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유머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10월 20일 홍천의 한 식당에서
서 계신 분이 정대인 선생님
앉아계신 분은 이장학 선생님

20일 토요일에 홍천에 있는 비발디파크에서 초등학교 동창회를 가졌다.
난 영월에서 북쪽으로 40여리는 더 들어가야 하는 문곡리란 시골 마을에서
문곡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내가 졸업한 해는 1973년이었다.
우리 때가 가장 아이를 많이 낳은 시절이었는지
우리가 입학했을 때는 그 시골 학교에 두 반이 편성되어 있었다.
내 기억에 1반과 2반이 있었던 경우는 우리밖에 없었던 듯하다.
우리는 6년내내 1반과 2반이 한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1반은 내내 1반이었고, 2반은 내내 2반이었다.
동창회 자리에선 1반과 2반이 함께 자리한다.
매년 한번씩 모임을 마련하고 있는 우리의 37회 동창회는
20여명 정도가 모이곤 한다.
올해는 6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 두 분을 모셨다.
우리의 담임이셨던 이장학 선생님은
지금은 용인 신길의 청곡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시다.
2반의 담임이셨던 정대인 선생임은 홍천 노천초등학교의 교장선생님이시다.
건배를 하는 자리에서 총무가 선생님 두 분은 세워두고,
우리는 앉아서 건배를 했다.
내가 이러다 우리 버르장머리 없다고 선생님께 혼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총무는 괜찮다며 선생님은 서계서도 된다고 했다.
나중에 정대인 선생님께서 우리 만난 소회를 피력하며 한마디 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까 총무가 건배할 때 선생님들은 서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당연한 말이예요.
우리가 여러분 가르칠 때 우리는 서서 가르치고 여러분은 앉아서 배웠잖아요.
우리는 항상 여러분의 선생님인데 당연히 우리는 서고 여러분은 앉아야죠.”
우리는 와, 웃었다.
선생님의 유머는 대단했다.
오늘도 선생님께선 서서 앉아있는 우리에게 유머 한수 가르쳐 주셨다.
정말 평생을 선생님께 배운다.
그리고 정대인 선생님 앞에선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항상 대인 앞의 소인, 그러니까 어린이이다.

18 thoughts on “선생님의 유머

    1. 졸업할 때 담임 선생님이셨어요.
      초임으로 부임한 곳이 저희 학교였다고 하더군요.
      저희에 대한 정이 남다르신 것 같았어요.
      청곡초등학교로 한번 놀러가야 겠네요.

  1. 부부동반 동창회 참석,
    더군다나 선생님도 오시고 친구도 많은,
    forest님의 느낌은 어떤지도 궁금해지네요.
    함께한다는 것 참 푸근합니다.

    1. 부부동반 동창회 아닌데…
      제가 운전을 못하는데다 그날로 올라와야 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forest님이 절 데려가 준 거 였어요. 순순히 가주더군요. 그 다음날 제게 부탁해놓은 일이 있는데다 요즘 저한테 부탁할 일이 많거든요, 후후.
      운전 면허 없어도 짝을 잘 만나면 요렇게 버티면서 살 수 있다니까요.

    2. 도루피님/ 저도 두번 참석했더니 명예회원으로 끼워주더군요.ㅎㅎ
      제가 작년에 갔을 때 친구들을 깜쪽같이 속였거든요.
      제가 졸업생 중에 ‘해금이’라고 했더니 어떤 친구는 반갑게 맞이하기도 하고
      또 어떤 친구는 갸우뚱하기도 하고…
      나중엔 친구들이 뒤로 넘어갔지요.
      그건 헤프닝을 한번 했더니 명예회원으로 껴준답니다.^^
      저는 서울에서만 자라서 시골 초등학교 동창회는 약간 부럽기도 하더군요.^^

      동원님/ 내가 순순히 잘해주는 걸 이렇게 말하면 나의 순수성에 먹칠하는 발언이 되는데 그걸 아시오?^^

  2. 유머가 그 선생님의 그 제자세요.
    정대인 선생님 앞에 소인, 어린이들…ㅎㅎㅎ
    이장학 선생님은 교육청의 장학사로 들어가시지 않고 교장 선생님 되시기 다행이예요.

