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즐거움으로 그곳의 슬픔을 희석시키고 싶다 – 남해안 여행 4 고흥의 나로도와 소록도

9월 8일, 여행 나흘째.
남해에서의 첫밤, 여수에서의 두번째 밤은 모두 잠을 잘잤다.
하지만 고흥에서의 사흘째 밤엔 자꾸 잠을 설쳤다.
날씨가 덥기 때문이었지만
그것보다는 창가에 어린 달빛이 자꾸 놀자고 우리를 깨우는 것 같았다.

Photo by Kim Dong Won

처음 잠에서 깬 것은 새벽 세 시경이었다.
어젯밤 동쪽에 있었던 달은 이제 서쪽으로 넘어와 있었다.
달빛은 침대까지 깊숙이 들어왔다.
창가에 앉아 달빛에 물든 바닷가의 마을 불빛을 바라보며
한 30분 정도 달빛과 놀았다.

Photo by Kim Dong Won

다시 잠시 눈을 붙였다가 일어났더니
이제는 달이 아예 창의 한가운데서
우리와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새벽 다섯 시였다.
그때부터 동이 틀 때까지 다시 달과 함께 놀았다.

Photo by Kim Dong Won

한시간 동안 달과 함께 놀다보니
창밖의 세상이 훤하게 밝았다.
창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작은 항은
어젯밤만 해도 물이 가득차 있었다.
이른 아침에 내려다보니 물이 빠져
뭍에서 가까운 곳으로는 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우리가 잠자는 사이에 바다가 조용히 바다로 나갔던 셈이다.

Photo by Kim Dong Won

밤새 우리들의 잠을 설치게 만들었던 달은
멀리 보이는 마을 뒷산의 잘룩한 허리 부분으로
아직 몸을 걸치고 있었다.
어제는 향일암의 해돋이로 하루를 시작했는데
오늘은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는 달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것으로
우리의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여덟시경 아침을 먹고
8시 30분경 묵었던 곳을 떠났다.
얼마가지 않아 그림같은 섬을 하나 보았다.
차를 세우고 섬 가까이 가기 위해 동네로 들어가다 길을 잘못들어
결국 어느 집에서 길이 막히고 말았다.
집의 앞쪽으로 자리한 밭에서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이쪽으로는 길이 없는데.”
섬이 예뻐서 섬쪽으로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고 했다.
“이쁘기는 개뿔이 예쁘나.”
할머니 얘기에 나는 그냥 하하하 웃었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섬의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을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멀리 아래쪽의 산자락 허리춤으로 난 산길을 가리키며
그 길을 따라가라고 했다.
나는 그 길을 따라 들어가 드디어 섬과 마주했다.
섬의 옆에선 배 한척이 그물을 거두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섬의 이름을 물었더니 할머니는 ‘상주섬’이라고 했다.
“물이 빠져야 섬까지 갈 수 있을텐데.”
남해나 서해는 항상 바다 풍경이 두 가지이다.
물이 빠졌을 때와 물이 들었을 때,
바다는 풍경을 달리한다.
물이 빠졌을 때의 섬 풍경이 궁금했지만
그건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밑둥을 바다에 담그고 떠있는 섬을
한참 숲길을 걸어가 먼발치에서 만나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나오는 길에 어제 사람들이 바지락을 캐던 곳에서
소시랑섬을 다시 만났다.
섬앞으로 뻘을 드러낸 채 길게 길을 내주었던 어제의 섬이
오늘은 그 길을 모두 물로 덮고
저만치서 밑둥을 간지르는 물과 노닥거리며 아침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후엔 또 사람들에게 길을 내주겠지.
우리는 소시랑섬을 뒤로 하고 녹동의 소록도로 차를 몰았다.

