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해와 오염의 시대, 그 절망과 희망 ─ 최석하 시집 『희귀식물 엄지호』

시집 표지

1
우리의 시대는 행복한 것일까.
대학을 졸업하던 날, 어머니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은 짜장면 사주랴. 나는 그냥 피식 웃었다. 어머니의 세계 속에서 아들에게 사주는 최고의 음식으로 아직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 짜장면의 변치않는 위세와, 잰 걸음을 재촉하며 숨이 턱에 오를 정도로 좇아가도 따라잡기 힘든 요즘 세상에서, 그렇게 변화와 무관하게 행보를 멈추고 있는 듯한 어머니의 여유로움이 부럽고 또 그냥 좋아보여, 아무 말 안하고 나는 웃었다. 그래, 그것은 우리들에게 최고의 음식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우리의 아이에게 그 음식의 이름을 거의 입에 올리지 않는다. 대신 나는 피자로 아이의 입맛을 맞춘다. 짜장면이 가난하던 시절을 대변하는 음식의 대명사라면 우리의 아이들이 성장하는 이 시대는 피자라는 음식이 그 풍요를 대변한다. 아이가 이 집 피자는 맛이 없다며 포크를 내려놓으면 입맛에도 맞지 않는 그 음식의 나머지는 꾸역꾸역 내 차지가 된다. 음식은 넘쳐나고 아이는 맛이 없다는 이유로 그것을 버린다. 나의 이 시대는 행복한 것일까.
내가 친하게 접하며 가까이 하고 자란 말은 시장이었지만 우리의 아이는 백화점이란 말과 더 친분이 두텁다. 아이가 미미 인형인가 뭔가를 사달라고 조르고 내가 돈이 없다고 하면 아이는 말한다. 그럼 아빠, 카드로 긁으면 되잖아요. 내가 연필을 깎으려고 칼을 찾으면 아이는 말한다. 에이, 아빠는 연필을 무슨 칼로 깎냐. 저희 작은 고모가 초등학교 6학년이 다 되어서야 장만했던 연필깎이가 태어날 때부터 자기 것이었던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면 거의 무엇이나 손에 넣을 정도로 풍요의 시대를 살아간다. 나의 이 시대는 행복한 것일까.
사람들이 행복을 말할 때 그들의 시선은 이 시대가 그들에게 안겨주고 있는 물질적 풍요에 그 초점을 모은다. 우리의 것이었던 옛 시절의 가난은 이제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 흔적은 기억의 공간 속에나 남아있을 뿐이다. 기억을 들추어 그 흔적을 뒤져보면 “그 시절 동대문 전차 종점께의 청계천변엔/미제 콜라, 맥주 깡통 들로 지붕한 판자집들이/게딱지처럼 따닥따닥 붙어 있었”(p.46)고 “집이란 집은 모두 놋요강처럼 누렇게 부황뜬 얼굴”(p.48)이었다. 그곳의 아침은 결코 풍요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침이면 변소칸 앞에 왕창 줄서 서성이는 이들
무시로 울며 껄떡이는 아이들
줄넘기하는 코흘리개 계집아이들
─「청계천변 3」

“야근조의 딸년 하나 파김치돼 여태/공장 탈의실에 쓰러”져 있는데 “동짓달 기나긴 밤 두 딸년 기다리며/해소기침 소리 깊어가”던 ‘박씨’의 “그 시절 청계천변의 밤은/어둠보다 더 깊고 더 절망”(p.49)적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시절은 사라져 버렸다. 물리적 시간으로 보면 손만 내밀어도 잡힐 것 같은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그 가난은 느낌으로 더듬어보면 희미할 정도로 시간의 폭을 크게 벌리며 우리의 곁으로부터 멀리 물러났다. 이제 우리들이 그 시절의 회상으로부터 전해받는 시간적 느낌은 ‘아득함'(p.13)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말한다. 이 시대는 풍요의 시대라고. 없는 것 없이 사는 요즘의 너희들은 행복한 것이라고. 정말 나의 이 시대는 행복한 것일까.
최석하의 이번 시집을 읽어가다 보면 그렇게 반복되는 질문 하나가 자꾸 고개를 쳐든다. 그것은 바로 우리 시대의 행복에 대한 의구심이다. 배고픔은 사라졌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만큼 살게 되었다. 그러나 최석하는 이 풍요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행복을 되묻게 만든다. 그런 질문이 자꾸 고개를 드는 그의 시집 『희귀식물 엄지호』에 대한 기행은 산과 섬을 찾는 자연으로의 여행으로부터 시작된다.

