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큰 발렌타인의 1집 앨범 발매 기념 공연

한때 새로 나오는 음악을 매주 모두 빠짐없이 챙겨듣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의 아이들이 멜론 같은 음원 차트에서 음악을 챙겨듣듯이
그 시절의 나도 매주 토요일에 발표되는 한 음악 순위에 귀를 기울이며
토요일 오전을 모두 음악듣는데 할애하곤 했다.
70년대 말엽의 일이니 시간으로 말하자면 아득한 옛시절의 일이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음악은 그동안 쌓아온 인연만 그대로 지켜갈 뿐
새롭게 음악을 챙겨듣는 일은 없어지고 말았다.
그러니까 나에게 음악과의 인연은 70년대 말엽으로 끝이 났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음악은 그때의 음악이 거의 전부이다.
물론 새로운 음악을 만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간간히 나는 우연히 그 시절에 접하지 못했던 음악과 만났고
그 음악들과 금방 친해졌다.
그러나 그 음악들을 방송에서 만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대개가 블로거들로부터 전해들은 인디 밴드들의 음악이었다.
그 이름들 중에 몽키헤드,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W & 웨일 등이 있었다.
그리고 그러다 가장 최근에 브로큰 발렌타인을 만났다.
방송에서 새로운 음악을 만나는 일은 크게 없었는데
그들을 가장 먼저 접한 것은 텔레비젼에서 였다.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지난 해는 공연장에서 그들의 공연을 직접 접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그들의 팬이 되었다.
그들이 이번에 1집 앨범 『Shade』의 발매를 기념하여
마포아트센터에서 콘서트를 가졌다.
그들의 공연에 함께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브로큰 발렌타인의 공연은
그들의 노래로 시작되지 않는다.
그들의 공연은 찾아온 팬들이 응원의 마음을 담아
브로큰 발렌타인의 이름을 펼치면서 그들의 공연이 시작된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이름을 펼치는데는 남녀의 구별이 없다.
응원의 마음은 남녀가 똑같다.
또 응원에는 수스럼이 없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하지만 때로 응원에 약간의 용기가 필요할 때도 있다.
나이가 조금 들면 그렇게 된다.
어떻게 어떻게해 하면서도 그들도 브로큰 발렌타인의 이름을 펼쳐
자신의 마음을 담고 그것으로 그들을 응원하고 싶어한다.
용기를 내야해라는 일행의 주문으로 브로큰 발렌타인의 이름을 펼치고
그들의 대형 브로마이드 앞에 서는데는 성공했으나
그만 2퍼센트 부족한 용기 때문에 결정적 순간에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
나름 귀여우셨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그러나 귀여움은 거의 100퍼센트 귀여움으로 뭉치신
이 두 분의 관객을 넘볼 수 있는 팬은 없었다.
이 두 분이 입고 있는 티셔츠는 브로큰 밸런타인 티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공연은 그림자들의 연주와 노래로 시작되었다.
아니 그들이 처음부른 노래가 「Shade」였으니
우리가 본 것이 그림자가 아니라 그늘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들의 그늘 아래서 태양보다 더 뜨거운 노래를 들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드디어 그림자를 걷어내고
그들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들은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가슴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첫곡이 끝나고 짧은 음악 토크를 갖는 시간에
브로큰 발렌타인의 리더이자 베이스 주자인 성환은
아주 흥미로운 얘기를 했다.
록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아주 외향적일 것 같지만
사실은 말도 잘 못하는 내향적인 사람들이 대부분이란 것이었다.
그의 얘기에 의하면 그들의 음악은 그들의 못다한 말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브로큰 발렌타인은 모두 다섯 명의 멤버로 이루어져 있다.
기타 둘에 베이스 하나, 그리고 드럼과 보컬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브로큰 발렌타인의 기타리스트, 변G.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때로 그들은 둘인 듯 하나였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또 때로는 팔을 드는 것 하나만으로
노래부르는 무대 위의 보컬 반과 노래를 듣는 객석의 관객이 하나였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그들의 노래는 사람들을 모두 자리에서 일으켜 세운다.
그들의 노래가 흐르면
사람들은 의자가 갖는 완고한 중력을 뿌리치고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의자가 갖는 완고한 중력을 이기는 힘이 그들의 음악에 있다.
때로 의자가 갖는 중력의 마수가 말할 수 없이 커서
공연 시간 내내 전혀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다.
몸이 무척 무거워보이기도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브로큰 발렌타인의 기타리스트, 안수이다.
연주안하고 그냥 무대 위에 서 있기만 해도
관객들이 1시간 정도는 얼굴만 뜯어먹고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잘 생겼다.
하지만 실상은 기타가 없다면 그의 수려한 외모도 빛을 잃을지 모른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그들의 공연은 우리들의 몸이 전도체란 사실을 일깨운다.
마치 전류가 흐르듯
그들의 음악은 우리의 몸을 짜릿하게 감전시키며 지나간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몸이 부도체로 이루어진 경우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브로큰 발렌타인의 목소리,
보컬 반.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보컬 반이 움직이면
그의 움직임을 따라 함성이 파도처럼 일어났다 가라앉곤 했다.
말하자는 그는 함성의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그가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이 머리 위로 손을 뻗는다.
