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청계광장에 모여 자리에 앉아 있다 흩어지던 촛불이
이제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나 행진하기 시작했습니다.
5월 31일, 촛불은 청계광장이 아니라
시청앞의 서울광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사람들이 앉을 자리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사람들은 모여 촛불의 바다를 이루고,
드디어 물길이 되어 길을 열며 행진했습니다.
그날의 집회와 행진에 함께 했습니다.
한 아이가 음악에 맞추어 흥겹게 몸을 흔듭니다.
아이가 머리 위로 치켜든 종이에는
“공안정국 조성하는 이명박을 탄핵하라”라는 문구가 선명합니다.
아무래도 내 눈엔 아이에겐 어울리지 않는 문구입니다.
그 문구엔 원래 비장한 외침의 무게가 담겨있어
그런 문구만으로 아주 무게가 무거운 법인데
아이는 그 문구에 담긴 무게에 전혀 짓눌리지 않습니다.
그 비장한 문구를 아주 경쾌하게 흔들며 춤을 춥니다.
구호와 아이는 내 눈에 묘한 부조화를 이룹니다.
이 묘한 부조화의 느낌, 이것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한 아이가 아닙니다.
여기저기 부모님 손을 잡고 함께 나온 아이들이 보입니다.
이 아이는 머리 위로 파란 종이를 치켜 들었습니다.
‘미친 소’는 안된다고 X자를 가운데 큼지막하게 했군요.
글자의 모양으로 미루어 아무래도 직접 만들어온 것이 틀림없습니다.
엄마가 모자에 ‘고시 철회’를 외치는 빨간 종이를 꽂아주자
한 아이가 그것이 재미난지 환하게 웃습니다.
아이는 아빠와 함께 외칩니다.
“촛불집회 탄압하는 이명박은 물러가라.”
아이가 그때마다 함께 외치며 까르르 웃습니다.
흥겨운 음악이 흐를 때마다
여기저기서 어린 아이들이 춤을 춥니다.
이건 집회가 아니라 흥겨운 소풍입니다.
실제로 김밥을 싸가지고 온 가족들 많이 보았습니다.
아빠는 목말을 태우고 아이에게
이 무수한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뜨거운 세상을
한눈에 보여주고 싶습니다.
구호는 아이가 들었습니다.
아이 손의 구호가 외칩니다.
“촛불 탄압 국민 기만 이명박을 탄핵하라”
아빠가 높이가 되어주고,
엄마는 옆에서 동행이 됩니다.
“고시 철회 이명박 OUT!”의 구호는
이번에도 아이의 몫이 되었습니다.
아이의 자세가 조금 위태위태했지만
사람들 따라 매번 흔들었습니다.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앉은 젊은 부부의 품에서도 아이가 보입니다.
아이의 얼굴에서 천진한 표정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아무래도 신이 난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아이의 손엔
“미친 소 먹이고 미친 운하파는 미친 정부”라는 구호가 들려있습니다.
곳곳에서 가족들이 눈에 띕니다.
그것도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입니다.
아이들에게 모두 구호 하나씩을 챙겨주고 있습니다.
유모차를 탄 아기들도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기를 데리고 나온 한 젊은 부부는 손에
“고시 철회! 이명박 OUT!” 구호를 들고 있습니다.
아기는 모자에 스티커를 붙이고 엄마 아빠와 함께 합니다.
음악이 흐릅니다.
윤도현 밴드의 “아리랑”이 흐르고,
최도은의 “불나비”가 흐릅니다.
이 새로운 “아리랑”엔 슬픔은 없고, 경쾌함이 넘칩니다.
민중가요 “불나비”도 비장함보다는 흥겨운 춤을 불러옵니다.
음악 나올 때마다 아이들이 각종 구호를 손에 들고 몸을 흔들며 춤을 춥니다.
나는 묘한 부조화를 느낍니다.
그 둘이 어울리는 조합으로 느껴지질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만 그렇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모두 자연스럽게
경쾌하고 발랄하고 자유롭게 그 구호와 함께 합니다.
내가 느끼는 이 기묘한 부조화의 느낌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나는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8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녔고,
그러한 상황은 80년대 내내 이어졌습니다.
