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내는 아침상을 차려주기는 했다. 그러나 어제 저녁 그녀를 엄습하여 밤새 끙끙 앓는 신음소리로 불면의 밤을 뒤척이게 했던 몸살기의 집요함 앞에서 그녀의 몸은 더더욱 무거워져 있었다. 몇가지 찬과 밥을 차려주고 아내는 곧장 다시 방으로 들어가 몸을 눕혔다. 식탁을 뜰 때 아내는 ‘그냥 먹고 덮어 놓기만 해. 좀 괜찮아지면 내가 나중에 치울게’라고 말했다. 방안에서 엷게 신음 소리가 새어나와 간간히 식탁 위로 올라오고 있었고, 혼자 먹는 식탁의 아침은 수저의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더욱 유난히 크게 울릴 정도로 두터운 정적에 둘러싸여 있었다.
식사가 다 끝났을 때, 나의 시선은 슬쩍 싱크대쪽을 곁눈질하고 있었다. 나는 그 곁눈질의 의미를 잘알고 있었다. 아내가 저렇게 아픈 데다 아침도 못먹었으니, 내가 먹은 밥그릇의 설겆이는 물론이요, 흰죽이라도 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나의 시선을 그리로 끌고간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쭈볏거리고 있었다. 손을 뒤통수로 가져가지도 않았건만, 어색함 때문에 이미 그곳을 긁적거리며 아주 겸연쩍은 표정으로 난감해할 준비를 마친 느낌이었다. 곁에 아무도 없는데도. 때문에 싱크대로 간 나의 시선은 아직 나의 몸을 일으켜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 쭈볏거림과 어색함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잘알고 있다. “흑산에 유배되어 있어 흑산이라는 이름이 무서웠다”던 ‘정약전’의 말은 나의 쭈볏거림에 대한 설명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그에게 흑은 곧 불길함,” 즉 “죽음의 글자였”으며 그래서 그는 “흑산을 자산이라 했다.” 흑, 즉 검은색을 자, 즉 보라색으로 바꾸어 부른 것이다. 이름을 달리하여 부를 정도로 그는 흑산이란 말을 무서워했다. “그는 왜 흑을 두려워했”을까. “글자가 내뿜는 불안의 냄새를 맡아내는” 그의 ‘예민함’은 “그가 밟고 있는 땅/적소,” 즉 귀양지라는 상황이 ‘길러’냈을 것이라 했다.
그날 아침 내가 보여준 쭈볏거림은 남자라고 하는 생물학적 꼬리표와 중년의 나이대(중년이란 말은 시대가 아무리 빠르게 바뀌어도 그 흐름에서 멀찌감치 뒤쳐진 사람이란 고리타분함을 풍기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불알이 떨어진다며 항상 그곳을 금기시 해왔던 어릴 적 어른들의 말씀, 그리고 한동안 가부장적 권위로 확고하게 무장을 하고 그것을 전통이라는 이름아래 종교적 신념처럼 지켜왔던 이 땅의 집안 분위기 등등이 길러낸 복합적 산물이었다.
그러나 그날 아침 결국 나는, 마침내, 싱크대 앞에 설 수 있었다. 나는 설겆이를 했으며, 그냥 본능적 감각으로 요리법을 상상해가며 밥을 물에 풀어 흰죽을 끓였다. 아니, 본능적 감각이라기보다 몇번 얻어먹어본 기억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제 고백하자면, 이건 오해의 여지가 매우 크지만, 나를 그날 싱크대 앞에 세운 것은 시인의 힘이었다. 그날 아침, 싱크대 앞에서, 망설이고 멈칫거리고 있던 나의 머리 속으로 그렇게 내가 읽고 있던 조용미 시집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의 시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시의 현장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그 현장에서 먼저 나는 시인과 함께 어느 박물관의 전시실에 놓여있는 녹슨 칼 한자루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흙이 쇠를 먹었다
쇠는 흙이 되었다
아니, 흙이 쇠가 되었다
옷이 살을 뚫고 들어가 몸이 되었다
흙이 된 쇠는
통일 신라 때의 철제 검이다
붉은 녹이 덮인
두꺼운 유리 안의 철제 검,
녹으로도 검이었음을 당당하게 말해주는
시간은
얼마나 무서운 쇠락을 견딘 것이냐
저 녹 덩어리를 누구도 검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한다
검은 사라지고 검 아닌 것이 검을 이루고 있다
— 「붉은 검」 전문
나는 그날 아침, 그 시의 힘으로 싱크대 앞에 서서 여자가 될 수 있었으며, 여자는 나를 뚫고 들어와 나의 몸이 되었다. 그러나 아내에게 나는 여전히 남자였다. 남자는 사라졌지만 이제 남자 아닌 것이 남자를 이루고 있었다.
