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0일 광화문에서 촛불 번개를 하다

촛불 집회에 나갈 때면 항상 혼자 가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가서는 주변에서 사진 찍는 것보다
그 한가운데 앉아서 사람들과 함께 외치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 기분은 참 묘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모두가 처음보는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이 어색하거나 낯선 느낌이 없습니다.
아마도 촛불을 든 그 뜻으로 하나된 연대감 때문일 것입니다.
촛불을 서로 나누어 줄 때면 그 연대감은
피부에 분명한 느낌으로 와닿기 시작합니다.
촛불을 나누어 받고 나누어 줄 때
그 행위는 단순히 촛불을 켜는 행위에서 그치지 않고
서로 마음을 나누는 느낌을 선물하면서 사람들을 이어줍니다.
누군가가 “이명박은” 하고 외치면
누군가가 “물러가라”는 외침으로 받아줍니다.
그렇게 하여 다함께 “이명박은 물러가라”를 만들어낼 때도
다시금 사람들과의 연대감이 분명한 느낌으로 몸에 와닿곤 합니다.
나는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들과의 그 연대감이 말할 수 없이 좋았습니다.
6월 10일 다시 촛불집회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번에는 아는 사람들을 만날 것 같았습니다.
결국 예감대로 졸지에 촛불 번개가 이루어지고 말았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명박산성.
촛불과 목소리밖에 가지지 않은 시민들이 그렇게 두렵나.
이렇게 컨테이너 박스로 성을 쌓아올리고 그 뒤로 숨다니…
제발 좀 시대가 변했다는 걸 깨달았으면 싶습니다.
옛날에 술먹던 자리에서 나의 후배인 시인 한명희는 그러더군요.
사람이 나이 40을 넘기면
그때부터는 젊은 사람들한테 배우면서 살아가야 한다구요.
이명박 대통령이 오늘의 현실이라고 생각하는게
사실은 아득한 과거일 수 있습니다.
이게 뭡니까, 도대체.
광화문 한복판에서 손안에 iPod Touch를 들고
“어, 여기 인터넷 잡히네”하면서 인터넷 상의 반응을 살펴보는 시대에.
정말 소통을 아는 대통령이라면
촛불든 100만의 사람을 모두 청와대 앞뜰로 초청하여
그들이 5분 혹은 10분씩 그들의 구호를 외치고 지나가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Photo by Kim Dong Won

이번에는 forest님과 함께 나갔습니다.
그냥 도로의 한 가운데 아무 곳이나 자리를 잡고 앉아있자고 했고,
연단이 멀찌감치 보이는 곳에 앉았습니다.
아직 우리 앞의 도로는 많이 비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직 많은 곳이 비어있는 도로의 한가운데 앉아 있노라면
내가 마치 바다에 뜬 외로운 섬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렇게 앉아 있다 보면
온통 빈자리이던 앞쪽의 도로가 서서히 사람들로 차오기 시작하고,
결국은 모든 곳이 사람들로 차면서 도로는 사람들의 바다를 이룹니다.
그럼 나는 더 이상 외로운 섬이 아니며,
나도 사람들과 더불어 바다가 됩니다.
사람들은 바다가 되어 나를 둘러싸고,
섬으로 앉아있던 내가 그들과 함께 바다로 일렁이게 해줍니다.
나는 섬으로 있다가 사람들과 함께 바다가 되는 그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녀와 함께
아직 앞쪽으로 자리가 많이 남은 도로의 아무 곳이나 대충골라 자리를 잡았습니다.
외로운 섬 두 개는 곧 바다가 되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일어나 뒤를 돌아봅니다.
바다가 섬의 외로움을 그 품에 안으며
아득하게, 끝이 안보이도록 뒤로뒤로 밀려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광화문에서 숭례문으로 이어지는 그 넓은 대로를 가득채우고
넓디넓은 바다가 되었습니다.
외로운 섬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지난 번에 보니
제가 띄엄띄엄 활동하는 블로그 공동체인 오블에서
몸은 함께 하지 못하지만 마음을 나누어준 사람들의 촛불을 함께 밝혀주었더군요.
아주 좋은 생각으로 보였습니다.
이번에는 더 나아가 forest님과 저를 ♡으로 묶어서 한 촛불에 담아주셨습니다.
감사드려요.
저도 누군가의 마음을 담아 촛불을 밝혀드리고,
그 마음과 함께 행진하고 싶었습니다.
어느 분의 마음을 촛불에 담아드릴까 생각하다가
가장 멀리 계신 분의 마음을 촛불에 담았습니다.
사과나무님, 그날 저희와 함께 행진하셨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촛불은 그냥 이명박 정권에 대한 반대 운동의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함께 나누며 살아가고자 하는 세상에 대한 사람들의 꿈입니다.
이 날도 앞자리의 여자분에게 빵 한조각 얻어먹었고,
옆의 여자분에게선 초콜렛 얻어 먹었습니다.
꿈을 나누어 먹은 느낌이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뒤도 한번 돌아봅니다.
끝없는 촛불의 물결에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아마 뒤에선 앞을 보며 그 끝없는 촛불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있겠지요.