2
나는 먼저 최석하의 발길을 따라 ‘보성암’을 오르는 그의 등산길에 함께 한다. 암자로 오르는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겨놓으며 나는 신선한 공기와 새들의 노랫소리, 그리고 나무숲을 기대한다. 그러나 나의 기대는 빗나간다. “쉬엄쉬엄 오”르는 ‘보성암’ 등산길에서 우리의 시선을 맞는 것은 각종 ‘푯말’이고, ‘산성눈’이며, ‘연탄들’이다.

산 곳곳에 꽂힌 푯말들이 사람들을 힐끗힐끗 붙잡는다
─차량통행금지, 자연보호, 취사금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맙시다, 자수광명, 산불조심, 자연보호, 자연보호
멀리 대웅보전의 처마끝에선 산성눈이 기왓골을 타고 녹아 내리고 있었다
물줄기의 반짝거림 눈부심
한켠에 연탄들이 잔뜩 쌓였는데 산토끼 한 마리 후닥닥 바위 밑으로 달아나고
─「등산」

산이란 말이 우리들에게 습관적으로 불러일으키는 느낌은 조용함과 한적함이었다. 특히 그곳에 산사가 자리잡고 있을 경우 산의 그러한 사색적 느낌은 더더욱 강화된다. 그러나 이제 그곳의 현실은 온갖 구호를 외치며 우리의 발걸음을 막는 팻말들의 고함으로 가득찬 시끄러움이다. 시인은 ‘며칠 전’의 ‘새벽 등산’에서도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

며칠 전 새벽 등산을 했다 우선
큰소리치는 사람들이 많은 데 놀랐다
나도 한번 큰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놈의 야호! 소리가
영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새벽」

시인은 새벽녁부터 사람들로 북적이는 산에서 자연속에서 누리는 사람들의 자유를 보는 것이 아니라 “회음부가 터져 피가 흐르는” ‘고문'(p.69)을 보고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산사의 처마끝으로 녹아내리는 눈은 도시의 오염으로 찌들은 산성눈이었고 쓰레기될 연탄의 더미들도 우리의 주거공간과 마찬가지로 예외가 아니었다. 이러한 경험은 시인의 또 다른 등산길에서도 예외가 없다.

무슨 등산회니 자연보호니 산을 살리자느니 죽이자느니
크고 작은 깃발을 앞세운 채
눈 덮인 빛나는 산정수리 단숨에 정복코자 발 동동 구른다
한데, 이들한테 느껴지는 살기 등등함이라니.
─「명산 1」

산길 따라 얼마를 올라섰을 때 “별안간 눈앞에 펼쳐지는 눈꽃밭”에 “마치 별천지 산그늘에 다다른 느낌”을 받는 것도 잠시, “무슨 놈의 비밀 결사대 같은 무표정한 사내 몇이 삥 둘러앉아/돼지고기 구으며 박주를 소리없이 마셔대고” 있는 현실 앞에서 시인이 본 것은 “고약한 연기 걷어내기를 하고 있는 명산”(p.114)의 진저리였다. 이제 산으로 걸음한 우리들은 그곳에서 자연과 하나되어 잠시 머물고 사색하다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정복자였으며 달갑지 않은 침입자였다.
“희디흰 눈 속에 피어난 춘란 한 포기”는 그 ‘잎새’가 지닌 “유연한 곡선”의 “조촐한 품(品)으로 나를 껴안고/산을 껴안고 삼라만상을 껴안”지만 스님들이 공부하는 곳은 사람들을 껴안기보다 그들을 내치는 문구로 차단되어 있었다.