2
조용미 시집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에서 내 눈을 잡아끈 것은 그렇게 세상의 경계를 지워버리는 시인의 힘이었고, 그것이 나에겐 조용미의 미덕이었다.
세상엔 수많은 경계가 그어져 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혹은 흙과 쇠의 사이에 그렇게 경계가 있다. 그 경계가 분명할수록 서로는 날을 세운다. 쇠가 자기 경계를 분명히 하며 날을 세우면 그것은 검이 된다. 우리는 검이 날을 잃으면 검이 아닌 것으로 여겨왔다. 그래서 우리는 검으로 남기 위해 그 날을 세우고, 그 날을 더욱 날카롭게 갈고 지키는데 있어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심지어 그러한 경계는 ‘소나무’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은 그러한 소나무의 경계가 아니라, 그것이 지워지는 자리에 더 주목한다.
어느날 시인은 아마도 ‘내려앉을 듯’ 위험해 보이는 오래된 집에 들어섰나 보다. 그 ‘고택’의 ‘사랑채 앞마당’에선 “목수 두 사람이” “묵묵히 대패질을 하”며 소나무를 깎고 있었다. “비늘을 털어낸 소나무의 몸통은 반듯한 사각형이 되었다”가 “겨드랑이에 둥근 표지가 그려지고 먹줄을 따라 소나무의 몸은 다시 둥글게 깎인다.” 그리하여 “아래채의 마당에 부려진 뽀얀 소나무들 중 어떤 것은 도리가 되고 어떤 것은 기둥이 될 것”이다. 시인이 보여주는 그 고택의 앞마당 풍경, 즉 “깎여진 나무”가 “빠진 젖니에 새 이가 나듯 또는 사랑니처럼, 잇몸 깊숙이 박혀 고택의 일부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는 풍경은 나에겐 소나무의 경계가 지워지고 있는 또 하나의 현장이다. 시인에게 그 소나무는 어느덧 소나무가 아니라 ‘그’가 되어 나무의 경계를 넘어간 인격체의 모습으로 시인의 앞에 서 있다.
깎인 살결을 쓰다듬는 내게 송진을 묻혀주는 그는 이제 소나무가 아닌 소나무가 되어 있었다 오랜 시간 푸른 몸을 빛내며 사람들이 내내 깃들이는 따스하고 시원한 나무, 집이 된 것이다
— 「고택: 소나무」 부분
그렇게 경계를 지우는 시인의 힘이 단순히 자연에 머물러 있지 않고 현실 속으로 얼마나 깊이 밀고들어와 있는가를 보려면 “5척에도 못 미치는 키”와 “외봉낙타처럼 생긴 등”으로 그의 외모가 축약되는 곱추 화가 ‘손상기’의 삶 앞에 서 보면 된다. “손상기는 서른아홉에 죽었”으며 키가 작았던 그는 “자라지 않는 나무였다.” 그 자라지 않는 나무가 긋고 있는 경계 속의 그는 어느 누구의 시선에나 왜소하기 그지 없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그런 왜소함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그의 그림을 아는 사람이라면 왜소함이 곧 위대함이라며 그 둘 사이에 등호를 그어놓고 있는 조용미의 모순적 싯구가 갖는 의미를 충분히 알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자라지 않는 나무는 얼마나 커다란 것이냐
우뚝한 것이냐
— 「자라지 않는 나무」 부분
결국 손상기가 걸어간 길, 즉 왜소한 체구가 그어놓았던 세상의 경계를 지워버린 그의 위대한 삶은 시인이 가야할 길이 된다.
그가 그린 자화상의 제목은
위대한 자
그가 걸었던 좁은 골목길과
흰 페인트가 칠해진 높은 담을 끼고 오르는
가파른 길들이 내겐 낯설지 않았다
오래된 그 길들을 꺼내어 말리면
북아현동의 골목길들은
그와 나를 한 길에 세워놓는다
실패를 따라가는 실처럼
나는 그 길을 따라나선다
— 「자라지 않는 나무」 부분
조용미에게 있어 경계를 지우는 시의 힘은 자연의 비유나 상징으로 머물지 않고 바로 그렇게 우리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와 있다. 어찌보면 예술이 갖는 상징성은 현실과의 경계를 그으며 거리감을 만드는 요소가 아니라 현실을 그 안으로 끌어들이는 흡인력으로 작용해야 정상이다.
물론 시인은 그 예를 보여준다. 그 현장은 어느 “절 마당의 요사채 앞”이다. 그 앞에 ‘향나무’ 한그루가 “홀로 높고 외로이 서 있다.” 시인은 그 향나무가 “고흐의 그림에서 곧바로 튀어나온 듯”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실제로 고흐 그림 속의 나무는 ‘실편백나무’이다. 고흐의 그림 속 그 나무의 경계에 집착할 때, 그 나무는 향나무가 아니라 실편백나무이며, 그 경계는 향나무가 넘어갈 수 없는 것이지만, 시인의 눈에 그 향나무는 경계를 넘어가고 있다.
