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과 함께 걸으며 외치다

귀를 갖고 있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 외치는 데도 매번 딴소리입니다.
1만이 모여 외쳤더니
그 1만의 소리를 듣고 보려 하지 않고
그들이 손에 든 촛불이 누구의 돈으로 산 것이냐고 묻습니다.
교회 다니며 헌금도 해보았을 사람이 그건 또 왜 모르는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답답하니 점점 더 많이 모입니다.
함께 모여 외치지 않으면 속터져 죽을 것 같기 때문일 것입니다.
10만이 모였습니다.
10만이 모여 쇠고기 재협상을 외쳤더니
그는 자동차나 반도체 수출에 큰 타격이 될 수 있으니 어렵다고 합니다.
그에겐 광우병에 걸려 죽을지도 모를 몇 명의 목숨보다
자동차나 반도체를 팔아 벌어들이는 큰 돈이 더 중요합니다.
영국에서 광우병으로 죽은 사람은 170여명,
영국 전체의 인구에 비하면 미미한 숫자입니다.
그에게는 그 죽음들이 너무 미미해서
쇠고기 협상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모입니다.
6월 6일, 20만의 사람들이 광화문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촛불을 들었습니다.
나도 그녀와 함께 촛불을 들었습니다.
촛불과 함께 걸으며 외쳤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광화문에서 시청앞에 이르는 넓은 대로.
아직은 텅비어 있습니다.
지금 길 건너편에서 그 유명한 유모차 행렬이
길게 꼬리를 끌며 가다가 길을 건너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손을 흔들어 유모차 행렬을 맞아주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원래 촛불집회가 예정되어 있던 시청앞의 서울광장은
갑자기 나타난 무슨 단체에게 빼았겨 버렸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서울광장 주변의 작은 자투리 공간으로
여기저기 모여들어
빼앗긴 광장을 완전히 둘러싸 버렸습니다.
이곳은 서울광장의 서쪽 공간입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서울광장의 남쪽 공간에선
홍대 입구의 인디밴드들이 함께 해주었습니다.
노래부르는 가수가 아는 얼굴 같기도 하고, 아닌 듯도 했습니다.
언더그라운드의 인디 밴드는 홍대 입구에서 몇 번 접한 적이 있거든요.
나는 그들의 음악을 좋아합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서울 광장의 동쪽 부분도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채웠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민영화 정책에 대해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보기에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앳된 여학생이
꼿꼿한 자세로 구호를 적은 종이를 들고 서 있습니다.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조중동은 각성하라”
유관순의 환생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서울광장을 포위한 사람들을 살펴보며 한바퀴 돌자
광화문에서부터 시작된 행진의 대열이 저만치 밀려옵니다.
텅비어있던 도로로 마치 해일처럼 밀려옵니다.
나와 그녀는 그 행렬에 합류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행진의 대열은 시청앞에서 소공동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뒤를 돌아봅니다.
뒤가 아득합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소공동으로 들어가는 길목은 약간 오르막입니다.
시청앞이 한 눈에 들어오죠.
사람들이 모두 뒤를 돌아봅니다.
자신들의 뒤에 스스로 놀랍니다.
끝이 아득하도록 엄청난 사람들이 뒤를 따르고 있었으니까요.
아마 뒤도 놀라고 있지 않을까요.
앞도 엄청난 사람들로 아득했을 테니까요.
앞과 뒤가 서로 손을 흔들어 서로에게 환호했습니다.
중간에 쉴 때, 앞과 뒤는 서로에게 수고했다고
서로를 마주보고 손을 흔들어 환호했습니다.
환호를 주고받는 데만 몇분이 걸릴 정도로 앞뒤가 아득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도심의 그 높은 건물 사이로
마치 봇물터지듯 사람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사람들은 이제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도도한 흐름이 됩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멀리 소공동 입구에서 행진의 대열이
종로쪽으로 방향을 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서울광장을 빼앗아 가니
사람들은 서울 도심의 모든 거리를 그들의 광장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뒤는 이제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중간에 교통 통제 때문에 잠시 행진의 대열이 둘로 잘렸습니다.
그렇지만 앞의 사람들은 그냥 가지 않았습니다.
모두 “기다려”를 연호했고, “같이가”를 함께 외쳤습니다.
사람들의 행진은 기다리고 함께 가는 행진입니다.
사람들은 단순히 행진하는 것이 아니라
행진하면서 우리가 이룩해야할 꿈의 세상,
바로 기다려주고 함께 가는 세상을 몸으로 익혀갑니다.
행진의 대열은 끝까지 기다리고 같이 갔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행진의 대열은 이제 종로로 향합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외칩니다.
“이명박은 물러가라.”
고백하자면 난 사실 뒤의 물러가라만 외쳤습니다.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도 싫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사람들도 심정은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어느새 앞의 구호가 “명박이”로 바뀌더니 “쥐박이”가 되었고,
결국은 “쥐새끼”까지 가고야 말았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이날 내가 들은 구호 중에서 가장 센스있는 걸작은
종로와 을지로 사이의 김밥천국 앞을 지날 때였습니다.
김밥천국이 두 집이나 가까이 붙어 있더군요.
그 앞을 지나며 사람들은 외쳤습니다.
“명박 지옥, 김밥 천국”
서로 웃고 난리들 났었지요.
나를 웃긴 구호가 하나 더 있습니다.
함께 웃어들 보시지요.
“100일도 많이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안국동에서 경찰 버스에 걸음이 막힌 행진 대열은
다시 시청으로 돌아왔습니다.
광화문과 시청 사이의 그 텅비었던 도로는
내가 돌아왔을 때 벌써 절반이 차 있었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 도로에는 촛불이 가득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리고 촛불들은 남대문과 을지로, 종로, 안국동으로
저녁 때 갔던 그 길을 훨씬 더 많은 촛불을 끌고 행진했습니다.
모두가 함께 외쳤습니다.
“이명박은 물러가라!”
그리고 다시 광화문으로 모였습니다.
밤의 광화문이 뜨거운 촛불의 열기로 가득했습니다.

