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좋아하는 젊은 부부가
언제든 걸어가서 만날 수 있는 거리로 이사를 왔다.
하지만 워낙 초절정 인기를 구가하고 계신지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만난 횟수가 그리 많지도 않다.
물리적 시간이야 어김없이 1초 동안 1초가 흘러가고 1분 동안 1분이 흘러가지만
시간의 느낌은 1초가 1시간으로 연장되기도 하고
1시간이 1초로 급격히 줄어들기도 한다.
두 사람을 만난 것도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지만
마치 무수한 만남을 가진 듯한 느낌이다.
블로그를 들락거리면서 부딪친 빈번한 만남이
그런 느낌에 큰몫을 한 것 같다.
하지만 더더욱 큰몫을 한 것은
블로그의 글들을 읽으면서
마치 마음을 나눈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시대는 만나지 않아도
블로그로 마주하고 서로를 나눌 수 있는 시대이다.
하지만 얼굴을 직접 마주했을 때 가질 수 있는
그 존재의 즐거움을 어찌 따르랴.
그래서 기회가 되면 젊은 부부의 집으로 놀러간다.
그런데 정작 가서 보면 젊은 부부보다
그 집의 어린 친구, 그러니까 현승이, 채윤이랑 놀게 되고,
특히 나는 현승이랑 놀게 된다.
젊은 부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현승이랑 노는게 더 재미나고 좋다.
6월 8일, 현승이네 아파트의 놀이터에서 자전거 타면서 함께 놀았다.
현승이, 아파트 놀이터를 열 바퀴 돌았다.
열 바퀴 돌았다고 자랑한다.
내가 물었다.
“자전거 바퀴는 두 바퀸데 왜 자꾸 열 바퀴래?”
현승이 왈: “그건 바퀴고, 이건 바뀌!”
우린 모두 뒤로 넘어갔다.
누나 채윤이가 열 바퀴를 넘어 계속돈다.
자신은 열다섯 바퀴라고 소리친다.
현승이, 자신의 기록을 깨는 것은 또 못참는다.
열 바퀴 이상은 무효로 만들어버린다.
그런데 그게 현승이에겐 무효가 아니다.
“열 바퀴 이상은 무료야, 무료!”
우리는 또 뒤로 넘어갔다.
아파트의 길이 계단으로 이동하는 곳이 종종 있었다.
채윤이, 계단에선 털보아저씨가 자전거 옮겨주실 거라고 선수치면서
아예 이 몸에게 짐꾼의 임무를 슬쩍 맡겨버린다.
자전거 옮겨주며 자전거는 미모순으로 먼저 옮겨주겠다고 했다.
채윤이 자전거 가장 먼저 옮겨주었다.
이거, 의외로 상당히 효과가 높다.
채윤이 얼굴의 웃음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돌아올 때는 잘생긴 순으로 자전거를 옮겨주겠다고 했다.
현승이 자전거 가장 먼저 옮겨주었다.
현승이 자랑하러 엄마에게 뛰어갔다.
이거, 별게 다 효과가 있다.
놀이터에 지하철 손잡이 같은 것이 주렁주렁 매달린 놀이기구가 있었다.
지하철 놀이하자며 그 손잡이를 잡았더니
현승이가 제일 높은 곳의 손잡이에 매달려 몸을 허공으로 날리며
기관사 역을 냉큼 자신의 몫으로 꽤찬다.
이번 역이 무슨 역이냐고 물었더니 암사역이란다.
예쁜 엄마역과 털보 부인역을 거친 지하철은
내가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더니 갑자기 북해로 내달렸다.
동해나 서해를 예상했던 나로서는 적잖이 놀라웠다.
나는 추워 얼어죽겠다며 다시 남쪽으로 가자고 했다.
모든 바다를 섭렵한 우리는 그 다음엔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으며
급기야는 화성과 목성으로 날아가기에 이르렀다.
심지어 태양 속으로 뛰어드는 모험도 감행했다.