저 나무는 향나무의 몸을 입고 있지만 실편백나무의 영혼을 지녔음이 분명하다
향나무는 나의 눈길을 태연한 척 받아들이지만 나는 거기 갈 때마다 나무를 의심한다
나는 나무에게 불편한 사람이 되었다 자기 몸에 깃든 다른 나무의 영혼을 보아버렸기 때문이다
귀를 자르지 않고도 나무는 별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겠다
고흐를 모르고서도 고흐의 그림 속에 들어가 있는 저 나무는
— 「별의 관문을 통과한 나무들은」 부분
사람들은 시나 예술 앞에 서면 현실감이 없다고들 말한다. 현실과는 관계가 없거나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이질감을 느끼곤 한다. 그것이 갖고 있는 상징성이 난해하거나 추상의 깊이가 깊게 더해지면 더더욱 그런 오해를 받는다. 하지만 결국 시나 예술의 상징성은 현실을 밀어내고 그 세계만의 경계를 지키려는 거리감의 고집이 아니라 사실은 현실을 끌어들이려는 흡인력에 다름 아니다. 다만 그 흡인력이 어떤 때 어떻게 작용하여 우리들을 끌어들이는 것인지 그것이 신비에 싸여있어 사람들이 그것을 거리감으로 오인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조용미가 보여주는 이러한 힘, 즉 세상의 날선 경계를 지워버리고 있는 힘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육체를 지닌 인간의 비애를 신은 알기나 할까”라는 시인의 반문이나, “피로 씌어지는 생이라는 책”이라는 구절 등은 삶이 그에게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걸어간 그 중간의 과정보다 그 과정이 이룩해낸 힘에 자꾸 시선이 갔고, 그래서 그 힘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 미덕에 취하여 그의 시를 ‘맛보’는 것으로 그의 시집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에 대한 나의 이번 행보를 마감했다.
3
조용미의 시 속 어디에서도 정치나 사회적 문제를 겨냥한 목소리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나 사회적 문제 앞에서 더욱 경계를 분명히 하며 첨예하게 날을 세운다. 때로 그 경우 경계를 긋고 그 경계선 안쪽의 나를 지키려는 우리의 태도는 고집으로 이어진다. 아니, 대개의 경우, 그것은 고집을 너머 아집과 독단이 된다. 물론 그 정치나 사회적 대립에서 먼저 날을 세우고 그 칼끝을 겨냥한 것이 보수적 집단이었음을 밝혀두는 것이 내가 얘기의 공정성을 해치지 않기 위해 반드시 덧붙여두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게 본다면 결국 이 땅의 진보는 어찌보면 그 쇠의 날을 녹으로 녹여낸 텃밭이었던 셈이다.
이런 생각 때문에 나에게 있어 세상의 경계를 지우고 있는 조용미의 시들은, 그에 대한 세간의 일반적 평가들, 즉 그의 시가 자신의 내면을 조용히 관조하고 있다는 평가와는 달리, 매우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고 있었고, 나는 결국 그 방향으로 그녀의 시를 따라갔다.
그녀의 시는, 그녀가 그렇게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내게 엄청난 정치력과, 근원적인 현실 변혁의 의지와, 너와 나를 가르는 세상의 무수한 경계를 없애고 어깨를 하나로 거는 세상이 있음을 일러주는 희망을 내비치고 있었다.
조용미는 시집의 마지막 자리를 “마량 간다 까막섬 간다”는 말로 마무리하고 있다. 그곳은 전남 강진에 있는 마을과 섬이다. 시의 내용으로 미루어보면 시인은 원래 “푸조나무가 있는 당전마을을” 가려고 했으나 어떤 연유에서인지 그곳을 지나치고 말았나 보다. 그러나 시인은 “머릿속에 늙은 푸조나무와 검은 나비를 키우기보다 집에 두고 온 산부추분을 살려내야 하는 일이 먼저인 걸 알겠다”고 말하며 그 “늙은 푸조나무”를 뒤로 하고 ‘마량’으로, ‘까막섬’으로 걸음하고 있었다.
물론 이제 다들 짐작이 가시겠지만 나에게 있어 그 마량과 까막섬은 날선 경계를 지워버린 시인의 힘이 이끌고 있는 세상이다. 시인이 마량으로, 까막섬으로 간 그날, 나는 싱크대 앞으로 가서, 난생 처음, 설겆이를 하고, 또 아내를 위해 흰죽을 끓였다. 시인은 “창은 단 한 번도 밖을 보여주지 않았”으며 그러다 “안이 밖이 되”면서 “안 보이는 세상이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고 말했지만 그의 시집을 읽고 있던 내게 시는 처음엔 나의 바깥에 서 있었으나 어느 덧 나의 몸을 깊이 침윤시키며 싱크대 앞으로 나를 일으켜 세우는 내안의 힘이 되어 있었다.
