었다.
청계광장은 촛불의 세상이었다.
언제나처럼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촛불은 처음보는 사람들 사이의 낯선 경계를 지우고
모두를 하나로 이어주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촛불을 밝히고 앉아있었다.
아마 아버지는 오늘 촛불을 밝히는 이 자리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루었는지
아들에게 얘기해 주었을지도 모른다.
한때 이렇게 모여 외칠 수 없는 세월이
이 땅에서 길고도 오랫동안 계속되었으며
그것이 지금 대통령의 아버지 시절이었음을
아들에게 얘기해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지켜가야할 소중한 자리가
촛불과 아버지의 얘기에 담겨 아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을 것이다.
이번 주 8월 10일 토요일의 촛불 집회는 서울광장에서 열린다.
4 thoughts on “촛불 단상, 2013년 8월 3일 토요일 서울 청계광장”
연대는 아름다움과 비장함이 동시에 섞여 있나 봅니다..저도 촛불 하나 켜놓을래요..
소중한 마음들이 자꾸 모이는 군요. ^^
저도 마음으로 하나 켜 봅니다.
소중한 마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