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보낸 메일 2

Photo by Kim Dong Won

사실 딸에게 가끔 편지를 쓰면서 살고 싶었다.
멋지지 않은가.
딸에게 편지를 보내는 아빠라니.
하지만 편지를 보낸 적은 없고 메일만,
그것도 달랑 두 번 보냈다.
이번 것은 2001년 12월 7일에 보낸 것으로 되어 있다.
아이 초등학교 5학년 때이다.
그때 아이는 학교에서 어린이 신문의 기자가 된 뒤로
기사라는 형식에 부딪쳐 글쓰는게 위축되가고 있었다.

–아빠는 세상에서 문지를 제일 사랑해

오늘은 너무 춥네.
너무 추워서 찬 바람이 발등을 핥고
목덜미로 슬그머니 손을 집어넣을 때마다
몸이 자꾸만 오그라들 정도야.
겨울은 아빠를 움츠러 들게 해.
이렇게 움츠러드니까 아빠의 속으로 자꾸자꾸 기어 들어가는 것만 같아.
자신의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니!
겨울은 그런 계절인가 봐.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자기 속을 들여다보는 계절.
생각하면 여름은 그 반대이지.
따뜻한 봄철에 기지개를 켜고 팔을 뻗고는
여름날엔 세상을 뛰어다니며 밖으로 밖으로 자신을 발산하는 계절이지.
풀도, 나무도, 자연의 모든 것들이
푸르게 푸르게 자신을 밖으로 내미는 계절이지.
그런데 겨울이 되면 풀은, 꽃은, 나무는 바깥으로 뻗던 팔을 거두고
자신의 뿌리로, 앙상하게 옷벗은 나무 둥치로 몸을 오그린채
처음 고개를 들기 이전의 자기 모습으로 되돌아가지.
아빠도 요즘 자꾸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
그렇게 뒤를 돌아보면
우리 문지는 정말 멋진 아이야.
아빠의 옛시절에 문지같은 멋은 없었어.
피아노나 플륫의 음악이 가져다주는 낭만이 없었고,
문지의 장난스러움에서 느낄 수 있는 철딱서니 없는 순수함이 문지만 못했지.
아빠는 그래서 문지가 좋아.
특히 우리 문지가 예전에 제 멋대로 글을 쓰던 시절은 더 좋았어.
지금은 글에 관해선,
문지가 기자가 된 뒤로
자꾸 형식적인 틀에 글을 맞추려고 하는 것 같아서 약간 실망이야.
아빠는 글에 관해선 우리 문지가 자유롭게 아무렇게나 글을 썼으면 좋겠어.
그런 점을 빼면 우리 문지는 너무 자랑스러워.
사실 아빠도 예전에 문지 같은 시절이 있었어.
글을 쓸 때 지금의 문지처럼 세상이 요구하는 틀에 맞추려고 한 적이 있었지.
그러다가 아빠는 글에 관한한 자유를 얻었어.
그때부터 아빠 마음대로 마구 쓰게 되었지.
문지도 언젠가 잃어버린 글의 자유를 다시 되찾게 될 거야.
역시 자유로운 인간이 좋은 것인가봐.
아빠는 문지가 자유로운 인간으로 자랐으면 좋겠어.
또 메일 보낼께.
공부좀 하지 말고 마음껏 놀아.
알았지?
기분좋지? 공부하지 말라니까.

아빠가

16 thoughts on “딸에게 보낸 메일 2

  1. 다정한 아빠시네요. 많이 부러워요.
    아이가 어느각도로 찍더라도 예쁘게 나올 얼굴이예요.
    저는 둥근형이라서 갸름한얼굴형 보면 무지 부럽더군요.
    갸날프게 보이잖아요.^^

  2. 군대가려고 준비중인 아들하고 고3짜리 딸 아이랑…저녁을 먹으면서 우연찮게
    첫 생리 애기가 나왔지요.ㅋ
    딸 아이는 두살터울인 오빠가 옆에 있어서인지, 저를 쿡쿡 찌르고~ㅋ
    우리때는 중1..2학년때 있었는데…딸 아이는 초등때 있었으니..
    요즘 여자아이들 참 성숙하지요?
    딸 아이는 갑자기 섭섭한 모양인지….우리 아빠는 재미도 없어 난테 관심도 없고….?
    다른 친구들은 아빠들께서 파티도 열어주고 그랬다던데….
    울 집 짝꿍…. 딸이라면 어쩔 줄 몰라하는데~ㅋ
    동원님도 참………… 자상하시네요.
    따님이 아빠를 많이 닮았어요.

  3. 딸에게 메일을 보내는 아빠.. 너무 멋지셔요..^^
    요기 들어오면 자꾸만 자극을 받는다니까요.
    울집 남자 제가 블로그 만들어놨더니 겨우 제꺼만 들락거리는데
    어떻게든 요기로 끌고 와야겠어요.
    가끔 빼고 싶은 것두 있기는 하지만요..ㅋㅋ

    1. 크, 빼고 싶은 거, 그거 뭔지 제가 잘 알지요.

      사실 이런 메일은 아무 것도 아닐거예요.
      바닷가로 여행가서 아이들 보고 싶다고 눈물흘리는 아빠를 생각하면 이런 메일은 사실 에구, 기죽어하고 납짝 엎드려야죠. 그런 장면을 잘 기록하셔서 아이들에게 남겨주면 메일 1만통보다 더 소중한 기억이 될 거예요.