12 thoughts on “촛불과 함께 걸으며 외치다

  1. 전국민의 기자화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어요.
    시간차로 나열해 놓으신것이 현장감있습니다.
    고생 많이 하셨겠어요.

    1. 낮에 한번 밤에 한번 두번을 돌며 시위를 했죠.
      저는 좀 체력이 받쳐주는데 이날 같이 나간 집사람(forest님)이 좀 힘들었을 거 같아요.
      그래도 시위가 축제라서 그다지 힘든 줄 모르고 어울리게 되요.
      축제는 즐거워서 힘겹다는 느낌을 많이 지워버리는거 같아요.

  2. 광우병 약자가 cjd 라는군요. ‘조중동’과 같답니다.

    실용을 좋아하시는 명박님이 ‘대통령 수입 자유화’ 특별법을 만들어 놓고 하야하여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세계적으로 검증된 분이 그 자리에 앉았으면 합니다.

  3. 동원님이 처음에 촛불을 드셨을 때엔 전 안일한 생각이었어요
    몇일 전에 시위에 직접 참가 했던 분이
    앞니가 빠지고…온통 몸이 상처투성이 된 것을 보면서…
    왜 그 곳에 갔냐고 했더니
    우리가 우리를 지키지 않으면 지금 우리 아이들이 불쌍하다고요..
    순수한 사람들이 거짓이 상투처럼 된 사람들에게 화가 난 것이지요
    우리 국민들의 성숙한 시민정신에 박수를 보내 드리고 싶어요
    우리가 가는 길…아프지만
    진실을 타는 목마름으로 염원하는 맑은 분들이 계시기에
    촛불을 들고 밝힌다면
    하늘도 그 빛에 감동 하겠지요?

    1. 이명박 정권은 세상이 변했다는 걸 너무도 모르는 거 같아요.
      이번 촛불집회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제가 인터넷 상에서 사귄 사람들이예요. 학연이나 지연으로 알고 있던 사람들은 없더라구요. 그런데 하루 10만원받고 동원된 사람으로 보는 옛날 사고에서 헤어나질 못하니 이 집회의 본뜻을 알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명박 대통령은 인터넷이나 할 줄 아는가 모르겠어요. 60년대의 눈으로 이 시대를 읽으려고 하니 배후 소리나 하게 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그냥 답답하기만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아무리 얘기해야 알아들을 것 같지가 않아요. 가서 촛불들고 소리지르는 수밖에요… 그 사람은 그저 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에서 살아왔으니…

  4. 동원님의 지긋지긋하다는 말씀이 가슴으로 떨어집니다.
    싱그러운 6월의 초록물결 위로 촛불의 은은한 불빛이 타오릅니다.
    손에 손에 든 촛불은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저 역시 멀리 있지만 손에 촛불 하나 밝혀 빛으로 이어지기를 바램해 봅니다.

    1. 미국의 백악관 앞에서도 촛불이 타올랐더군요.
      87년에 100만이 모였는데 20년만에 또 100만이 모여야 하는 군요.
      고맙습니다.
      전세계에서 촛불을 밝히는 군요.
      요즘 촛불을 대신 밝히는 것도 유행이예요.
      촛불 두 개 들고 하나에는 종이컵에 사과나무라고 적어갖고 행진하겠습니다.

  5. 고생하셨습니다. ^^

    전 6월 2일 밤부터 3일 새벽까지 현장에 있었는데,
    상당한 소강상태였습니다. 여러 대학 깃발이 솟아올라 있더군요.
    약 2시에서 3시쯤에 강제해산 당했었는데 충돌은 없었구요.

    그저께부터 있었던 72시간 촛불집회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7월까지 계속 된다면 주말에도 올라갈 수 있을텐데요.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는데, 과거가 발목을 잡고 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현 정권은 너무 과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1. 과거는 생각만 해도 암울해요.
      저는 직접 그 시대를 거쳐와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오늘 신문보니까 지난해 대선 치룰 때 어떤 외신에서 그랬다는 군요.
      이런 상황에선 노무현 반대 진영에서 개가 나와도 당선될 것이 뻔하다고…
      이명박 정권이 개대신 당선된 정권이란 것을 좀 알았으면 좋겠어요.

  6. 한뜻을 품은 아름답고 감동적인 행진이네요.
    김동원님도 수고 많으셨어요.^^
    재협상을 요구하는 구호에서 물러가라는 말까지 듣게하다니
    이명박 대통령 바보.

    1. 집회 현장을 갈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요.
      나는 이게 반대와 저항의 집회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어요.
      나는 지지나 찬성이 현재에 머무르는데 반하여 반대와 저항은 현재가 품고 있는 문제에 눈뜨면서 한발 더 나아가고자 하는 것으로 보고 있어요.
      사람들은 단 100일만에 이명박 정권이 어떤 정권인지 눈을 뜬 것 같아요. 1%를 위한 정권이란 말이 그것을 대변하는 것 같구요.
      지난 정권, 이번 정권, 다 지긋지긋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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