독재 타도를 외치던 그 시대는
시위하면 비장하기 이를데 없는 시대였죠.
싸움도 그래서 조직화되어 있었습니다.
그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면서 싸워
지금의 세상을 내게 선물해 주었습니다.
바로 자유로운 오늘의 세상을.
그들에게 고맙기 그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는 자유의 세상을 열면서 한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싸워서 자유를 얻어낸 사람들이
자기 안의 권위와 억압을 걷어내질 못한 것이었죠.
자유와 평등을 외치면서 사회를 바꾸어 놓았는데
정작 자신은 자유롭지도 못하고, 평등을 실천하지도 못했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사회는 그들의 덕분에 자유와 평등의 꿈에 물들었습니다.
아마도 구호와 아이들의 공존에서 느낀
그 묘한 부조화의 느낌은 내 속에 남아있는
그 80년대의 전근대적 찌꺼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촛불 집회는 단순히 시위의 현장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가 왔다는 것을 몸으로 알려주는 현장이기도 합니다.
전근대적 사회가 가고, 탈근대적 자유의 사회가 왔다는 것을 일러주는 현장이죠.
전근대적 사회에선 비장하게 구호를 외치며
폭력으로 폭력의 시대를 넘어서려 했는데
이 탈근대적 사회에선 춤추고 노래하며 자유의 힘으로
권위와 억압을 넘어서려 합니다.
젊은 부부들이 데리고 나온 아이들이
그걸 가장 여실하게 보여줍니다.
하긴 자유란 부르기만 해도 얼마나 가슴뛰는 말인가요.
구호의 비장함마저 전혀 짓누르지 못하는 저 아이들의 경쾌함과 발랄함이
바로 우리가 꿈꾸던 그 자유의 이상이 아니었을까 싶어집니다.
나는 점점 아기들이 보여주는
그 자유의 흥겨운 몸짓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2002년 월드컵 때 태극기를 몸에 둘렀던 그때처럼
“우리집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합니다”란 현수막을 몸에 두르고
구호를 패션으로 삼습니다.
한번 그런 경우를 봤다고 이제 이러한 패션이 자연스럽습니다.
점점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사람들이 아니라 자유가 모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아이가 촛불을 밝힙니다.
그냥 촛불이 아니라 자유의 빛입니다.
촛불들이 하나 둘 늘어갑니다.
촛불은 바다가 되었습니다.
촛불 집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의 지휘도 받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아무 곳이나 자리를 잡고 앉아서 외칩니다.
한 가족이 사람들이 거니는 길거리의 한가운데 앉아서 외치고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외칩니다.
외침은 없지만 아이의 손에 구호가 들려있고,
아빠의 손에 구호가 들려있습니다.
빨간 종이 속의 그 구호가 그들의 조용한 외침입니다.
이제 아이의 그 외침은 온갖 권위와 억압,
심지어 구호가 지닌 비장함의 무게마저 벗어던진 외침입니다.
우리가 꿈꾸던 자유의 외침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촛불을 서로 나눕니다.
얼마든지 나누어주고 나누어 받을 수 있는게 촛불입니다.
아이가 보았겠지요.
자유의 세상, 그 기쁨을.
아이가 느꼈겠지요.
자유의 세상, 그 즐거움을.
가족은 조용히 촛불을 들고 서 있었지만
그것은 조용한 침묵이 아니라 사실은 가족이 모두 나선 자유의 외침이었습니다.
어둠이 내린 거리,
젊은 부부가 촛불을 밝히고 걸어갑니다.
구호를 앞에 내걸고 유모차를 밀며 걸어갑니다.
한 아이는 타고 가고, 한 아이는 둘의 사이에서 걸어갑니다.
자유의 바다를 갑니다.
엄마 촛불, 아이 촛불, 아빠 촛불이 나란히 길가에서
밤의 어둠을 밝히고 있습니다.
거리의 곳곳에 가족들이 있고,
같은 또래의 젊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촛불을 들고 여기저기 거리로 나와 앉았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한 무리는 이리로 가고, 한 무리는 저리로 갑니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따라간 행진의 대열은
을지로 입구, 종각, 안국동으로 행진했습니다.
안국동 한국일보 앞에 이르자 경찰 버스가 앞을 막습니다.