물론 태양 속에서 다 익어 바베큐가 되기 전에 급하게 태양을 빠져나와야 했다.
지하철 놀이를 끝으로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아쉬운 눈치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너무 많이 돌아다녔더니 지하철비가 다 떨어졌어.”
그 말에 현승이는 곧바로 마음을 접었다.
현승이가 아무리 날 좋아해도 무임승차는 안시켜주는 구나.
6월 14일, 교회 앞에서 현승이를 만났다.
현승이, 내게 이렇게 말한다.
“털보 아저씨, 우리 언제 한강으로 자전거타러가?”
어, 요것봐라. 이제 아주 말까네.
우리는 그날부터 말까고 같이 노는 친구가 되었다.
6월 18일, 드디어 한강으로 자전거 타러 가기로 일정의 합의를 보았다.
그녀와 실님은 차를 타고 한강으로 먼저 가고
우리는 자전거 4대로 자전거 편대를 형성한 뒤
골목길을 요리조리 헤집어 가며 한강으로 갔다.
한강으로 가던 중에 현승이가 뒤쪽 보조바퀴가 흔들린다며 조여달라고 하고
필님은 괜찮다며 그냥 타고 가도 된다고 한다.
그 얘기 몇번 나왔다.
오, 둘이 서로 한 고집 하는 걸.
지켜보는 나는 즐겁다.
한강가에서 장만해간 음식으로 저녁 먹었다.
현승이가 물을 무서워한다는데 믿기지 않는다.
오히려 채윤이가 물을 무서워한다.
현승이는 물가로 내려가 손으로 물을 튀겼다.
이거, 물 무서워하는 거 맞어.
물이 무릎 정도 깊이여서 그냥 내버려 두었지만
물 튀기는 것은 못하게 했다.
한강물은 깊기 때문에 가까이 가면 안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가까이 가기가 어렵다.
그래도 요즘은 냄새는 나질 않아서 곁에서 놀만은 하다.
현승이가 에버랜드 놀러갔다가 왔다고 했다.
내가 사자도 봤냐고 물었더니
현승이가 그렇다고 했다.
내가 또 물었다.
“그래 사자가 뭘 사자고 하디?”
한강에 도착한 뒤 현승이가 내리막 길에서
엄마에게 자전거가 저절로 간다고 소리쳤다.
실님 왈: “그럼 교회 안가고 이번에는 저기 절로 가는 거야?”
에버랜드 가서 좋았냐고 현승이에게 물었더니 신나고 좋았단다.
필님 추임새 넣는다: “그럼 신나는 날이었지, 신나는 날.”
갑자기 신발 벗어 공중으로 비행기처럼 날리신다.
신이 날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 어울려 잘노는게 다 고만고만해서 구나.
현승이, 정글 로프를 올라가다 말고 소리친다.
난 밀림의 왕, 원숭이다!
이거 뭔가 이상하다.
내가 물었다.
현승아, 밀림의 왕은 사자아니냐?
현승이 답하길, “사자는 줄을 못타잖아.”
이런 이런, 정글 로프에선 밀림의 왕이 원숭이로 바뀐다.
중간에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현승이는 무슨 고드름인가 하는 이름의 얼음과자를 골랐다.
털보 부인이 현승이에게 하나만 달라고 한다.
그때부터 잘 떠지던 얼음이 잘 떠지질 않는다.
우리는 모두 와하하 웃었다.
채윤이에게도 털보 부인이 슬쩍 말을 건넨다.
나는 꼭 남의 거 한입 얻어먹는게 취민데.
채윤이 그 말 듣더니 슬쩍 돌아앉았다.
우리는 또 모두 와하하 웃었다.
한강가는 길은 내리막이라
모두 줄을 서서 자전거타고 한강까지 갔는데
집으로 갈 때는 내내 오르막이라
그냥 필님 차에 태워 보내면서 바이바이했다.
현승이는 아주 독특한 아이이다.
