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하고 망설이는 작은 목소리의 삶—이창수의 신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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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한 삶이 있다. 삶이 단호하면 대개 목소리가 커진다. 아울러 삶이 직접적이고 실천적 행동으로 뜨거워진다. 반대로 주저하고 망설이는 삶이 있다. 그런 경우엔 대개 목소리가 작아진다. 행동을 요구 받을 때도 머뭇거리는 경우가 흔하다.
이창수의 시에서 그 예를 구해보면 그의 시 「불구경」에서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삶을 접할 수 있다. 시인은 “숭례문이 불타던 날/흑석동 옥탑방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었”으며 “누군가 나서서 금방 끌 거라고 믿었다”고 말한다. 시인은 “별일 없을 거라고 아랫도리에 손을 넣고/옛 애인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결국 숭례문은 불에 타서 내려앉고 말았다. 무너지는 숭례문은 시인에게 “아랫도리에서 손을 빼고 양동이를 들고 나서”라고 요구하는 듯 했지만 결국 시인은 “나가지 않았다”고 했다. 나에겐 그 “나가지 않았다”가 나가지 못했다로 읽혔다.
불은 또 일어났다. 이번에는 용산이었다. 용산의 화재에선 “여섯 사람이 죽었다.” 철거민들을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나온 참사였다. 시인은 이번에도 용산으로 나가 강제 진압에 항의하지 못했다. “비겁하다고 자책하면서도/아랫도리에서 손을 빼지 못했다.” 비겁하다는 자책으로 보아 마음은 용산의 항의 집회에 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다만 그 마음의 움직임을 직접적 행동으로 이어가진 못했다. 시인은 이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삶을 이렇게 요약한다.

사는 게 그랬다
—「불구경」 부분

시인에게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다. 사실 대개의 삶이 그렇다. 그러니까 대다수의 삶은 앞에 나서서 실천적 삶을 산다기보다 주저하거나 머뭇거리면서 뒤쪽으로 머물러 있다. 이창수의 시에선 바로 그 주저하거나 망설이는 삶을 자주 접하게 된다. 당연히 목소리가 작다.
이번에 내게 건네진 신작시 다섯 편의 목소리도 아주 작았다. 나는 그 작은 목소리의 삶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며, 어떻게 작아지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그의 신작시를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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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편의 시중 먼저 「능소화」를 살펴보자. 시 「능소화」는 개인적 차원에 서 있으며, 언젠가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겨 담을 넘”은 적이 있다는 고백으로 시작된다. 담을 넘은 것은 소심함과는 거리가 먼 큰 ‘용기’로 보이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여자가 “담 넘어 온 나를 보고/큰소리로 웃으며 쪽문을 가리켰”고 시인은 “그녀가 가리키는 쪽문으로 도망”을 나오고 말았기 때문이다. 사건의 여파는 커서 시인은 “그 이후 아무리 낮은 담이라도 쳐다보지 않”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다 어느 날 저녁 시인은 다시 그 담벼락 앞에 선다. 담벼락엔 “예쁜 꽃이” 피어 있었다. 시의 제목으로 미루어 보아 그 꽃은 능소화였을 것이다. 그 순간 깨끗이 정리된 줄 알았던 마음이 흔들린다. “나를 만나고 싶다면 저 문으로 들어오라고/쪽문을 가리켰던 긴 손가락이/오랜 미련을” 흔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를 다 읽고 나자 의문 하나가 고개를 든다. 왜 문이 있는데 담을 넘은 것일까. 여자는 담을 넘은 그에게 당장 나가라고 소리친 것이 아니라 “나를 만나고 싶다면 저 문으로 들어오라고/쪽문을 가리”키는 것으로 어느 정도의 호의까지 표했다. 그렇다면 이제 쪽문으로 들어가 그녀를 만나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그는 쪽문으로 다시 들어가질 않았다. 담을 넘을 정도로 용기를 냈던 그가 왜 이런 호의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일까.
문은 공식적인 통로이다. 쪽문은 한쪽으로 난 작은 문이므로 완전한 공식적 통로는 아니다. 따라서 그것은 최소한의 공식적 통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담은 공식적인 통로가 아니다. 따라서 문을 두고 담을 넘었다는 것은 여자에게 마음을 빼았겼지만 공식적 통로를 통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의 발로이다. 쪽문을 가리킨 여자의 손가락은 그런 식으로 담을 넘어 들어오려고 하는 사랑에 대한 거절이다. 여자는 대개 쪽문으로 대변되는 최소한의 공식적 통로나 형식을 원한다.
사랑에 관한한 우리는 모두 담을 넘어 들어가고 싶다는 욕망을 갖는다. 즉 비공식적 통로나 형식을 통하여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그러한 욕망은 대부분 거절당한다. 왜 우리는 문을 놔두고 담을 넘으려 하는 것일까.