그러자 대열은 또 광화문쪽으로 흘러갑니다.
광화문에도 경찰 버스가 막고 있습니다.
경찰이 방패와 몽둥이를 들고 막고,
시민들은 “비켜라, 비켜라”라는 그 외침만으로
경찰의 방어선을 흔듭니다.
사람들은 “평화 시위 보장하라”는 외침만으로
경찰의 벽을 넘어가려 합니다.
쉬지 않고 외칩니다.
경찰의 경고 방송이 자유의 외침에 묻혀 버립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입니다.
외침도 더욱 커집니다.
드디어 경찰이 뒤로 밀려나고
사람들은 경찰 버스 사이의 좁은 공간을 뚫고
광화문으로 진출하기 시작합니다.
멀리 공사중인 광화문이 모입니다.
여기저기서 자유의 외침으로 틈을 낸 행렬이 광화문으로 모여듭니다.
이곳이 막히면 저곳으로 가고, 저곳이 막히면 또 이곳으로 가면서
사람들은 모두가 광화문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광화문까지 진출한 사람들은
청와대로 가는 길목인 효자동에서 다시 경찰 버스에 막혔습니다.
이때의 시간이 11시 20분.
사람들을 뒤로 남기고 집으로 오는 마지막 지하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우리 시대가 갖고 있던 한계,
폭력을 혐오했으면서도 독재의 시대를 넘어서고자 폭력을 들 수밖에 없었고,
권위와 억압의 시대를 청산하고자 했으면서
우리의 속에서 권위와 억압을 제거하지 못했던 한계를
이 시대의 아기들이, 어린이들이, 십대들이 뛰어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자유란 모든 권위와 억압을 넘어 기쁨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춤추고 노래하고 외치는 자유의 행진,
촛불의 행진에 그 자유의 기쁨이 있었습니다.
가서 그 감동의 현장에 동참해 보시기 바랍니다.
17 thoughts on “촛불, 행진하다”
좀전에 뉴스보며 혹시 김동원님을 뵐 수 있지 않을까 눈을 크게 뜨고 봤는데
못봤어요. 오늘도 혹시 가시는지요?
오늘은 자정까지만 집회를 한다고 하던데 정말 고생들 많으시네요.
전 토요일밖에 못나가고 있어요.
주중에는 일해야 하기 때문에…
뒤쪽에서 사진이나 찍는데 뉴스에 나올리가 없지요.
오늘은 10시에 해산을 했다고 하더라구요.
동워니님^^ 트랙백을 주셨네요. ㅎ
우리 아이들이 사용해야 할 자원을 빚내어 쓰고 있는 우리들의 근대적 삶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고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고 봐요. (생태적 차원에서도)
싸움이 더욱 격렬해지겠죠? 슬슬 몸 풀 시간이 되었습니다. ㅋ
좋은 사진 많이 찍어주세요. 새로운 역사를 쓰는 순간이잖아요^^
감동적 장면들이 말할 수 없이 많았어요.
다 기록을 할 수 없을 정도였죠.
플라치도님께 감사한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사실 우리의 아이들이 누릴 자유를 위해 싸워주신 분이니까요.
나중에 뵐께요.
아이의 해맑은 웃음이 진지한 어른들의 표정과 대비되는것이 마음이 참 무겁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얼굴에서 그 웃음을 지키려는 젊은 열정들에 고개숙여 감사합니다.
현실의 무게는 어른들의 몫이니까요.
이제 우리나라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로 다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젊은 사람들의 열정에 저도 감사드려요. 이런 세상 만들어놓은 세대로서 미안하기도 하고… 앞으로 우리 딸 말을 좀더 잘 들으려구요.
세상이 바뀌는거겠지요..
일개 힘 없는, 돈 없는 사람들이지만…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은 나몰라라 하고 있겠지요, 슬프지만 저희 아버지도 지금의 현상을 쓸데없는 짓으로 보고 계시는 딱한 시대의 흐름에 서 계신 분 중의 한분입니다)
하루하루, 청와대를 향해서 아무 것도 없이 오직 의지와 목소리를 가지고
진정한 자유를 갈망하는 모습들을 보면 숙연해지고, 감동스럽습니다.
멀리있어 동참하지 못하는 마음, 이제 곧 실제로 동참하려 합니다.