Photo by Kim Dong Won

행진이 시작되었을 때
핸드폰을 살펴보니 세랑님에게서 전화가 와 있습니다.
이미 며칠전에 6월 10일 광화문에서 만나자고 했던 젊은 친구입니다.
전화겁니다.
“지금 어디예요?”
“예, 지금 이명박 심판 아래에 있어요.”
“예?”
무슨 소리인지 잠시 얼떨떨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동상 앞이라고 합니다.
그 앞에 떠 있는 두 개의 애드벌룬 중 하나에 실린 문구가
“이명박 심판”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물결을 따라 그곳까지 가는데 한참 걸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은 이명박 심판의 구호 아래서 만났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세랑님.
일찍와서 명박산성에 그림하나 그려놓았더군요.
예술가답게 그는 예술로 항의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명화공주님.
두번째로 합류한 맥주 멤버.
익숙한 이름이었지만 직접 만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인터넷 세상은 참 신기합니다.
처음보는데도 처음이 아닙니다.
반가웠어요.

Photo by Kim Dong Won

모르는 분.
하지만 우리가 벽에 막힌 것이 아니라
이미 벽을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말없이 외치고 있던 분.
이명박 정권이 벽으로 우리를 막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벽속에 갇힌 것이라고 말없이 외치고 있던 분.

Photo by Kim Dong Won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행진했습니다.
행진하는 세랑님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역시 세랑님의 패션 감각은 알아줘야 합니다.
언제 준비했는지 촛불 소녀 티셔츠로 액센트를 준 의상이 단연 돋보입니다.
어찌나 눈에 띄었는지
나중에 길가던 사람이 그거 어디서 구입했냐고 물어 보더군요.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죠.
티셔츠는 사실 평범한 데,
그걸 입는 세랑님의 감각이 뛰어나서 그게 돋보이는 것이란 사실을.

Photo by Kim Dong Won

촛불 집회에 나가보면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참 기발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행진하다 길의 한가운데 촛불의 길을 만듭니다.
촛불은 이제 빛이자 길이 됩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어디 그뿐인가요.
촛불은 모여 외침이 되기도 합니다.
촛불을 든 사람들이 외치는 것이 아니라
촛불들이 길바닥에 드러누워 외치도록 합니다.
길바닥에 드러누운 이 촛불들은 어지럽게 놓여있는 것 같아도
사실은 MB OUT을 외치고 있습니다.
촛불을 내려놓은 사람들은 MB OUT의 외침을 돌며 춤을 추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행진은 광화문에서 서대문으로,
서대문에서 경찰청, 중앙일보로,
그리고 다시 시청앞으로 향했습니다.
중앙일보 앞을 지날 때 모두 소리쳐 중앙일보 엿좀 먹였습니다.
조선일보도 엿먹이는 걸 빠뜨릴 수 없었죠.
물론 동아일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시청앞에 도착한 뒤
덕수궁 돌담 아래쪽의 거리 까페에서 즉석 번개 모임을 가졌습니다.
오마이뉴스의 블로거 모임도 가까운 곳에서 있었습니다만
둘 모두를 참석할 수는 없어
오블 모임에는 잠깐 얼굴만 비추고 와야 했습니다.
오블의 블로거분들, 죄송했어요.