    1. 마냥 이름따라 되는 것도 아니더라구요. 저 별로 사람 동원 못하거든요.
      아, 참, 이번에 사진찍은 거 올리면서 그 분좀 망가뜨렸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길. 그래도 그 사진이 제가 보기엔 가장 압권이예요.

    2. 이름대로 되셨어요.
      블로그에 이렇게 많은 사람 동원하는 거 쉬운 일 아닌데요..^^

      제가 보기에도 압권이요! 저 망가지고 망가뜨리는 거 좋아해요. 제 전공이예요.ㅎㅎ

  3. 정말 멋진 선생님이시네요.^^
    권위적이지않고 무척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이들어요.
    저에게도 그런 스승이 두분 계신데 지금도 가끔 그때
    하신 말씀들이 잊혀지지않고 마음깊이 존경하고있어요.
    찾아뵈야할텐데..^^
     
    제 블로그는 안열려요.
    주소는 정확한데 왜 주소를 확인하라는건지..ㅡㅡ;;
     
    헉..이 글쓰고 클릭하니 이제 또 되네요.^^

    1. 두 분다 너무 좋으세요.
      저희 학교가 초임이어서 잊을 수가 없다고 하시더라구요.
      학생들 이름을 다 외우고 계세요. 사실 전 저희반 담임 선생님 얼굴은 기억이 나는데 2반 선생님은 잘 기억이 나질 않더라구요(꽤씸한 제자죠, 저는).
      forest님도 함께 갔는데 당연히 이름이 생각날 리가 없지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기억을 못하는 학생인줄 알고 미안해 하시더라구요.
      일일이 술을 따라주셨어요.
      가까이 계시니 언제 술한병 사갖고 찾아뵈야 할 것 같아요.

  4. 이 시대 마지막 국민학교 동창회를 보는 듯하네요.
    사실 십여 년 전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뀌면서 왠지 정이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선생님의 사랑도 희미해져 가는 것 같고요. 요즘은 스스로 교사라고 부르곤 하는 걸 봐서는 직업으로 바뀐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스승과 제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평생을 배우고 가르침을 주는 동창회가 앞으로는 없을 듯싶네요. 참 보기 좋습니다.

    1. 저도 사실 자주는 참석을 못하고, 근래에 서울 근처에서 하면서 2년 연속으로 참석하게 되었어요. 아무래도 거의 20여년을 함께 자란 친구들이어서 정이 남달라요.

  5. 사진에보이는 동창분들 연세가 많아보이네요.^^
    누가 선생이고, 제자인지 구분이 안갈정도예요.
    동원님 동안이라서 부럽네요.
    저도 과거엔 동안소리 많이들었는데 요샌 폭삭 삭았단 말 많이들어요.
    혹시나 동창분들이 댓글 볼까봐 비밀로 남깁니다.ㅎㅎ

    1. 지금 사진의 선생님은 사실 젊었을 때 보통 미남이 아니셨어요. 그때 얘기했더니 이제 다 옛날 얘기 되버렸지 하시더라구요.
      반면에 저희 담임 선생님은 음악을 참 좋아하셨어요. 항상 공부끝나고 난 뒤에 풍금을 키면서 노래부르시던 모습이 기억나요. 지금도 음악 좋아하시냐고 물었더니 학교에 합창부를 하나 만들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6. 저는 동창회에 한 번도 못갔어요.
    모임을 서울이나 전남에서 주로하니 거리도멀고
    사는 게 바쁘단 이유로 참석을 미루게되더군요.
    그래도 04년도에 제가 가장 보고싶었던 초등3년 때의 담임선생님을 광주에서 만났답니다.

    동원님 즐거운 시간 보내셨군요.^^

    1. 술좀 마셨죠.
      전 운전을 못해서 꼭 forest님을 데리고 동창회를 가요.
      매번 하룻밤 자는데 저는 사는게 바쁘다 보니 그냥 저녁만 먹고 돌아오곤 해요. 그건 동창들에게 좀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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