역사의 한 장면 속에 서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가만히 있음에 드는 죄책감도 있고..
멀리서 보고 있음에 끓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함도 있습니다..
부디 무사히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크게 세워지길 바랍니다.
마음으로 함께 하면 다 함께 하는 거예요.
학연, 지연, 혈연, 아무 것도 없는 맥주라는 맥 동호회에서도 많이 나왔더라구요. 제가 여기서 활동하거든요. 아주 바람직해 보여요. 오직 마음 하나로 나오는 거니까요.
암행님 마음도 내가 갖고서 나갈테니 미안해 하지 마세요. 한번 나오는 몸보다 오랫동안 갖고 가는 오늘의 마음이 더 소중하답니다.
eastman님의 해석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미미하지만 역사적인 순간에 잠시나마 함께 했다는데 가슴이 벅차오르네요.
미선이 효순이 때의 촛불 시위와 이번의 촛불 시위가 가장 감동적이예요. 미선이 때는 사람들이 다른 이의 아픔을 어루만지러 그 자리에 나왔다는 게 너무 감동적이더라구요. 이번 시위는 돈에 짓눌려 우리가 잠시 잊었던 자유의 소중함과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꿈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는게 너무 감동적이예요. 잘 될거 같아요. 함께 나와준거 고맙구요. 젊은 사람들이 세상을 이렇게 바꾸어가는 걸 보면 그저 고맙기만 해요.
아기와 엄마들이, 가족들이 자유를 향해 촛불을 드는 저 아름다운 곳에
여전히 ‘군화발로 짓밟는’ 시대착오적인 폭력이 자행되었다지요.
자신의 아버지도, 남편도, 오빠도 그렇게는 맞아보지 않았을 군화발로 밟히고 채이는 여성의 동영상을 보고는 이게 무슨 세상인가 싶어요.
국민들은 자라고 성숙해서 저만치 앞서가 있는데 오직 한 사람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고 혼자서 5공을 살고 있나봐요. 월요일 아침부터 속에서 불이 올라왔다 꺼졌다해요.
저는 사실 집회 현장에 가서 시위에 참가하기보다 이 흐름이 갖는 상징이 무엇일까를 읽는데 골몰하는 편이예요. 내 눈에 가장 놀라웠던 건 1시간여를 오직 목소리밖에 가지지 않은 시민들이 방패와 몽둥이를 든 경찰과 맞서 외침으로 그 벽을 넘어가려고 한다는 거였어요. 물론 경찰에 대한 욕도 있지만 또 그걸 말리는 목소리도 있구요. 한마디로 뒤죽박죽이죠. 일사불란함이 없어요. 나는 그 모습에서 자유의 이상을 봤어요. 그리고 경찰의 방패와 몽둥이에선 그 자유를 폭력의 힘으로 막으려는 전근대적 권위와 억압을 보았구요. 내 눈엔 이 시위가 단순한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는 시위로 보이질 않아요. 이 시위는 전근대적 권위와 억압에 대한 항거 같아요. 그 권위와 억압의 상징적 존재가 지금은 이명박 대통령이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쇠고기 재협상의 목소리가 “이명박 물러나라”로 바뀌어가고 있는 듯 하구요. 사람들은 이제 교묘한 방법으로 권좌를 꾀찬 권위와 억압의 시대보고 깨끗이 물러가라고 하는 것 같아요. 자꾸만 프랑스의 68혁명이 생각나요. 우리에게도 드디어 모든 권위와 억압을 넘어서는 새세상이 오는 걸까요. 일을 빨리하고 아무래도 이번 토요일날 또 나가봐야 겠어요.
일사분란함이 없다는 말ㅋㅋ
주말에 나가서 동원님 계신가 두리번 거렸죠.
덕분에 어제 어느별님 만났어요~
그 많은 인파 속 우연히 만나니까
굉장히 반갑더라구요.
음, 설레발을 치자면
아무래도 이번 토요일은 또 나가봐야
하시겠지요, 네 그렇게 알고 있을께요.
때마침 함께 가잔 이가 없어서 다행이에요^^;
아무래도 서울에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분위기가 너무 심상찮게 돌아가는 거 같거든요.
미리 연락해서 양해구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