─경고. 이곳은 스님들이 공부하는 곳입니다. 무단 출입시에는 정신적 육체적 문책을 당함.
─「등산」

‘흰 눈’이 내린 “언덕 위’에 “작은 암자”가 하나 있고 “그 위로 짧은 빗살 무늬 햇살이 노오랗게 쏟아져내리”는 산풍경을 상상해보자. 그 위에 “바람, 햇볕, 물소리, 소나무, 참새 두 마리”를 얹어놓으면 산풍경은 곧바로 “조용히 화폭에 담”기면서 한폭의 선화가 된다. 그러나 그런 선화는 지금 우리들 곁에 없다. 지금 우리들의 자연은 누군가 등뒤에서 “검정 페인트 통을/그림을 향해 힘껏 던져 버”린 그림, “꿈의 구정물”(p.106)에 불과하다. “산과 계곡의 간명한 선”으로 “한눈에 선화임을 알 수 있”었던 ‘팔공산’도 “화폭이 북! 찢겨”진 상흔으로 깊은 흉터를 안고 있다. “동봉이나 서봉에 오를라치면 섬뜩하게 맞닥뜨리게 되는/철탑 안테나들/가장 높은 봉우리를 자르고 세웠다는 그 흉물들이” 화폭을 찢어낸 “잘 드는 면도날”(p.107)의 실체이며 오늘의 자연이 몸살을 앓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산에 섰을 때 그리하여 시인은 말한다.

선화는 더 이상 선화가 아니다.
정갈한 채색도 담백한 공간 운영도 여기엔 이미 없다.
─「禪畵 3」

이제 산을 찾아간 우리들에게 “희고 깨끗한 둥근 달과/여섯 개의 고만고만한 희화적인 산봉우리들”이 엮어내는 선화와도 같은 풍경은 없다. 그것은 오랜 과거의 일일 뿐이다. 자연이란 이름의 원래 의미에 값하는 산은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다.
그러한 상실은 바다에서도 마찬가지로 이어진다. 그 경험은 시인의 행보를 따라 ‘푸른섬’으로 향하는 뱃전에서부터 시작된다. 내가 기대한 것은 “넓고 푸른 바다와 눈부신 햇빛”(p.29)이었지만 “잔잔히 일렁이는 파도”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 속에 시작된 섬으로의 뱃길은 벌써 난장판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갑판 한복판에선 한창 왁짜지껄 화투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쪽에선 고기굽는 냄새들 종이술잔과 음료깡통들이 나뒹구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선 손뼉치며 노래부르는 젊은 패들 춤추는 아낙네들 더러 뱃전에서 뱃멀리를 심히 하고 토해쌓고 선루의 선장은 조는지 꿈쩍않고 몇 대의 카메라가 이 난장판을 담고 있었다
─「푸른섬 1」

섬에 닿으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 “바위너설마다 마치 소라딱지처럼 들러붙은 낚시꾼들”이 “낚싯줄과 함께 무심코 내던지는 라면 봉지들이 깡통이며 나무토막이며 썩지 않은 스티로폴이며 오만 잡동사니들에 섞여 떠다녀 기름띠처럼 몰려 다”니고 있다. 물위 뿐만이 아니다. “수초 사이로 점점이 사라지는 물고기 떼”를 쫓아 시선을 바다속으로 디밀어보면 그곳에선 “모래에 파묻힌 박카스병과 헌 구두짝”(p.20)이 고개를 내밀며 우리의 시선을 걸고 넘어진다. 또 물밑의 ‘산호공원’에서 “무리져 다니는 온갖 물고기 떼며 해조류”를 좇던 시선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산호가지 끝에 매달린 채/꼬리재롱” 떨고 있는 “웬 검정 비닐보자기”에 걸리고 만다. “사람 손이 닿지 않”을 것 같은 가파른 섬의 ‘벼랑’을 쳐다보면 그곳엔 “햇볕에 반짝거리는” ‘우유팩 하나’가 “벼랑에 걸려 있”(p.21)다. 시인은 이제 “이 푸르른 공간을 온통 메운 수천, 수만 마리의 괭이갈매기 떼들”(p.19)이 토해해는 울음소리에서 섬의 ‘울부짖음’을 듣는다.

꽥 꽥 꽥 액 꽥 꽥 꽥 꽥 꽥 꽤 액 액 액 꽥 꽥 꽥 꽥 꽥 꽥 꽥 꽥 꽥 괘 괘 괘 괘 괘
색안경 낀 사람들의 침입을
사생결단으로 막는 이 울부짖음들
─「푸른섬 2」

시인에게 괭이갈매기의 울음소리는 단순하지 않다. ‘꽥’ 소리는 단순한 울음소리의 차원을 넘어 그들이 처한 현실의 다급함을 알리는 전언으로 와닿는다. ‘액’은 그들이 당하고 있는 현실이 하나의 재앙[액(厄)]임을 외치고 있다는 느낌이 되기에 충분하다. ‘괘’는 우리들쪽을 향하여, 흉한 괴물의 출현에, 괴물이란 말을 미처 못다잇고, 그저 첫자만을 잘라 다급하게 외치고 있는 듯이 들린다. “섬은 점령당하고 있었”으며 ‘괭이갈매기’의 울부짖음은 새의 울음소리가 아니라 섬의 신음소리였다.