    2. 그걸 기억하고 계셔요?
      전 두분중 어느분 블로그에 남긴 댓글인지 도무지 기억이 안나서
      좀 찿아보려고 했는데 안되네요.
      그러고보니 우리집 남자도 괜찮은데요.^^

    3. 아내한테 카메라주고 아이들 데리고 산을 올라가는 남자는 보통 괜찮은 남자가 아니죠. 그게 안타까워 카메라 하나 장만해 주어야 겠다고 생각하는 여자도 괜찮은 여자죠. 두 분은 서로 괜찮은 남자고 여자예요.
      전 그렇게 사랑하질 못하지만 그게 사랑이란 건 귀신같이 알아채고 기억에 담아둔답니다. 제 주변에 그런 부부들이 많아요.

  4. 개인 블러그에서 이런 대화 나누기란 힘들지요…
    근데…남대문 때문에~~~ㅋ
    아니면 털보(?)님의 글을 읽으면서…
    진솔 하시고 그녀와의 사랑이 예뻐서~~~
    제 사적인 얘기 들려 드리는 거랍니다

    어제는 웬지 학교 다닐 때에 끼고 다니던 ‘촛불의 미학’이란 책이 생각나서
    바슐라르를 다시 찾아가서 읽었지요

    털보님의 글에서 그런 냄새가 났거든요
    아님 오규원님이 쓰신 카프카란 시에서 바슐라르를 발견 했지요

    크리스탈 같이 날라 다니는 눈송이를 보면서
    그동안의 허기를 달랬어요

    25년 동안 잃어 버렸던 저를 찾은 느낌…
    전 그냥 그렇게 사는 주부였으니까요
    시간을 죽이고 살았는지도 몰라요

    상담사이신 선배언니가 저보고 그리 살지 말라고 해서
    작년 부터 조금씩 한 발자국씩 나아 가고 있답니다
    제 달란트는 사장 되어서…
    그러나 빛이 조금씩 보이는지…
    다음 아트힐 사이트에서 사랑 받는 회원이 되어
    12월에 시를 대표로 낭송 했답니다

    우연히 털보님의 사진 두장에 끼인 글들이 제 감성을 두드리는군요

    고 3 딸…
    제 얘기를 들으면 사람들이 서커스 하는 것 같다고 해요
    실기시험 날 진통이 와서 아기 낳았거든요
    수유하고..나의 40대는 그리 흘러 갔네요…

    그래도 남편과 같은 방향으로 가니 참 편해요
    신혼 때에는 넘 싸웠는데요
    이제 서로 나이 들아 가는 모습에 안쓰럽잖아요

    사람들이 어디서 저런 남편 얻었냐고 하면
    대학 1학년 첫 미팅에서 라고요…
    서로의 순수함을 알기에 더 아끼고 사랑 하나 봐요

    남편은 이공계라서 까뮈도 보오들레르도 잘 몰라요
    누가 발레리를 안다면 반가웠어요
    10년 전에는 블러그도 별로 없던 시대죠
    깔끔하고 꼼꼼한 남편이
    (전 손끝이 야무지지 못해서)…근데 그게 매력이라네요
    블러그 주소도 그래서 실수 했고요…ㅋ

    알콩달콩 사시는 모습 참 눈물 나도록 좋네요

    많이 모자란 제가 넘 주제 넘게 넉두리를 했나봐요
    좋은 날 되세요~!

    제가 오늘 읽은 성경…
    You are like a puff of smoke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 같으니라
    (에베소서 ;4장 14절)

    1. 블러그 세계로 오셨으니 이제 앞으로 더 재미난 일이 많을 거예요. Me2Day라고 요것보다 더 재미난 것도 있다 하니 그곳으로도 발을 한번 들여놔 보세요. 저는 블로그만으로도 벅차서 그냥 이것만 하고 있어요.
      화이팅 보내드려요.

  5. 선배언니가 어머니 학교 강사이신데…
    지금 아이들에게 편지 쓰는 숙제 하셨다고요
    성경 말씀 중에 어떤 말이 유익 할까 하셔서
    골로세서 4장 말씀과 전도서 9장 말씀이 어떨까?
    막 전하고 들어 왔는데…
    (훌륭하신 상담사 언니에게 제가 도움을 주다니 기쁘더라구요)
    이 편지를 보니 신기 하네요…
    전 늦둥이에게 한 달에 한 번…도시락 편지 써 주어야 하는데
    참 힘들더라구요…제 글이 초등 1학년 아이 앞에서는 막히던데요…ㅋ

    아빠가 딸에게 이런 사랑 듬뿍 주시는데…
    딸이 부모님의 감성을 닮아서 훌륭한 아가씨가 되리라 생각 되네요
    전 대학 졸업한 딸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르거든요
    참 문지가 고 3이 되는데…전 큰 아이 고 3~12월에 둘찌를 낳았지요…
    문지 부모님도 저 같은 실수 하지 마세요…ㅋ
    둘찌 키우면서…글 쓴지는 1년 넘었는데…집중이 안 되네요…
    그동안 글 써 본적도 없는데…블러그 꾸미면서 시 써 보는 거에요
    선후배님들이 용기를 많이 주시네요
    그래도 제가 즐거우니…
    오 규원님이 표현 하신대로~미친 짓을 하나봐요^^

    1. 블로그란게 참 재미난 거 같아요.
      모르는 사람끼리 말나누기도 좋고… 사는 얘기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딸을 보고 있으면 행복할 때가 많아요.
      그리고 음, 실수는 어려울 거예요.
      실수할 기회가 좀처럼 나질 않거든요.
      바깥에서 실수하면 또 몰라도. ㅋㅋ, 농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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