그것은 노래에 대한 환호로 보이지만
사실은 손을 뻗으면 그의 노래가 손에 잡히기 때문이다.
그냥 있으면 노래가 머리 위로 모두 다 그냥 지나가 버린다.
그래서 가끔 손을 머리 위로 뻗어
지나는 노래가 손을 스치는 느낌을 맛보아야 한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공연 1부의 마지막은 드러머 쿠퍼가 장식해 주었다.
그는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음악이 흐르자
그 음악에 맞추어 시건방 춤을 보여주었고 객석은 그에 환호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블루니어마더의 기타리스트 한준희씨가
객석에서 브로큰 발렌타인의 공연을 지켜봐 주었다.
지난 해 공연 때는 게스트로 출연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이 날의 게스트는 톡식이었다.
모두 세 곡을 불렀다.
첫곡은 Hotel California였으나 그들의 색깔로 완벽하게 편곡이 되어
귀에 익은 곡인데 하면서도 한참 만에 겨우 알아차릴 수 있었다.
2인조 밴드가 만들어내는 엄청난 사운드 앞에서 놀라게 되는 것은
이들을 처음 경험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변함이 없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톡식의 마지막 곡은 「나 어떡해」였다.
브로큰 발렌타인이 합류하여 자연스럽게 그 음악을 이어받았다.
「나 어떡해」는 70년대의 노래이다.
내게 그 노래는 원래 샌드 페블즈라는 밴드의 노래였다.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는 노래들이 있지만
노래는 항상 태어난 시대의 분위기를 담고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70년대의 노래를 부르면 우리는 그 시대로 회기한다.
그러나 톡식과 브로큰 발렌타인이 함께 부른 그들의 「나 어떡해」는
옛시대의 분위기를 깨끗이 털어내고
그 노래를 이 시대 앞에 새롭게 열어놓고 있었다.
그것은 노래가 이렇게 새롭게 열리고 있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아니 과거는 이렇게 새롭게 열어가야 한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난 가슴이 뭉클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시작 때 공연을 열어주었던 그림자가
이번에는 벽을 타고 브로큰 발렌타인의 2부 공연에 합류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브로큰 발렌타인의 리더이자 베이스 주자인 성환.
아내가 출산을 앞두고 있다.
축하드린다.
아이가 태어나면 새로운 음악적 영감을 선물할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공연을 지켜보면서 든 느낌은
그들이 노래로 우리의 가슴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는 그들의 존재로 우리의 가슴을 채워주는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그들은 다섯이면서 하나였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나는 1집 앨범에 수록된 그들의 곡 Noname을 처음 들었을 때
머릿속에 불순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나는 노래를 노래로 순수하게 듣지 않고
그 노래를 수많은 슬픔과 수많은 아픔과 손을 잡는 연대의 노래로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노래의 손을 잡고
22명이 목숨을 버린 아픈 현장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며,
그런 아픔과 슬픔의 현장으로 제주의 강정도 떠올랐다.
브로큰 발렌타인의 보컬 반은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항상 이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는 누군가를 머릿속에 그리며 노래를 시작하는데
오늘은 이 노래를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에게 바친다고 했다.
내가 가장 기대했던 노래 Noname은 피아노의 선율로 시작되고 있었다.
피아노는 건반을 어루만지며 음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다독이는 음이다.
그 많은 슬픔과 그 많은 아픔을 피아노 선율로 다독이며
노래가 시작되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그러나 브로큰 발렌타인의 Noname은
슬픔과 아픔을 다독이고만 있지는 않았다.
기타가 합류하고 드럼이 함께 하면서 Noname은 거대한 함성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6.10이었다.
듣는 관중, 감격으로 울컥하여 눈물 쏟을 뻔 했다.
그들의 노래가 노래로 그치지 않고 함성이 되는 날이 올까.
그 옛날, 1986년의 우리 6.10 때
이 노래가 함께 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그가 요구했다.
“당신들의 함성으로 이 가슴을 채워주시라”라고.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객석을 가득 메우고
그 다음엔 더 크게 소리쳐 함성으로 나를 채워주시라.
그러면 나는 그 함성을 내 속에서 뜨겁게 용해시켜
폭발하는 노래로 돌려드리리라.
그들의 약속은 지켜졌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공식 공연이 모두 끝나고 나자
관객들이 무대를 향하여 앵콜을 외쳤다.
하지만 그 앵콜에 대한 응답은 무대가 아니라 관객석에서 이루어졌다.
무대에서 사라진 그들은 관객의 한가운데 나타나 관객과 하나로 어우러졌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관객과 함께 한 뒤끝에 다시 무대로 오른 두 기타리스트는
서로 기타 사운드를 주고 받으며 앵콜 시간을 즐겁게 해주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그리고 그가 벗었다.
그의 몸에서 땀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땀에 젖어 타오르는 노래가 그들의 노래였다.
그들의 노래는 그들의 심장이었다.
그들은 관객들에게 그들의 심장을 내놓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공연장은 마치 화산처럼 폭발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그 폭발의 뒤끝에서
한 아줌마 팬이 브로큰 발렌타인의 이름을 펼쳐들고
그들에게 아낌없이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들의 공연은 그들의 이름을 펼치는 것으로 시작되어
그들의 이름을 다시 펼치면서 마무리되었다.

