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을 걷는다고
나무만 만나는 것은 아니다.
숲엔 계곡도 있고,
새들도 있고, 그 새들의 노래 소리도 있다.
나무는 그 모든 것들과 어울려 산다.
숲길을 가다보면 나도 그들과 어울리게 된다.
숲길의 즐거움은 바로 그들과의 어울림이다.
또 봄이 완연해지기 전의 숲길이라면
봄보다는 가을의 흔적이 더 흔하다.
봄이 오면 겨울은 사라지지만
대신 겨울을 견딘 지난 가을이 그 자리에서 봄을 맞아준다.
새재고개에서 운길산역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계곡의 나무들과 가을의 흔적들에 잠깐씩 시선을 뺐겼다.
3월 8일 일요일 오후에 걸었던 길이다.
길옆의 가랑잎이
스치고 지나가기만 해도 바스락거린다.
가랑잎이 바스락대는 소리는 가을의 속삭임이다.
그러자 그녀가 묻는다.
“뭐라고 속삭이는데?”
이런 젠장, 그렇게 물으니 갑자기 할말이 없다.
가랑잎도 말을 잃었는지 갑자기 입을 다문다.
나는 부스럭대는 소리를 버리면서 속삭임까지만 궁금해하고,
그녀는 뭐라고 속삭이는지 그게 궁금하다.
계곡을 내려가던 물은
종종 걸음을 멈추고 웅덩이에 둥글게 둘러앉는다.
나무가 그림자를 내려 슬쩍 그 자리로 끼어든다.
내가 나뭇가지 사이로 그들이 함께한 자리를 엿본다.
비록 잎의 색은 바랬지만
자태의 느낌은 가지런했다.
곱게 늙은 느낌이었다.
돌틈 사이를 매끄럽게 타고 내려간 계곡물이
물속으로 끊임없이 다이빙을 하고 있었다.
다이빙을 할 때마다 물이 하얗게 끓어올랐다.
물방울이 둥글게 부풀어올라 물결 위를 떠가다 톡톡 터졌다.
계곡의 물도 알고 있었다.
물방울 놀이가 재미나다는 것을.
낮달이 떴다.
산중턱에서 본 낮달은
산위로 높이 걸려있었다.
웅덩이에 둘러앉아 잠시 쉬다 계곡을 내려온 물이
이제는 제법 큰 폭의 개울에 이르렀다.
그러자 나무들이 계곡물에 발처럼 그림자를 담갔다.
한참을 들여다보다 보니
물결이 흔들려 그림자가 일렁이는 것인지
나무가 그림자를 흔들어 물결이 이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가을의 붉은 색을 몸의 한가운데로 남기고
나머지는 하얗게 탈색시킨 고추 하나가 대궁에 매달려있다.
원래 자연의 것은 모두 저렇게 끝까지 매달려있다 떨어지고
그러고나면 그 자리에서 다시 싹이 나고를 반복하지만
이상하게 인간이 가꾸는 것은
거두질 않으면 버려진 느낌이 난다.
색이 바래도록 끝까지 대궁에 남은 고추도
거두지 않고 버려진 느낌이었다.
인간의 손을 타면
멀쩡하게 끝까지 살다죽어도 버려진 신세가 된다.
산의 능선 위쪽으로 높이 걸려있던 낮달이
한참 산길을 내려오자 능선 바로 위까지 내려와 있었다.
뭐야, 나랑 눈높이 맞추려는 건가.
그래도 그건 좀 너무 하잖어.
내가 무슨 일일 학습지 하는 어린애 수준도 아니고.
그 말이 무안했던지
내가 산길을 조금 더 내려가자 달님은 산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낮달도 무안하게 만드는 이 말버릇좀 고쳐야 하는데…
계곡의 물이 바위 투성이의 길을 내려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졸졸졸 연신 즐겁다.
아마도 바위들을 피아노의 건반삼아 누르면서 내려가는게 아닌가 싶다.
건반의 터치가 섬세해 세게 누르지 않고 슬쩍 스치기만 해도 소리가 난다.
어느 바위가 도이고, 어느 바위가 솔인지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나 졸졸 소리에 높낮이가 있는 것을 보면
분명 도음을 가진 바위와 솔음을 가진 바위가 있는 듯하다.
