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2013

올해는 딸이 다시 일본으로 떠났다.
두 해를 함께 보낸 뒤끝이라
보내고 나서 항상 겪었던 허전함을
예전처럼 심하게 겪진 않았다.
하룻만에 나오긴 했지만
울릉도를 다녀오기도 한 해이다.
어디에 눈을 주어도 아름다운 섬이었다.
다시 기회가 되면 서너 달쯤 머물다 오고 싶다.
서울에 살면서 한번도 가보지 못한 도봉산을 찾은 것도 올해가 처음이다.
하지만 자주 산행에 나서진 못했다.
올해는 장미 사진을 집중적으로 찍었다.
서울 올림픽공원의 장미광장과
과천 서울대공원의 장미원을 여러 번 찾았고
멀리 일산의 호수공원도 한번 찾아갔다.
역시 예쁜 꽃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또 올해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섰다.
항상 그랬듯이 올해도 한달에 한 장씩 사진을 골랐다.
함께 나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1월 12일 서울에서)

1
서울을 벗어나
서쪽의 바닷가를 찾아가던 날이었다.
걸음을 서둘러 아직 어둠이 벗겨지지 않은 이른 시간에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가로등이 환하게 길을 밝히고 있는 한강다리를 건너 서울을 벗어났다.
서울을 어둠 속에 묻어두고 남쪽으로 빠져나가자
그곳에서 아침 바다가 나를 맞아주었다.
우리는 가끔 그렇게 길을 떠나야 한다.
이 도시는 어둠에 맞겨두고
바닷가에서 우리를 맞아줄 아침의 품으로 떠나야 한다.
그런 날 우리는 아주 오랜만에 아침의 얼굴을 만난다.
낮에 떠나선 볼 수 없는 아침의 얼굴이다.
이른 아침, 서울을 어둠에 묻어둔채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이유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2월 22일 경기도 팔당의 두물머리에서)

2
강이 얼어붙고 눈이 내리자
강은 물빛을 버리고 하얀 눈의 색으로 치장을 했다.
한층 겨울다운 풍경이 되었다.
여자들만 계절따라 옷을 갈아입는 것이 아니다.
자연도 계절따라 풍경을 따로 챙겨입는다.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3월 8일 경기도 강화의 동검도에서)

3
뻘의 물이 다 빠져나가고 하나도 없었다.
지는 해를 배웅하러 나갔나 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4월 4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4
봄은 3월쯤 기별을 하고
4월에는 완연하게 찾아왔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봄소식을 들고오는 것은
꽃들이었다.
개나리도 그 중의 하나였다.
꽃들이 없으면
아직 물이 오르지 않은 나뭇가지로는
봄을 점치기가 어려웠다.
꽃들이 깨우면서 잎들이 기지개를 켰다.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5월 17일 서울 도봉산에서)

5
산은 오랜 세월 침식의 시간을 견뎌야 했을 것이다.
물론 침식의 세월 그 전에는
하늘의 냄새를 맡기 위해
조금씩 조금씩 높이를 높여갔을 것이다.
하지만 또 그 전에는 수면 아래로 퇴적되어
가장 낮은 자세로 몸을 얻었을 것이다.
산은 알고 보면 가장 낮은 자세로 몸을 얻고
그 몸을 일으켜 세워 높이를 얻었다.
그 낮은 시절이 없었다면 산도 없었을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6월 12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6
비가 내리는 날 당신을 만났다.
당신은 그 비를 쫄딱 맞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빗방울은 당신의 몸에서 모두 보석으로 반짝였다.
당신은 비를 어떻게 걸쳐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장미가 비를 기다리는 것은 목을 축이는데 그 뜻이 있지 않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7월 11일 서울 암사동에서)

7
꼭 별을 보기 위해
밤하늘을 올려다볼 필요는 없다.
가끔 풀밭에서 별이 반짝일 때가 있다.
어느 비내리는 여름날, 푸른 풀밭에서
하얀 별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8월 23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8
종종 사람들은 지상의 뜻을 하늘에 물었다.
어떤 날은 구름이 그 답을 갖고 오는 듯했다.
갖고 온 뜻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냥 소식을 받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9월 20일 경남 통영에서)

9
거북선이 어둠 속에서 바람을 가르며
입에 불을 물고 몸을 뒤틀었다.
아주 오래 전,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적들의 간이 콩알만해졌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소 통쾌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10월 19일 강원도 동해의 추암해변)

10
때에 따라 아침은 그냥 오지 않는다.
아침은 장엄하기 이를데 없이 온다.
추암 해변에 서면
아침도 다 같은 아침이 아니었다.
가끔 아침을 장엄하게 맞을 수 있는 곳으로
가야할 필요가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11월 4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11
너의 봄은 하얗게 왔었다.
너의 여름은 초록빛으로 왔다.
너의 가을은 불타듯 붉었다.
가을은 너에게 가장 뜨거운 계절이었다.
너의 겨울은 텅빈 투명이 된다.
너의 이름은 벚나무라고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12월 19일 경남 함안의 남강변에서)

12
바람 부는 날의 강변에 서자
강은 더 이상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지 않았다.
강은 바람 부는대로 흘렀다.
누군가 물었다.
어디가 상류고 어디가 하류예요?
나는 답하지 못했다.
바람이 강에서 위와 아래를 지워버렸다.
바람이 강물을 몰아치면
강에서 위와 아래가 지워졌다.

6 thoughts on “Photo 2013

  1.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올해 좋은 글, 사진으로 마음을 행복하게 해 주시고 내년에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1. 올해는 년말이 정신없이 가네요.
      생각해보니 여행을 많이 간 것 같은데 다 일이 있을 때가서 마음의 여유는 없었던 것 같아요.
      항상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

  2. 올해 선생님 덕분에 느낌 살아 있는 글과
    평범하지만 핀셋으로 꼬집어낸듯한 시선이 담긴 사진으로
    무척 많이 느끼고 배웠던 한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꼭 하루 시작하는 즈음에 꼭 한편의 포스팅….
    꾸준함….그리고 일정된 시간에 올려주는 규칙성…
    이거 보통 정성 아니고서야 쉽지 않거든요.
    살아 있다는 그간의 증명서 같은 포스팅이었어요.
    네 그럼요.살아도 죽은 자들이 많은 시대인듯 합니다만…
    보여 주신데 감사 드립니다…

    1. 찾아주시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올해가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한해 마무리 즐거운 시간이 되기를 빌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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