섬은 온통 울부짖고 있었다.
─「푸른섬 3」

최석하가 그린 우리 시대의 삽화는 이 시대가 풍요의 시대가 아니라 죽음의 시대이며 병으로 신음하는 고통의 시대임을 일러주고 있다. ‘쇠백로’가 “외톨이가 된 지 이틀 만에” “이름 모를 물고기 잔챙이 한 마리”를 쪼아서 먹은 뒤 “역한 냄새와 함께 복통을 일으”(p.28)켜 죽어가는 시대가 우리들의 시대이다. “공장굴뚝의 허연 연기가 거의 끊긴 곳까지” ‘먼 길’을 걸어 ‘산간계곡’을 찾아간 발길끝에서도 우리 시대의 현실은 우리들을 놓아주지 않는다. “두께가 10cm는 될 성싶은 얼음판”에 ‘얼음구멍’을 파고 “모닥불과 물밑 수초 위로 더디게 움직이는 지렁이와 팽팽한 긴장과/낚싯줄과 손의 굳은살과 턱삐를 괸 채,/잠이 덜 깬 붕어 두 마리”를 건져올려보지만 벌써 시선은 “그중 한 놈의 등이 굽었는지 들여다”(p.35)보아야 한다. 녹슨 것은 “동해안을 따라 끝도 없이 쳐진” ‘철조망’에 그치지 않는다. 모래 땅이 녹슬고 바다는 모두 병들었다.

녹슨 모래 땅
녹슨 바다.
─「녹슨 바다」

이제 누가 물질의 풍요를 앞에 내세워 이 시대의 행복을 입에 올릴 수 있겠는가. 대다수의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는 우리의 도시, “밀려드는 매연과 차소리, 인파들, 정치구호들의 한복판”(p.72)으로 시선을 옮겨보면 더더욱 행복이란 말은 우리들의 삶과 거리를 벌린다. “창밖으로 흐르는 회색 콘크리트/배경이 비정하게시리 겹쳐”(p.93)오는 이 도시에선“차창이 희뿌옇고 코끝이 메케해지며 눈앞이 금방 띠끔때끔 부유 분진과 검댕 속을 밀어붙이”(p.84)는 오염된 대기가 우리의 숨쉴 양식이며 “가도가도 뵈는 건 먼지 속의 콘크리트 숲뿐, 잿빛뿐,/ 환장하게 후리는 차바퀴 소리뿐”(p.86)인 삭막함과 소음이 바로 우리 시대 삶의 현실이다.

3
우리의 시대가 풍요를 쌓아올리며 밀어낸 것은 가난이 아니라 자연의 맑음과 깨끗함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곁에선 자연만이 병들어 밀려난 것이 아니라 우리들 인간도 병들어 쓰러지며 죽어갔다. 우리 사회가 밟아온 변화의 속도는 너무도 빨라 ‘한때’ “전국 각지로부터 왼갖 사람들이” 다 “모여든다고 해서” ‘13도 공화국’이라 불리었던 탄광촌을 한순간에 “어느새 폐허의 구멍으로 뻥 뚫”어 버리고, “탄광막장 말고는 빌붙을 데 없는 몸”들에게 ‘진폐증’을 안겨버렸으며, 그대로 그곳의 “시간은 영 멈”(p.38~44)추어 버렸다. “공장의 열악한 작업 환경”속에서 ‘수은 중독’이 된 한 공장 노동자도 “때절은 지폐 다달이 손에 쥐는 재미 하나로/이 공장 저 작업장 돌아치며/삼십줄에 애늙은이 새치머리 되도록 버텨온”(p.52) 끝에 얻은 것은 결국 병과 일자리의 상실이었다.
사람들은 말할지 모른다. 경쟁의 시대가 남긴 어쩔 수 없는 결과가 아니겠는가고? 그러나 시인의 견해는 다르다. 그는 소매치기가 다른 사람의 주머니를 슬쩍하여 누리는 물질의 풍요가 공정한 경쟁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되묻는다. 사람들도 시인의 말에 지지 않는다. 나는 소매치기가 아닌데. 나는 선량한 시민인데. 그러나 그런 얘기를 단호하게 입에 담기엔 계속되는 시인의 소매치기 얘기가 우리들의 말문을 막는다. 시인은 “33세 해맑은 얼굴의 수줍은 소매치기 두목”의 얘기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그가 털어놓은 과거사는 정말 엉뚱했네
그는 일찌기 소매치기 패거리한테가 아니라
다른 선량한 사람들한테 무수히 사기당하고
배신당하고, 얻어터지고, 실신당하고, 실연당하고
무수히 감방을 들락거리며
일테면 돈에 속고 사랑에 속았네
─「나는 소매치기」