계곡물은 저렇게 어지럽게 배치된 바위 건반들 속에서
음을 귀신같이 잡아내는 놀라운 재능을 가진 것이리라.
대궁이 잘린 옥수수 밑둥이다.
그래도 시골서 자랗다고 밑둥만 보고도
잘려나간 위에 무엇이 있었는지 짐작을 한다.
생각해보니 사람도 그렇다.
멀리서 걸음걸이만 보고도
누구 아닌가 짐작하는 경우가 있다.
가끔 글도 그렇다.
조금 읽다 보면 이거 누구 글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그만의 글을 잘 재배한 셈이다.
***이 글의 1편과 2편
봄을 찾아서 – 덕소의 새재고개 넘어 운길산역까지 걷다 1
풍경과 놀기 – 덕소의 새재고개 넘어 운길산역까지 걷다 2
6 thoughts on “나무와 계곡, 그리고 가을의 흔적 – 덕소의 새재고개 넘어 운길산역까지 걷다 3”
사진 한 장이 말하고 있는 것은 글 한 편이나 시 한 편과 거의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과거의 한 순간을 한 장의 사진에 담아 낸다는 것,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의 흐름을 멈추어 놓는 것이 사진이 아닐까 싶어요. 저 ‘낮달’ 사진은 이 세상에 딱 한 컷으로 남아 있는 순간이 아닐까… 그래서 더욱 귀하게 느껴집니다.
저도 사진 찍으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낮달 사진은 흔하게 찍을 수 있는 사진이지만
낮달을 쳐다보는 느낌은 어느 날만 유다르거든요.
아마도 낮달 사진을 찍을 때는
그 낮달을 올려다 볼 때의 내 느낌을 찍는 것 같아요.
사진이란게 저에겐 세상에서 얻어오는 글의 악보같기도 하구요.
그 악보를 보며 저는 글로 연주를 하곤 하죠.
가끔 똑같은 사진을 달리 변주할 때도 있는 것을 보면 악보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이스트맨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저도 좋은 카메라가 한대 갖고싶어져요..
그 흔한 똑딱이 하나없이 잘 지내왔는데..
요즘은 가끔 똑딱이라도 하나 있으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곤하네요.
자신의 기록 하나없이 살아간다는게,
좀… 슬플때가 있더라구요.
사진이란게 단순히 기록이 아니라
기억이기도 하고 또하나의 눈이기도 하더라구요.
사진을 찍은 사람은 사진의 옆과 뒤도 보여서
더더욱 사진의 위력을 실감할 때가 많아요.
똑딱이는 하나 갖고 있는게 좋은 거 같아요.
울딸 이제 월요일날 일본으로 갑니다.
묵을 곳도 구했는데 와세다까지는 여덟 정거장이라고 하네요.
어려운 일 있을 때 오토님께 도움좀 요청할께요.
네.. 이스트맨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하루종일 쇼핑몰을 뒤적거렸어요..
라이카가 이쁘긴 한데, 가격이 아주 살인적이네요..
같은렌즈를 사용한다는 파나소닉으로 하자니..
이미 라이카를 봐버린 이상, 썩 마음이 끌리질 않고..ㅠ.ㅠ
여러모로 참 디자인이란게 정말 중요한거 같네요..
드디어 따님이 일본으로 떠나시는군요.
학교까지 8정거장이면 20분정도 거리겠네요. 딱 좋은듯.
전철을 아주 짧게타면 가까워서 좋은건 있지만,
음악 듣기도 애매하고.. 뭘 하기에 참 애매하더라구요.. ^^
전 전철을 타거나, 걸을때 곡을 많이 만들기에, 즐기는 편이라..
제 도움이 필요할때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
그리고 따님께선 아주 자알~ 해 내시리라고 믿습니다.
라이카는 예술가들에게 잘 어울리죠.
그 빨간색의 라이카 로고는 저절로 눈이 가게 만드는 위력이 있어요.
저도 한때 탐을 내긴 했지만요.
언제 만나서 음악 얘기도 하고… 술도 한잔 합시다요.
아참, 언두님이 음악은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냥 노래를 직접 불러야 하는 거라고 하시긴 하더군요.
저는 그때 사진 찍을 수 있으면 더 없는 영광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