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동서울 터미널에서 밤 12시에 떠나는 심야 버스를 타고 부산 해운대에 도착하자 새벽 다섯 시의 시간이 나를 맞아주었다. 한적한 곳이었다면 아직 어디나 어둠에 덮여 있을 시간이다. 그러나 부산은 대도시이다. 서울과 마찬가지로 새벽 다섯 시의 시간도 그곳을 어둠 속에 덮어놓지 못하고 있었다. 가로등과 문을 연 상점들의 창에서 새어나온 불빛이 쌀쌀한 새벽길을 굴러다니고 있었고, 나는 어림짐작으로 방향을 점찍어 해운대 해수욕장으로 갔다. 새벽에 도착해 해운대 바다를 보겠다는 것이 원래의 내 생각이기도 했다.
아직도 바다는 어둡다. 어둠 속에서 하얗게 파도가 일어났다 엎드렸다를 반복했다. 해변에 난 길을 따라 천천히 동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날씨는 추웠고 난 팔짱을 껸채 두터운 겨울 외투가 붙들어준 내 체온을 꼭꼭 껴안은채 걸어야 했다. 어제 저녁 밤 12시까지 시간을 보내면서 서울에서 걸었던 거리의 후유증 때문에 다리도 그렇게 가볍지는 않았다. 동쪽으로 걷다가 시선은 서쪽으로 준다. 해운대의 바닷가는 온통 높이 경쟁에 나선 고층 건물들 뿐이다. 바다는 건물과 달리 해변의 모래밭을 낮게 포복하고 있었다. 바닷가의 고층 건물은 사실 이상한 건물이다. 가장 낮게 엎드리는 파도를 보기 위해 점점 더 높아지려 한다. 나도 바닷가 건물에 숙소를 정하고 하루를 묵은 적이 몇 번 있었다. 번번히 높이를 버리고 바닷가로 달려나가게 되었다. 내게 바닷가 고층 건물의 높이는 결국은 버려야할 높이였다. 사람들은 바닷가에 버려야할 높이를 자꾸자꾸 높이 쌓아올린다.
바다 가까이 걸음을 옮겨 파도 소리를 귀에 담았다. 파도는 밀려온다, 끊임없이. 밀려올 때는 달려와 품에 안길 것 같으나 파도가 우리의 품으로 뛰어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고 보면 파도는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마음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손짓이다. 손짓은 대개 어느 손짓이나 그 자리에 서서 우리를 부른다. 그러나 밀려들 때의 모습을 보면 언제나 파도는 나를 안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니 파도는 마음을 갖고 있으나 그 마음을 손짓에 담아 접어야 하는 운명을 갖고 있다. 그 운명을 넘어서면 마음 속에 나를 품을 수 있을 듯하지만 실제로는 나를 품기보다 나를 쓸어가 버린다. 마음을 담은 바다의 손짓 앞에서 한참 동안 서 있었다. 서울에서 해운대까지 달려와 파도를 보아야 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이른 새벽이라 사람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한 편의점 앞의 의자와 탁자들도 모두 비어있고, 편의점 간판만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거대한 건물이 통째로 잠에 들어 있는 듯했다. 거대한 기둥이 들어올린 건물의 한가운데 텅빈 공간이 있었고, 잠시 그곳을 배회한다. 거대한 짐승의 잠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불이 밝혀진 한 식당의 수족관에선 아침 손님의 식탁으로 오를지도 모를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다. 넓은 바다를 살던 기억이 있다면 그 좁은 수족관을 몸부림칠만도 하건만 고기들은 태평이다. 너희들은 그 좁은 곳에 갇혀서 어찌 그렇게 태평이니? 물고기들이 멀뚱한 표정으로 답을 대신하며 몸을 튼다. 원래 살던 곳은 넓고 큰 바다, 이곳은 작은 바다. 아무리 죽음이 눈앞에 있다고 해도 천천히 여유롭게 헤엄치면 작은 바다도 내 마음대로 넓힐 수 있어. 바다가 크고 작은 건 크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헤엄치는 속도로 결정되지. 치달아도 치달아도 끝을 잡을 수 없는 바다에서 마저도 경계는 있는 법이지. 우리들이 끝없이 헤엄치며 온 바다를 다 헤집고 다녔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바다에서도 우리는 경계를 긋고 살았지. 난대며 한대의 경계랄까. 경계 가까이 살면 큰 바다도 좁은 것은 마찬가지야. 아무리 좁아도 경계를 슬쩍 비켜가며 몸을 움직이면 큰 바다가 되지. 다음에 회를 먹을 때면 그 좁은 수족관에서 마저 넓은 바다를 살았던 물고기에게 경배라도 하고 먹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운대 해수욕장의 동쪽 끝자락에 이르자 작은 미니 항구가 하나 나타난다. 미포 선착장이라고 하는 것 같다. 배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었다. 이곳의 바로 옆에 유람선 타는 곳이 있다. 이번 여행에선 타보지 못했다. 다음에 다시 가면 한번 타볼 생각이다.