내 주변을 맴돌면서 손을 흔들어 반가움을 표하는 아이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뛰어와서 내 품에 안긴다.
현승이는 볼 때마다 멀리서 손을 흔들며 뛰어온다.
하지만 그렇다고 덥석 안기는 법은 절대로 없다.
그러면서도 볼 때마다 그 눈에 맴도는 웃음으로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해주는 아이이다.
그렇게 주변을 맴돌면서 한동안 저 혼자 좋아하는 타입의 아이가 현승이다.
난 현승이를 만날 때마다 내가 현승이 마음 속에 들어가 있다는
달콤한 환상에 빠지곤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나를 잘 놀아주는 아저씨로 반기는데
현승이는 날 마음 속에 담고 나를 맞아주는 듯하다.
이런 타입의 아이는 내 생전에 처음인 것 같다.
사실 날 좋아하는 아이들이 드문 편이다.
어린이 대공원에 그렇게 자주 사진찍으러 다녔지만
날보고 웃으면서 따라온 아이는 딱 한 명밖에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날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면
취향이 참 독특하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날 좋아해서 그런지 그런 아이들과는 아주 죽이 맞아 놀게 된다.
그런데 요즘은 후유증이 좀 있다.
현승이랑 즐겁게 노는 것은 좋았는데
집에 돌아오고 나니 딸이 마구마구 보고 싶어진다.
현승이는 같이 하는 시간은 즐거움으로 채워주고
헤어지고 난 다음 시간에는
딸에 대한 그리움을 자극한다.
15 thoughts on “어린 친구 현승이와의 데이트”
아이들하고 놀아주시는 두 분을 뵈면서 ‘어쩌면 저렇게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다 수용하실까?’ 하면서 감탄을 했어요. 애들도 아는 것 같아요. 자신의 말 하나, 몸짓 하나가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아니까 자유롭게 자신을 드러내고요…
현승이가 털보아저씨만 만나면 완소남(완전소심한남자)에서 터프가이로 변신한다니깐요. 감사드려요.^^
그게 아이들은 해석의 재미를 누릴 수 있도록 해주잖아요. 우리 딸이 어렸을 때 업어달라고 하면 저는 그때면 다리가 아파서 그러나보다고 하질 않고 지상의 중력이 얼마나 싫으면 그러니 하면서 업었죠. 하지만 어른이 업어달라고 하면 그런 해석이 나오기가 어렵잖아요. 어디 다큰게 앵기고 있어. 요렇게 나가게 되죠. 아이들하고 놀 때 어찌 어릴 때만 누릴 수 있는 그 해석의 재미를 놓칠 수가 있겠어요. 하지만 모든 아이들에게 그런 재미가 적용되는 건 아니예요. 유난히 그런 재미가 있는 애들이 있다니까요. 그리고 사실 그런 아이들이 흔치가 않아요. 제가 현승이 만난 건 큰 행운이예요.
야~ 이거 대박이야~
나두 모르게 털보님 말투가 튀어나오네요.
이게 뭐 그냥 벙개가 아니군요. 자전거에 도시락까지.
근데 털보님 정말 자리가 위태해보여요.
그 집엔 적수가 현승이만 있는게 아닌거 같거든요.
딸 그리워하며 아들없는 아쉬움도 함께 느끼신건 아닌지…
난 저 아래에서 4번째 그림이 부럽습니다요~
그럼 언제 세 집안이 모두 한강에 나가
저렇게 쌍쌍이 자전거타고 물의를 한번 일으켜 볼까요.
실은 저희도 몇해 전에 남해안에 여행가서
여수의 오동도를 저렇게 둘이 자전거타고 누비면서
사람들 눈총좀 받은 적이 있답니다.
눈총도 총이라지만
여적지 죽지 않고 살아있습니다. ㅋㅋ
눈총.. 요건 쫌 약한데요. 확실히 ‘기’를 뺏기신 모양입니다.
저흰 이 그림이 나오기엔 두가지 문제가 있슴다.