얼핏 생각하면 최소한의 공식적 통로나 형식을 통하여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합리는 실제로는 많은 것을 억압한다. 합리는 일종의 여과 체계이다. 그 체계는 합리라는 이름으로 문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을 심사하고 걸러내며 관계를 공식화하려 든다. 그러므로 쪽문은 어떻게 보면 최소한의 자격에 대한 요구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사랑을 할 때 우리가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면 그것이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알고 보면 우리들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며 최소한의 공식적 자격이나 형식을 요구하는 것이 사랑이란 이름아래선 사랑에 반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담을 넘는데는 아무 자격이 필요 없다. 담은 자격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측면에 오히려 더욱 사랑에 값한다. 공식적으로 문으로 들어갈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소심해진다. 그 소심해진 사람에게도 길은 있다. 바로 담을 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담을 넘는다는 것은 사실 용기가 아니라 쪽문으로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사람의 소심함에서 나온 행동이다. 쪽문을 가리키며 그 문으로 들어오라고 했는데도 그 문으로 다시 들어가지 못한 것은 담을 넘은 행위가 용기가 아니라 소심함에서 나왔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그러나 그 소심한 용기는 성사되지 못했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 소심함이 담을 넘고 거절당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면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선 편승이란 형태로 나타난다. 「짝퉁구두」가 그것을 보여준다. 짝퉁이란 진짜에 방불하는 가짜이다. 시인이 아마도 짝퉁 구두를 하나 샀나보다. 하지만 처음부터 짝퉁 구두를 찾아 나선 것 같지는 않다.
시인 이창수는 처음에는 “이태원에서 십오만 원 주고 구두를 샀다”고 한다. 말하자면 짝퉁 구두를 사려고 구두 가게를 들어선 것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구두를 사려고 나선 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구두 가게의 주인이 “진짜는 아니고 짝퉁인데 전문가도 구별하지 못할 만큼 정교하다며 자랑”을 했다는 얘기로 미루어 좋은 제품이 있는데 한번 보시겠냐며 짝퉁 구두를 권한 것으로 짐작된다. 주인은 짝퉁이 갖는 부정적 이미지를 진짜 못지 않은 제품의 정교함으로 무마를 하고 시인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부정을 하지 않는다. 거기에 더하여 구두사는 곳에 함께 따라간 “후배도 구두를 보고 감탄”하면서 작퉁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슬쩍 희석시켜 준다. 결국 짝퉁의 부정적 이미지는 사라지고 짝퉁은 진짜에 대한 ‘자랑’이 된다. “구두를 본 사람들이 구두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시인은 그들의 칭찬에 대해 이건 짝퉁이야라고 고백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여 짝퉁에 대한 사회의 담합에 편승한 시인은 “갈수록 거짓말이 늘었다”고 고백한다. 그렇다고 시인이 그러한 짝퉁의 담합에서 발을 뺀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발을 더 들여놓는다. 마지막엔 결국 “할 수 없이 구두 한 켤레를 더 샀다”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다는 게 그렇다. 진짜같은 가짜의 세계에 서로 암묵적으로 담합하고 그 담합된 세계를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못한채 슬그머니 편승하여 살아고 있는 것이 대다수의 우리들이다.
그렇다면 사회는 이들 소심한 사람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일까. 그 양상은 「백담사」와 「생각을 막는 생각들」에서 엿보인다.
시인은 아마도 백담사를 찾았는가 보다. “기억을 더듬은 자리에 달맞이꽃이 피어있다”는 말로 미루어 전에도 이곳을 찾은 적이 있었던 것같다. 옛기억을 더듬으며 달맞이꽃을 보고 있는 시인에게 지나가던 젊은 스님이 웃으면서 “이 물길을 거슬러 백리를 가야 백담사가 있다”는 얘기를 건넨다. 젊은 스님의 얘기는 과장으로 보인다. 백담사로 들어가는 입구로부터 백담사까지는 좀 멀기는 하지만 그 거리가 백리에 이를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젊은 스님의 얘기는 그가 그 말에 담아 건넨 실제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는 잘 짐작이 가질 않는다.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그 다음이다.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늙은 스님이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젊은 스님에게 호통을 쳤다”는 것이다. 스님의 호통은 깨달음의 마지막 순간을 돕기 위한 큰스님들이 즐겨쓴다는 ‘할’이란 이름의 충격 요법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것은 그냥 일반적 의미의 호통으로 와 닿는다. 혹시 우리들도 심리적으로 소심하여 주저하고 망설이는 작은 목소리의 삶 앞에서 왜 그런 식의 삶을 사냐고 호통을 쳐온 것은 아닐까. 세상은 그들에게 이해의 손길을 내밀기보다 호통으로 그들의 존재를 위축시킨 것은 아닐까.