리어카 두 대가 항구에 선 가로등 불빛에 그림자를 밑으로 내려 깔고 앉아 있다. 대개 그림자는 옆으로 밀려나는 법이지만 리어카는 자리를 잘 잡아 그림자가 옆으로 삐져나가질 않았다. 밑에 납짝하게 엎드린채 리어카를 받치고 있는 그림자가 리어카 아래쪽에 숨어 빛을 피하고 있는 듯도 했다.
배 한 척이 나갈 준비를 한다. 일렁이는 포구의 물결 위에서 부르릉 부르릉 소리를 내며 몸을 움직이더니 이내 항구를 빠져나가 멀리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바다로 사라졌다. 아마도 아침을 맞으러 나가는 배였을 것이다. 배에 아침을 한가득 싣고 돌아올 배를 생각했다. 아마도 돌아오는 배를 기다렸다가 아저씨, 오늘은 어땠나요? 하고 물으면 아저씨는 생선의 이름을 줄줄이 입에 올리면서 오늘 아침은 그물에 물고기를 이렇게 채워주더군 하고 받을지도 모른다.
포구에선 사람들이 불을 중심으로 둘러 서 있다. 장작불은 분해되어 마치 반딧불이처럼 하늘로 날아오른다. 장작은 따뜻함을 사람들에게 내주고 반딧불이의 빛을 얻어 날아오르고 있었다.
작은 항구를 돌아본 뒤에 다시 해운대 해수욕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밀려오는 파도를 바로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정면으로 마주했을 때는 오는 거리가 그렇게 길게 보이지 않았으나 옆으로 서자 파도가 상당히 긴 거리를 달려가는 것이 확연해진다. 바람으로 물결의 등을 밀어 파도의 몸을 일으켜 세우고 모래결이 고운 해변으로 긴 호흡을 몰아쉬며 달려가고 있었다.
시간은 6시 30분경. 이제 아침이 완연하게 밝았다. 다섯 시의 바닷가엔 아무리 도시의 불빛으로 쓸어내려 해도 온전히 감당하기 어려운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으니 아침은 1시간 30분 동안 그 어둠을 치우고 환한 하루를 해변에 펼쳐놓았다.
걸어갔다 돌아온 동쪽을 보니 해변의 동쪽끝에 자리한 작은 산 뒤로 살금살금 다가와 몸을 숨겼던 아침해가 드디어 오늘의 해운대 풍경을 궁금해하며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아침해는 곧장 산을 넘어와 밀려오는 파도를 찰박거렸다. 파도가 연신 밀려갔다 밀려가며 아침해의 발목을 적시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파도의 경계를 따라 나란히 발자국을 새기며 해변을 뛰어가곤 했다.
해운대 해수욕장의 서쪽 끝자락쯤에 이르자 바다에 무엇인가가 있었다. 상어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돌고래도 아니었다. 그건 사람이었다. 무자맥질을 하며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수영은 분명 다른 사람이 하고 있는데 내가 덜덜 떨렸다.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겨울이라 샤워 시설이 가동이 안되는지 나중에 바닷가로 나온 사람들은 생수병을 치켜 들어 그 물로 샤워를 했다.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매년 1월말쯤 북극곰 수영대회라는 것이 개최된다고 들었는데 아마도 그런 한겨울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인가 보다.
6 thoughts on “새벽의 해운대 바닷가 – 무박 3일의 부산 여행 2”
여행기를 읽고 있으니 정말 파도처럼 일렁이는 느낌과 마주하게 되네요
참 ….가만히 잘 들여다 보시고 들려주시는 이야기가 듣기 좋네요…
(넘 멋진 표현이 많아요!^^)
겨울수영을 하는 분들 정말 놀랍군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이날 상당히 추운 날씨였는데 용감하기 그지 없어 보였어요.
탈의실로 쓰는 텐트를 치고
거기서 잠수복으로 갈아입은 뒤 물로 풍덩 하더만요.
수영복 차림이라 사진찍기가 뭣해서
그냥 수영하는 모습만 한장 찍었어요.
이건 진정한 의미에서 발 사진들이군요. 걸음 사진이라 불러도 좋겠구요.
날씨만 좀 따뜻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쌀쌀한 날에는 걸어다니는 것도 만만치가 않더군요.
바닷가는 걷다가 쉬다가를 반복하기에 좋은 곳인데…
날씨가 추우니 엉덩이가 시려서 어디 앉기도 뭐하고…
날풀리면 이제 저도 멀리 말고 근처로 슬슬 나가보던가 해야 겠어요.
여행기 참 잘 보고 갑니다.
저는 그냥 ‘와 좋다’ 하고 넘어가는 때가 많은데 참 존경하게 되네요!
요즘은 텔레비젼보다가 픽 쓰러져 자곤 하는데.. 자고 일어났더니 기분좋은 댓글이 반겨주네요. 감사드립니다! 큰일났다. 근데 감을 어디서 사드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