**공연은 다음과 같이 열렸다
공연명: 브로큰 발렌타인 1집 발매 기념 콘서트 This Time
공연 일시: 2012년 6월 10일 오후 5~8시
공연 장소: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

12 thoughts on “브로큰 발렌타인의 1집 앨범 발매 기념 공연

  1. 저도 이날 현장에 있었죠 장소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간만에 터지는 공연 봤어요
    첫 곡 인트로 royal straight flush 가 커튼뒤로 연주되기 시작하자마자 자동으로 벌떡 일어나서 거의 앉은 적이 없어요 정말 짱짱한 연주였고 가슴을 흥분시킨공연이었죠 티켓이 좀 저렴한게 아닌가 했을 정도로요 좀 더 헤비함이 강해진다면 특히 보컬의 그런다면 담 공연에선 울어버릴수도 있을거같더군요 참고로 전 메탈리카 라이브 영접한 사람

    사진 속 귀염충만 꼬마아가씨들이 어찌 열광했을지 상상가면서 더 귀여워보이는 사진입니다

    담백한 문체가 소탈하니 종종 오고픈 블로그예요

    1. 공연에 오셨군요.
      메탈리카가 연상되기도 하고.. 때로는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연상되기도 하고..
      저는 메탈리카도.. 딥 퍼플도 모두 영접을 못하고 그저 DVD로만..

  2. 같은 공연장에서 찍은 두분 사진 느낌이 많이 다르네요~
    forest님의 과감히 당겨 찍은 사진들에서 굉장히 정적인 느낌을 받았는데
    eastman님 사진들에서는 함성이 들리는듯해요.^^

    하나씩 가지고 태어나는 재주중에 노래 잘 부르는 재주가 젤 부러워요. 에잇..ㅎㅎ

  3. 스탠딩 공연이 아니라 다같이 가지 않았는데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스탠딩이 되더만.
    우리에게는 오히려 스탠딩도 되고 좌석도 되는 이런 공연이 좋더라.
    하긴 공연 내내 우린 서있었으니까…^^

    1. 의자의 중력을 끝내 이겨내지 못한 사람들도 내가 몇 봤다.
      그래도 문화적 충격은 되었겠지.
      rock 음악도 뭘좀 알아야 들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더라.
      내가 기대하고 간 noname이 나에겐 거의 하이라이트였다는.

  4. 못다한 말이라는 록 음악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흥미로운데요.
    탑밴드에서 겨뤘던 톡식이 우정출연했었군요. 다음 공연엔 저도 한 번 가겠습니다.

    1. 공연보고 있는데 다 같이 왔어야 했는데 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구요.
      스탠딩이 없어 다소 아쉬웠지만 내내 일어서서 보게 되더라구요.
      말하자면 거의 좌석식 스탠딩이었다는.

  5. 안녕하세요? B.V.irus 라는 브로큰 발렌타인 팬블로그인데요.
    혹시 이 후기의 링크를 저희 블로그에 좀 소개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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