「생각을 막는 생각들」에선 그러한 양상이 매우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시인은 이번에는 “금연이라고 쓴 글씨”가 붙어있는 ‘창문’ 옆에서 “금연을 무시하고 담배를 피”우고 있다. 당연히 모두가 잘못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결국 힐난이 돌아온다. ‘늙은 청소부’가 “등 뒤에서/글도 못 읽는 인간이라고 투덜거린”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곧바로 담배를 끄지 않는다. ‘늙은 청소부’가 “생각이 없는 미련한 놈”이라는 눈초리로 흘겨보는데도 “담배를 필터까지 피운다.” 나에겐 시인의 그러한 태도가 소심한 저항처럼 보인다.
시인이 “금연을 무시하고 담배를 피”우긴 했지만 엄밀하게 따지고 들면 창문에 써붙인 ‘금연’이라는 글씨 또한 모든 개별적 존재의 상황을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담배를 못피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제목의 「생각을 막는 생각들」이란 바로 옆의 금연이라 글귀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머리 속에 어떤 생각이 가득한 순간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시인의 머리 속에선 생각과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었으며, 때문에 거의 무의식적으로 담배가 시인의 손에 들려 입으로 갔을 가능성이 높다. 시인은 그 순간을 “출구를 잃은 생각의 생각들이/금연을 지우며 빠져 나간다”고 말했다. 그 정도로 생각이 깊은 순간이라면 오히려 금연이 잠시 그 금지의 완고함을 유보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러나 금연이란 글귀는 시인이 처한 그러한 상황을 무시해 버린다. 아니, 그에서 더 나아가 무시하도록 독려한다. 시인이 금연이란 글귀 옆에서 담배를 피운 명백한 잘못에도 불구하고 필터에 불이 붙을 때까지 담배를 피운 것은 바로 그 금연이란 글귀를 내세워 개별적 존재의 상황을 무시하는 현실에 대한 소심한 저항이다.
주저하고 망설이며 소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세상이란 어떤 것일까. 시인은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실마리를 아름다운 의사에서 찾아보고 있다. 그 의사는 「효전한의원」의 한의사이다.
이창수는 그 한의원의 한의사를 가리켜 “마음이 아름다운 한의사”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아름답다는 말은 병을 잘 고친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 않다. 그 아름다운 한의사는 “맥을 짚어 나도 모르는 미열을 잡아냈”지만 “병인은 모른다고 했다.” 시인은 그녀의 특징을 “내 말을 들어줄 뿐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고 요약한다.
주저하고 망설이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목소리가 작다. 목소리가 작으면 잘 들리질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이 전혀 자기 의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국적을 버리고 싶”을 정도로 불만을 가지며, 사회가 병들었을 때는 그로 인한 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고통을 앓는 신음 소리가 작아 그들의 병은 잘 감지가 되질 않는다. 병의 증상으로 말하자면 그들의 병은 ‘미열’로 나타난다. 아름다운 사회란 그들을 비겁하다거나 우유부단하다는 말로 몰아세우는 사회가 아니라 그들이 겪는 미열의 통증을 감지하여 그들을 달래주고 그 마음을 사회 변화의 동력으로 끌어들이는 사회일 것이다. 「효전한의원」은 말하자면 그 아름다운 사회의 구체적인 작은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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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수의 시 속에서 만나는 삶은 주저하거나 머뭇거리고 있다는 측면에서 소시민적이다. “젖은 이마를 씻겨주는” “맑은 웃음소리”에 홀려 담을 넘기도 하지만 그 담을 넘는 용기가 사실은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소심함에서 나온다.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생각이 이어지는 어쩔 수 없는 자기 상황이 있었지만 금연이란 글씨가 쓰여진 창이 바로 옆에 있었다는 이유로 “글도 못 읽는 인간”이란 핀잔에 처해도 그 “말이 지당하”여 “할 말을 잃”은채 “담배를 필터까지 피”우는 것으로 저항을 하는 모습 또한 저항이라기 보다 오히려 소심함에 더 가깝다. 슬그머니 편승하게 된 짝퉁의 세계가 거짓이란 것을 알면서도 발을 빼지 못하는 모습에서 우리가 접하게 되는 것 또한 소시민의 모습이다.
그의 시는 그런 측면에서 주저하고 망설이며 살아가는 작은 목소리의 삶에게 내주는 소심한 위로로 보인다. 사실 위로가 가장 절실한 것은 그들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소심하여 위로를 적극적으로 구하지도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세상을 원한다면 나라도 「효전한의원」의 한의사처럼 그들의 얘기에 섬세하게 귀를 기울여주어야 할 것이다. 과연 나는 이창수의 시로 구현된 그들의 얘기를 제대로 들어준 것일까. 알 수가 없다. 그들의 목소리가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그 작은 목소리 앞에서 얘기를 듣는 나도 소심해졌다.
(『시와 산문』, 2012년 가을호)

**이창수 시인의 시집
─이창수, 『물오리 사냥』, 천년의시작, 2005
─이창수, 『귓속에서 운다』, 실천문학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