Photo by Kim Dong Won

녹동항에 도착한 것은 오전 11시경.
떠날 때 사람들은 한 50분 정도면 도착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항상 사람들이 얘기해준 것보다 두 배는 더 시간이 걸리곤 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게
차창으로 풍경이 손짓을 하면 그것을 마다하지 못해
걸핏하면 차를 세우니 가는 길이 늦을 수밖에 없었다.
소록도로 가는 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사람들이 얘기해준 시간보다 두 배는 늦게 녹동항에 도착했다.
소록도는 그냥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슬픈 섬이다.
우리는 오늘 그 슬픈 섬으로 간다.
우리의 차를 싣고갈 배가 저만치서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소록도 가는 길을 그곳으로 놀러가는 유치원 아이들과 동행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발돋음을 하거나, 혹은 그냥 제 키만으로 서서
흘러가는 바다를 구경한다.
아이들의 어디에서도 슬픔의 구석은 없다.
아이들은 모두가 그저 즐겁다.
아이들이 자꾸 소록도로 놀러가면
그곳의 슬픔이 희석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날 그 섬의 슬픔은
아득한 기억 속의 일이 될 것 같았다.

Photo by Kim Dong Won

길의 양옆으로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이 길은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사실은 눈물과 탄식이 서린 길이다.
그 옛날 이곳의 병원에선 전염을 우려하여
환자의 자녀들을 부모로부터 격리하여 수용했다.
그 당시 아이들과 부모는 바로 이 도로에서
한달에 단 한번 서로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만남은 도로 양옆으로 갈라선 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눈으로만 제 어미와 제 아이를 눈에 담았다 돌아가야 하는 만남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우리에게 섬은, 섬이란 말을 떠올릴 때마다
‘아침의 베일로부터 귀뚜라미 우는 곳으로 천천히 평화가 내리는’
예이츠의 섬 이니스프리와 같은 곳이지만
섬의 이름이 소록도일 때,
그 섬은 그런 상상의 호사와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그곳은 사람을 가두어놓는 질곡의 섬이었다.
나는 언젠가 그곳에 관한 한편의 글을 읽고
그중 한 대목을 옮겨 적어놓은 적이 있었다.
누구의 글이었는지 덧붙여 놓질 않아
글쓴이는 알 수가 없지만 그 글은 지금도 내 곁에 남아있다.
“섬들은 알고 있다.
세상 인연과 잊혀지는 아득한 무서움을.
또한 섬들은 알고 있다.
끝끝내 세상 인연과 잊혀질 수 없는 더러운 그리움의 피를.
그렇게 우리는 모두 타인들과 세상들에 묶여 있다.
누군들 큰땅에서 버림받고 자기만 제외된 것 같은 감정이 없으랴.”
그 옛날 한센병 환자들은 이곳에 버려지고
버려진 섬에서도 또 다시 갇혀 지냈다.
그들을 가두었던 감금실의 쇠창살이 빨갛게 녹슬어
금방이라도 부셔져 내릴 것 같았지만
그때 쇠창살을 흔들며 하염없이 울었을 그들의 진홍빛 한은
여전히 선명한 듯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하지만 섬에 놀러온 아이들이 그들의 천진난만한 즐거운 하루로
이곳의 슬픔을 희석시키듯이
우리도 그들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지 않기로 했다.
섬으로 들어오던 길에 배에서 만났던 아저씨를 다시 만났다.
아저씨는 낯이 익은 얼굴이라고 내게 씨익 웃어주었다.
내가 짊어진 카메라 때문인지 “방송국에서 나오셨소”하고 물었다.
한참 동안 그곳의 아저씨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자전거를 내려 둘이 함께 타고 들어온 때문인지
그녀와 나를 가리켜 ‘환타스틱 커플’이라고 했다.
우리는 환타스틱하게 둘이 함께 자전거를 타고 섬의 서쪽 절반을 일주했다.

Photo by Kim Dong Won

자전거를 타고 간 길은 대부분 숲길이었다.
언듯언듯 바다가 보이는 환타스틱한 길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나는 악착같이 자전거를 타고 그 길을 갔지만
그녀는 종종 자전거를 끌고,
아니, 그녀의 표현을 빌자면 자전거랑 손을 맞잡은 채
아주 천천히 걸어서 언덕길을 오르곤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우리가 얘기를 나누었던 아저씨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작별 인사를 했을 때
아저씨들이 섬의 나머지 절반을 돌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었지만
우리는 이미 기진맥진이어서
그 길을 포기하고 그냥 차로 소록도 해수욕장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개 한마리를 만났다.
컵라면에 밥말아 점심을 떼우고 있는데 어찌나 빤히 올려다 보는지
우리들만 먹기가 무안해서
오감자 한 봉지를 녀석에게 내놓지 않을 수 없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컵라면으로 식사한 뒤
그녀는 평상에 누워 잠자면서 독립 만세를 불렀다.