덧붙이는 말: 이런 식으로 글을 쓰면 자꾸 사람들은 글의 내용을 실제로 오인한다. 글 속의 나와 아내는 실제의 나와 아내가 아님을 밝혀 둔다. 물론 일부 우리들의 생활에서 글의 실마리를 잡기는 했지만 나는 그렇게 고리타분하고 권위를 앞세우는 한국의 전형적 중년이 아니다. 내가 아내를 위해 설겆이를 하는 원초적 힘은 아내에 대한 사랑이다. 아, 골치아프다. 이렇게까지 해명을 하며 살아야 하다니.
(『현대시』, 2004년 6월호, 서평)
10 thoughts on “그날 나는 부엌에 섰다 — 조용미 시집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우연히 이 방에 들어 왔지만, 이방에서 글의 향기는 제 삶을 참 겸허하게 만든답니다
언젠가부터 신문에 나는 시들을 스크랩하고..해설도 읽으면서 여고생때 시문학지를 읽던 생각이 나네요… 대학 때에는 문학을 전공 했지만 외국문학의 낭만에만 젖어 있었지요… (김남조, 허영자님께도 배웠지만요~)
결혼하고 삶을 살면서 멀어졌던 다시 찾고 싶었던 곳에 오랜만에 다시 오니(참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동원님 같이 맛깔스런 글들이 삶의 현장에서 삶을 끌어내어 조탁하는 아름다운 현장에 같이 하니…이 봄이 더 눈부시게 다가 오네요
위의 글도 처음엔 어렵지만,
시공간의 경계를 지워 버리면 같이 흘러 갈 수 있는 듯 해요…
글이 사람을 일깨운다 했는데,
이런 글의 내공을 가지신 동원님의 시선을 따라 간다면, 음악도 그림도 아닌 글 속에서 삶의 진실에 침윤되는 나를 발견 하기에 행복 하답니다…
가정의 이야기를 솔직히 표현 하시는 글들이 살아서 걸어 나오는 듯…사랑스런 글들…
항상 감사합니다~~~ 정말 봄이 온 듯 해요^^
어제는 근처의 어린이대공원가서 사진을 찍었는데 봄기운이 완연하더라구요.
말씀 고마워요. 힘이 마구마구 솟는 걸요.^^
인기가 다소 없더라도 삶의 깊이가
느껴지네요. 자라지않는 나무의
손상기화백 그림이 아주 순수하죠.
이름만 봐도 딱 그림을 아시는 군요.
전 시집을 읽으면서 그때 그림을 찾아봤어요.
그림과 시가 통하는 점이 많은지 저는 시를 읽은게 그림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때가 있었어요.
동원님의 시에 관한 글들은 저같은 문외한에게는 시와 삶 사이의 경계를 지워주는 역할을 하세요. 시평이 삶의 깊이와 언어의 세련됨이 차고 넘치는데도 현학적이진 않으니…참 대단하세요.
날을 세우면 지켜질 것 같지만 날을 세울수록 지켜내야 할 것이 많아져서 결국에 시퍼렇게 세운 날로 자신의 일부분을 베이고 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글을 쓴다는게 참 웃겨서
처음에는 쓴 나도 모르는 글을 쓰다가
좀 오래 쓰다보면
겨우 이제 쓴 나는 알고 있는 글을 쓸 수 있게 되는 거 같아요.
항상 읽어주시니 그저 고마워요.
이런 글은 사실 별로 인기가 없는 거 같거든요.
쓰는 저는 즐겁고 행복하고 신나게 쓰긴 하지만요.
일요일마다 한편씩 올리려구요.
전 저 삽화는 오규원 시인님 시집에 실린 삽화랑 같은 사람이 그린거같은데
누가 그린것일까를 생각하고있네요.^^
컷은 이제하라고 되어 있네요.
한번 출판사갔다가 직접 얼굴보고 그리냐고 물어 봤었는데… 그렇지는 않고 사진보고 그린다고 하더군요.
시집이 심오하긴 하지만 이 시집은 시는 더 심오한듯 합니다.
어려워요~ ^^;
어렵나요?
아마도 시인들은 버그니님이 친절하게 설명해준 원격 블로깅이 훨씬 심오하고 어렵다고 느낄 걸요.
버그니님이야 그거 쉬운 건데 하시겠지만요.
그러고 보면 세상이 다 피장파장인 셈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