Photo by Kim Dong Won

다큰아이님의 아드님.
잘생겼죠?
잘생긴 것도 잘 생긴거지만
12시 넘도록 얘기가 이어지는데도
한번도 칭얼대지를 않았습니다.
참 대견스러웠습니다.
맥주 모임은 아이의 동반을 언제나 환영합니다.
어떨 때는 유치원다니는 아이까지 함께 어울려 놉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세랑님.
세랑님은 자기만의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의 바이크가 그렇고, 그의 패션 또한 그렇습니다.
자기만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은,
그 이미지를 읽는 재미를 줍니다.
마치 그림이나 사진을 볼 때처럼 사람을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를 만나면 그런 재미가 있습니다.
이 날의 패션 주제는 완전히 촛불소녀였죠.
촛불 소녀를 30대가 이렇게 완벽하게 소화하기는 대단히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그는 촛불 소녀를 뿌듯한 눈초리로 바라볼 뿐인 내 수준의 차원을 넘어
촛불 소녀를 그의 패션 속으로 받아들이는 또다른 차원의 세계를 갖고 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다큰아이님.
이번에 처음만났습니다.
나는 처음에는 다큰아이님의 아이디를
이제 다자라 어른이 된 아이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번에 그 아이디가 darken eye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다큰아이님은 자신의 아이디를 다큰~라고 적죠.
알고보니 ~는 다큰아이님의 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다큰아이라는 말 속엔
다 컸지만 아직도 아이의 마음을 그대로 갖고 있고,
그 아이의 마음을 검은 눈동자 속에
그대로 담고 있는 사람이란 뜻이 담겨있는 셈입니다.
우리 말, 참 오묘하고 깊습니다.
영어까지 두루 아우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역시 젊은 사람들의 자유로운 언어 감각은 알아줘야 합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얘기 나누며 한쪽으로 촛불을 밝혀둡니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얘기도 점점 무르익어 갑니다.

Photo by Kim Dong Won

기분좋아 술을 좀 많이 마셨습니다.
술취한 상태 그대로가 사진에 찍힌 것 같습니다.
술취하면 세상이 이렇게 좀 몽롱하거든요.
그러면서 기분은 좋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undo님.
역광이라 웃음의 윤곽만 나왔네요.
자리를 옮겨서 찍어야 하는데 얘기에 취해
그만 기록을 소홀히 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푸근한 웃음은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undo님도 익숙한 이름이었지만 직접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죠.
undo는 컴퓨터 사용자에겐
edit 메뉴의 첫번째 자리에 있는 가장 익숙한 명령입니다.
undo는 우리에게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해줍니다.
undo는 바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모두 undo를 사랑합니다.
이명박 정권에 대해서도 우리는 undo 명령을 내리고 싶은게 요즘의 심정입니다.
촛불은 그 undo 명령의 또다른 형태일지도 모릅니다.

Photo by Kim Dong Won

candle님.
이번에 우리 모임에 내내 함께했던 또 하나의 멤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이 떠오르는 밤이었습니다.
“어둠으로 어둠을 물리칠 수는 없다.
오직 빛만이 어둠을 물리칠 수 있다.
증오로 증오를 치유할 수는 없다.
오직 사랑만이 증오를 치유할 수 있다.”

그 말은 이렇게 변주가 되더군요.
“권위와 억압을 분노로 넘어설 수는 없다.
권위와 억압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자유뿐이다.”
젊은 사람들은 자유롭습니다.
특히나 맥주의 번개에서 내가 만난 젊은 사람들은
더더욱 그 자유로움이 확연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그 자유로운 젊은 친구들 속에 섞여 6월 10일의 밤을 함께 했습니다.
즐겁고 가슴 뿌듯한 밤이었습니다.
이미 익숙한 이름들이었지만
그러나 세랑님을 빼놓고는 모두 처음보는 얼굴들이었습니다.
처음보는 얼굴이 전혀 낯설지 않고, 익숙한 오늘의 세상.
나이를 묻지 않고, 고향을 묻지 않고,
출신 학교를 묻지 않고, 직장을 묻지 않고,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고 서로 만나 얘기하는 사람들.
그래서 처음만나도 전혀 낯설거나 어색하지 않은 친숙한 사람들.
열린 세상에서 젊은 친구들과 함께 한 6월 10일의 밤,
바로 그 밤이 옛날과는 확연하게 다른 오늘의 세상이었습니다.

10 thoughts on “6월 10일 광화문에서 촛불 번개를 하다

  1. 술취한 표정, 엄하신대요. ㅎㅎ
    빨간색 코디로 정열을 불태우셨군요.
    사람들이 떠날 분위기가 아니라서
    새벽까지 머물다가와도
    일찍 나서는 기분이 들었어요.
    손에 손 잡고,
    아는 사람들 모두 함께하는 공간이었어요. (^^)

    1. 얘기 듣느라구…ㅋ
      그렇게 새벽까지 사람들이 모여 우리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는 데도 여전히 알아듣지를 못하는 이명박 정부는 정말 바보~

  2. 명박산성 너머에 계신 분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다네요.
    “민주주의는 너무 늦게 진행된다. 경험으로 안다.”