Photo by Kim Dong Won

우리가 소록도에서 보낸 시간은
오전 11시에서 오후 3시 30분까지 4시간 30분 정도였다.
자전거를 타고 환타스틱하게 놀다나온 우리의 즐거운 시간이
그곳의 슬픔에 대한 작은 희석제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섬을 떠나는 배 위에서 바라보니
멀리 지금 공사중인 소록대교가 보인다.
저 다리가 놓이면 이제 소록도는 차로 쉽게 드나드는 곳이 될 것이다.
이름만 섬일뿐 뭍으로부터의 고립은 지워질 것이다.
그때 이곳을 다시 한번 찾고 싶다.

Photo by Kim Dong Won

녹동항을 떠난 우리는
다섯 시경 보성차밭에 도착했다.
빛이 부족하여 차밭은 잠깐만 둘러보았다.

Photo by Kim Dong Won

차밭을 둘러본 우리는 묵을 곳을 찾아
바다가 보이는 율포로 내려갔다.
좀 호사스럽게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더니
하룻밤에 14만원을 달라고 했다.
3만원짜리 민박으로 발길을 돌렸으며,
대신 호사스런 전어회로 마지막 저녁 만찬을 풍성하게 차렸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녀가 오늘따라 뽀송뽀송하다.
보성에 와서 녹차해수탕에 들어갔다 나왔다.

Photo by Kim Dong Won

나도 목욕했다.
나는 목욕탕에 가서 네 가지 탕을 번갈아 오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해수탕, 녹차탕, 온탕, 냉탕.
그리고 술한잔 걸쳤더니 완전 헤롱모드로 진입이었다.
저녁 먹고 나서 우리는 바닷물이 길의 턱밑까지 밀려든 해변을 거닐었다.
그리고선 들어와서 잤다.
아무 일 없었다.

5 thoughts on “우리의 즐거움으로 그곳의 슬픔을 희석시키고 싶다 – 남해안 여행 4 고흥의 나로도와 소록도

  1. 요즘,가을 전어가 한창이더군요.
    무슨 회인가요 ??
    맨끝에,사우나를 하시고,아무일 없으면 안되는것 아닌가요?
    사랑하는 아내와,사랑을 불태우셨어야 옳은듯 합니다.
    왠지.. 아쉬움으로 다가오네요.ㅎㅎ

  2. 정감어린 사진들과 글을 읽다보면 김동원님은 참 섬세하고도 정이 많으신분같다는..^^
    맞죠?^^
    뽀송뽀송한 그녀! 표현도 어쩌면 그리 적절하신지. 하긴 글쓰시는 분이시니..^^
    정말 화장했을때보다 더 이쁘네요.^^

    1. 가을소리님이야말로 섬세하시고 정이 많으신 따뜻한 분이신 것 같아요?
      맞죠?^^

      근데 한 턱 쏘는 건 어떻게 쏘죠?
      서울 오시면… 연락주셔요^^

      뽀송뽀송한 그녀도 그녀지만
      독립만세의 그녀도 그녀예요.
      거 참… 독립만세의 그녀는 쫌 거시기 한거이…
      아침을 7시엔가 먹고 점심을 오후2시경에 컵라면과 햅반으로
      간단히 떼우고 기진맥진하여 퍼졌을 때의 저 자세…

      때지난 바닷가에서 아무렇게나 누워도 볼 사람없다고
      벌러덩 누웠더니 그만 털보에게 찍히고 말았습니다ㅜㅜ

      하여간 카메라 들고 있는 사람 앞에서는
      잠시도 자세를 흐트러뜨리면 저런거 찍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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