처음 시인이 소매치기란 비유를 들어 우리들 모두에게 그 죄명을 덧씌우려 했을 때 우리들의 반응은 일부란 말로 제한적인 테두리를 그으며 그속에 몇 사람을 가두고 그들에게 그 죄명을 덮어씌우고는 우리들 자신은 그 테두리로부터 여유롭게 벗어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인은 그 테두리로부터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그 자신의 목소리를 빌어 말하며 풍요의 시대를 일구어온 우리들 모두에게 그 죄명을 낙인찍고 있다.

그뒤 어느날 우린 서로 만원버스간에서 맞닥뜨렸는데
나는 쪼다같이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했네
한데 순간 나는 앞뒤 옆옆으로 나 자신의 모습들을 발견해야 했네
제일의 바람잡이와 제이의 바람잡이와 제삼의 바람잡이들
내 손바닥에 감춰진 면도날
나는 칼을 입 안에다 물면서 혁띠 뒤에 숨기면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노려왔던가
복잡한 역 대합실에서 남의 양심의 주머니들을 째고, 빼고
─「나는 소매치기」

누가 경쟁은 공정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 시대의 풍요는 우리의 이웃이 그들의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기엔 너무도 힘겨운 삶의 무게를 강요하며 풍요에 못지 않은 어둔 그림자와 그늘을 키우며 오늘에 이르렀다. “만상삼라에 어느 것 하나 자연스런 움직임이라곤 없”건만 “이 위화감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p.94)고 살아가는 자기 기만의 시대가 바로 우리 시대의 모습이다.

4
최석화의 눈에 우리의 시대는 절망적이다. 그는 그 절망을 노래와 타령으로 넘어보려 한다.

어화잘난농부들아꽹과리꽝당치고햇빛한탄들어보소없는소리들어보소없는빛도쳐다보소살판났네살판났어햇빛이나좋을씨구너무밝아미치도다어따이눔의햇덩이어찌이리눈부시냐아무것도못보겠다바람한점없는바람겹겹이도막혔구나천만가지어둠이라낙자없는야밤일세살판났어소경돼점을치고박지돼날아도보소오르곰내리곰하늘에랴땅에랴내구멍이어디메뇨얼싸둥둥쭈욱쭉난다이리한참을풍악으로나는데굴속굴이끝도없는굴뚝이되었구나나무아미타부울
─「노래 1」 전문

발빠른 시대의 변화에서 뒤로 밀리는 사람들에게 세상헤쳐갈 힘을 가져다주고 싶을 때 그의 시는 타령이 된다. 그리하여 “우그러진 양은에 쇳동강리, 헌 종이들을 먹고” 사는 ‘넝마공동체’ 사람들의 얘기는 이렇게 ‘각설이’ 타령으로 마무리된다.

일자나 한자를 들고나 봐라
어얼 씨구씨구 들어간다 저얼 씨구씨구 들어간다
─「타령」

그러나 그가 부르는 노래와 타령은 이 현실을 견뎌가는 힘이지 미래를 여는 희망의 힘은 아니다. 그래서 노래와 타령의 느낌은 처연하다.
우리에게 정녕 희망은 없는 것일까.
이제 우리에게 목가적 풍경의 자연은 더 이상 없다. 그런 시대에 시인이 자연을 전원적 채색으로 화폭에 담고 있다면 그것은 환영의 속임수에 불과하거나 위선에 다름아닐 것이다. 그 때문인지 최석하의 시들은 우리의 시대를 있는 그대로의 절망적 풍경으로 드러내는데 어김이 없다. 그리고 그 그림들 앞에서 우리들이 받게되는 느낌은 절망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절망 속에서 그가 뿌려놓은 작은 희망의 씨앗을 함께 볼 수 있었다. 그 희망은 그의 시집에서 꽃으로 피고 있었다. 사실 최석하는 그의 이번 시집을 꽃으로 열고 꽃으로 닫고 있다. 여는 꽃은 복수초(福壽草)이며 닫는 꽃은 벚꽃이다. 복수초는 겨울을 이기고 핀다. 벚꽃은 봄이 왔음을 알린다.