하나는 그남이 자전거를 안탄다는 것이요
둘은 그녀가 쫌 무게가 나간다는 것입죠 ㅠ.ㅜ
바로 그 위에 그림 재밌네요.
한여인은 좋아 죽을거 같고
한여인은 앞으로 튀어 나왔어도 여전히 날씬하고
한남자는 젓가락들고 넘 불쌍한 포즈로 앉아있다는 것이요 ㅍㅎㅎ
유사한 사례가 바로 곁에 있어 추정해 보건데 무게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ㅋㅋ
자전거는 세발이라도 권해 드리고 싶지만 그날 저희들이 자전거를 타본 결과 현승이 자전거 타기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거의 묘기 수준의 기술을 요구하더군요. 그 점에선 달리 대책이 없네요. 하지만 업고 달리면 더더욱 눈길을 끌 수 있을 듯 합니다. 적극 권하고 싶네요. ㅎㅎ
세 집 안 한강 고고씽, 동의 한 표요~
쌍쌍이 자전거 타고 경주하는 거 강추요.
(형평성을 위해서 저희는 세발 자전거로 하겠습니다ㅎㅎㅎ)
세 집, 한강 고고씽, ‘날 잡아’요~ ㅋㅋ
아마도 그 집은 세발자전거라도 젤로 잘 탈 것 같은 예감입니다. ㅎㅎ
그나저나 동원님, 요즘 너무 나이어린 친구들을 좋아하는 거 아니십니까?
울 따님 하루 빨리 귀국하라고 하등가 해야지 원…ㅋㅋ
애들이 더 재미있잖아.
잘 아시면서.
올해 들어서 가장 즐거운 날이었어요.
현승이에게 있어서 저는 충분히 놀아주는 아빠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날 현승이는 최고로 즐겁게 논 것 같아요.
저는 우리 아이가 그렇게 화끈하게(?) 노는 아이인줄 몰랐어요. ㅠㅠ
정서적인 어려움이 있는 아이라 할지라도 털보 선생님과 하루만 같이 놀면 다 치료될 것 같아요.
아이들 놀이치료 선생님 하셔도 될 것 같아요. ^^
저는 그날 집에 와서 지금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게 아니구나 생각했어요.
바로 오늘을 누리며 사는 법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목회 하기 전엔 그런 날이 종종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시간을 못갖고 있었거든요.
사실 그날 오후 누군가 심하게 다퉈서 우울, 분노, 무기력…이런 감정들이 삼위일체가 되서 저를 짓눌렀는데, 털보 선생님 부부와 함께 있으면서 마음의 위로와 안정이 된 것 같아요. 감사드립니다. (^^)(–)(__)(^^)
암튼 무척 자유롭고 행복지수가 쑥쑥 올라가는 멋진 날이었어요.
현승이 뿐 아니라 실은 저도 엄청 즐거운 날이었습니다. ^^
현승이는 놀 때보니까 한 터프하던 걸요.
사실 아이 키우면서 아쉬운게 많았는데
늦게나마 현승이랑 놀면서
못해준거 해주고 싶은 마음이 많은 것 같아요.
즐거움은 물론 저희의 몫이기도 했습니다.
어제는 현승모와 대화하던 중 탕슉 벙개 날 잡자고 하니까
갑자기 ‘날 잡’으시더라.
내 팔을 꽈~악~ ㅋㅋㅋ
걱정이야.
내 자리가 위협받고 있어.
이런 강력한 적수는 처음이야. ㅋㅋ
저는 처음 뵙던 날 차 안에서 털보님 한 마디에 와인들(포도주s)이 바로 포도쥬스로 둔갑하는 것을 보고는 크게 은혜를 받았습죠. ㅋㅋㅋ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는데 털보님은 와인으로 포도쥬스를 만들어내시드라구요.
저는 그렇게까지는 머리가 안돌아갑니다. 아무래도 저는 아닌 것 같습니다. 기발하긴 하군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