    센쓰쟁이 촛불 중 누군가 이런 댓글도 남겼다는군요.
    “공약을 지킬까 봐 두려운 건 네가 처음이다.”

    1. 걸작 댓글입니다. 하하.

      김현의 말이 생각나요.

      무정을 분석하면서 그 주인공 이형식을 1910년대의 가짜의식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았었죠. 이 민족을 어떻게 구해야 할 것이냐에 대한 대답을 영어를 잘 배워야겠다고 성급하게 대답해버린 서구 도취 세대란 것이 김현의 분석이었어요. 외국문물의 습득이 지적 장식 이외에 아무런 실천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연유를 그것에서 찾으면서 정작 형식 일행이 미국에서 배웠어야 할 것은 제국주의 일반적 속성이었다고 했던 얘기가 잊혀지지가 않아요.
      비극이예요. 아직도 1910년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 우리의 대통령이니… 그 밑의 인간들도 하나같이 똑같고… 어륀지 때 이미 알아보았죠. 저런 게 어떻게 대학 총장인지…
      그는 건설로 돈을 벌면서 돈버는 방법이 아니라 건설에서 어떻게 자본이 노동자를 수탈하는가를 배우고 그걸 고칠 꿈을 꾸었어야 정상이었는데 말예요. 이 비극을 어찌해야 할지 그저 막막해요.

  3. 참여는 못했지만 어마어마한 촛불의 빛남이 참 가슴 설레였습니다.
    그렇게 하나된 마음들이 원하는 바가 이루어졌음 좋겠어요.
    그래서 마치 월드컵때 4강까지 가며 환희로 가득찼던 기쁨들을
    느낄수있었음하는 바램이에요.

    이명박 대통령이 어쩌구 저쩌구 제가 얘길 하면 울 아이들이 그래요.
    엄마~대통령이라고도 말하지말라고. 헉…
    어린 아이들에게 참 못볼것 보여주는것같아 마음이 그렇더군요.
    예전 어르신들이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을때 대통령이라고하면
    칭찬해주고 기특해했는데 대통령도 모두 훌륭한 대통령만 있는것은
    아니란걸 너무 어린나이에 알아버리게 한것같아요.

    1. 원래 아는 사람들끼리 몰려나온 곳에 가면
      아는 사람들이 없는 경우엔 뻘쭘하기 마련인데
      저의 경우엔 혼자가도 아무렇지도 않더라구요.
      모든 행사가 좀 이랬으면 좋겠어요.
      혼자온 사람도 소외감 느끼지 않는 그런 식 말예요.
      어떤 사람은 혼자 갔을 때는 좀 그랬다고 했는데
      저는 카메라를 들고 다녀서 그런지 그런 느낌은 못받았어요.
      하긴 카메라는 기계를 넘어 일종의 동반자 비슷한 측면이 있기는 해요.
      게다가 살펴보면 꼭 혼자나와 우두커니 한 자리를 지키다가 가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세상이 바뀌었다는 느낌은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정리해서 설명을 못하고 있다가
      이번에 사람들 모습보고 확실한 실마리를 잡은 것 같아요.
      이제는 제각각 자기 삶을 살면서 하나가 될 수 있는 시대인 것 같아요.
      우리가 꿈꾸던 세상이죠.

  4. 핑백: forestory
  5. 사과나무 속에서 타오르는 촛불이 제 마음까지 비추었습니다.
    참으로 가슴이 뭉클하네요.
    동원님, 감사드려요. 함께 그곳에서 춧불로 밝혀질 수 있었음에…

    촛불은 그냥 이명박 정권에 대한 반대 운동이 아니라는 표현에 동감합니다.
    그것은 함께 나누며 살아가고자 하는 세상에 대한 사람들의 꿈이라는 말씀 또한 공감 또 공감합니다.

    지금이 어느 시대입니까…
    쇠붙이로 바리케이트를 치고서 그 뒤로 숨은 사람…
    안타깝습니다.
    촛불을 밝히고 있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대통령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기도합니다.

    1. 87년에 노태우 당선되고 참 많은 패배감을 겪었는데 그게 패배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아이들 키우면서 요즘 아이들이 걱정이었는데 우리가 아이들을 잘못 키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멀리 있어도 얼마든지 함께 할 수 있는 시대라는 것을 알게 되었구요.
      많은 것을 깨닫게 한 자리였습니다.

  6. 핑백: SERANG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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