음력 정월 흰 눈밭에 마치 저항하듯 노오란 꽃잎내미는 풀꽃 福壽草가 멀리 신라 문무왕 수중릉이 내려다뵈는 벌산에 뿌리뻗쳐 나란히 몇 포기 피어났기로 구길국민학교 어린이들이 마구 재잘댄다 남쪽 아래로는 감은 사지 두 탑신이 지켜섰고

일본놈 복수할라고 핀다카재.
앙이다, 그냥 고와서 안피나.
그라믄 와 이름이 복수초고?
북한 괴뢰군한테 이길라고 피는기라.
맞다. 맞다.
야, 여어도 피다.
─「복수초」 전문

두번, 세번 시를 읽으며 나는 풀꽃으로부터 아이들의 대화가 피어나고 있다는 느낌에 접한다. 아니 풀꽃이 아이들의 대화를 일으킨다. 그 느낌이 바로 내가 읽은 작은 희망 중의 하나이다. “색안경 낀 사람들의 침입을/사생결단으로 가로막”던 괭이갈매기 떼의 울음소리와 그렇게 갈라선 자연과 우리들의 절연된 경험이 아직도 생생한 내게 있어 아이들의 대화를 일으켜 세우는 이 작은 풀꽃의 호흡은 내게 있어 큰 희망으로 와닿는다. 이제 국민학교의 이름도 예사롭지 않다. 구길? 길을 찾았다는 뜻일까?

도청 공보계장 엄지호는 이 시대의 희귀식물이다
음지에서 자라는 이름모를 민초를 빼닮았다 눈빛과 목소리가 그렇고 숱한 남의 자식 키워 장가보내는 마음씨가 또한 그렇다 며칠전 그가 혼주되던 날 바람은 왜 또 그리 세차게 불던지 그가 늘상 지니고 다니는 마른버짐 같은 오랜 수첩에는 이런 숫자 놀음이 적혀 있다 내게 더 큰 위안을 주는 이유다

1982. 4. 16. 1983. 4. 14. 1884. 4. 17. 1985. 4. 13.
1986. 4. 11. 1987. 4. 8. 1888. 4. 13. 1989. 4. 4.
1990. 4. 2. 1991. 4. 12. 1892. 4. 4. 1993. 4. 7.
1994. 4. 6. 1995. 4. 8.

-벚꽃 만개일-
─「희귀식물 엄지호」 전문

처음 시를 읽었을 때 벚꽃 만개일을 알리는 숫자들은 그저 그의 수첩 속의 글자였다. 그러나 두번, 세번 거듭 읽으며 나는 마치 벚꽃으로 오는 봄이 “도청 공보계장 엄지호”의 ‘마음씨’로부터 오고있다는 느낌을 전해받기 시작한다. 네번을 읽고 다섯번을 읽었을 때 그런 느낌은 더더욱 강화된다. 시집의 첫자리에서 자연과 인간이 절연된 우리 시대의 절망을 딛고 풀꽃 몇 포기가 아이들의 티없는 대화를 일으키며 하나되더니 시집의 마지막 자리에선 한 인간의 마음씨가 꽃의 봄을 열어주며 다시 자연과 하나되고 있었다.
공해와 오염의 이 시대를 말하며 세상의 절망을 보여주는 한편으로 이렇게 작은 희망의 씨톨을 마련한 것은 시인의 몫이었지만 이제 그 씨톨을 키워가야 하는 것은 너와 나,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최석하, 『희귀식물 엄지호』, 문학과지성사, 1996, 시집 해설)

2 thoughts on “공해와 오염의 시대, 그 절망과 희망 ─ 최석하 시집 『희귀식물 엄지호』

  1. 이 시대는 행복한가…
    오늘 화두로 마음속에 새겨봅니다.
    물질만능의 시대지만 공해와 오염으로 가득 찬 세상…
    그래도 해마다 벚꽃이 만개했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됩니다.
    아, 세상은 거꾸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꽃은 피었구나…
    작은 희망의 씨앗을 보여 주는 숫자들,
    내년에도 벚꽃 만개일을 적을 수 있겠지요.

    1. 누군가 그러더군요.
      소설 토지의 주제는 사람이 아니라고…
      바로 이 나라의 산천이 주제라고…
      우리가 지켜야 할게 사람이 아니라 이 나라의 산천이란 그 말이 참 가슴이 와 닿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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