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의 풍경이 협연해준 음악회 – 이회영과 함께 하는 음악 산책

그 음악회로 가는 우리의 걸음은
어느 날 집으로 날아든 음악회 초대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초대장을 받고 난 나의 첫 반응은 응? 누구지? 라는 것이었다.
초대해주시는 분의 이름이 선뜻 짐작에 잡히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물어보았더니 그녀도 모르겠다고 했다.
주변분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아는 분이 그날 사회를 보기로 되어 있었고,
또 이웃의 자녀 두 명도 그 날 무대에 선다고 했다.
느닷없는 초대장에 대한 궁금증은
이제 간만에 가보는 음악회에 대한 설레임으로 바뀌었고,
그 즈음, 나는 혹시 초대해주신 분이
언제 한번 뵌 적이 있었던 분이 아닐까 하는
어렴풋한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내 기억은 멀리 전남 벌교로 내려가 있었다.
나중에 만나뵈니 정말 지난 해 벌교에서 잠깐 뵈었던 분이었다.
초대장의 사연을 보면
지난 해 딸이 독일에서 결혼을 했고,
해외에서 한 결혼이라 많은 분들의 축하를 받았으면서도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는 것과
그 딸의 음악을 아는 분들과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8월 8일 토요일, 그 음악회에 가게 되었다.
음악회는 “이회영과 함께 하는 음악 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맞아 주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음악회는 청평댐 아래쪽의 한강변으로 위치한
가일미술관의 아트홀에서 무대를 마련했다.
음악홀에 들어서면 양쪽의 창에 바깥의 산과 강이 가득 차 있다.
자연 풍경이 협연을 해주는 음악회였다.

Photo by Kim Dong Won

첫 연주자로 음악회의 문을 열어준
김채윤양과 김현승군이 사전 연습 중이다.
누나동생 사이인 둘은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을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바이올린에는 김현승, 피아노에는 김채윤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다른 출연자들도 연습중.
오페라 카르멘 중에서 하바네라를 불렀던
메조 소프라노 김상희씨인 듯 싶다.

Photo by Kim Dong Won

음악홀 바깥에도 볼 것이 많다.
유리창을 사이에 놓고 짙은 유리창을 거울삼아
연주홀 안으로 제 모습을 슬쩍 들이민 금속성 조각품이
연주홀 안에서 더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짙은 색의 유리창은 종종 거울이 되어
안에선 바깥으로, 바깥에선 안으로
슬쩍 그림자를 들이밀 수 있도록 해준다.
거울은 안이 없지만 짙은 유리창은 안이 있는 거울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사진을 찍는다는 좋은 핑계거리를 내세워
연습하는 동안 아주 가까이서 연주를 지켜볼 수 있었다.
언젠가 맨앞자리에 앉아 발레를 구경했던 적이 있었다.
멀리 뒤쪽에서 볼 때는 우아한 동작들만 눈에 들어왔었는데
눈앞에서 발레를 보니 신발끌리는 소리와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의 거친 숨소리가
전혀 여과되지 않고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 소리는 소음이 아니라
발레의 모든 동작에 짜릿한 역동성을 가미해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맨앞자리에서 발레를 보던 날,
한동작 한동작이 더욱 짜릿한 감흥이 되었던 기억이다.
피아노 또한 멀리서 들으면
발레가 동작으로 보이듯 음으로만 듣게 된다.
그러나 그 곁으로 서자
피아노는 손으로 추는 춤이었다.
이회영씨는 건반의 무대 위에서
손을 섬세하게 또는 힘있게 움직여 춤을 추고 있었다.
음악은 그러고 보면 놀라운 변이의 현장이다.
바로 춤이 선율이 되는.
그 여파 때문이었는지
음악회 내내 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동시에 어떤 춤을 상상하고 있었다.
내 기억 속의 발레처럼 역동적인 동작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이회영씨 남편 첼리스트 나인국씨.
연습 때 가까이서 한장 찍었다.
물론 첼호의 현 위에서 줄타기를 하는 활의 움직임도 볼 수 있었다.
현을 짚어주는 손에선 소리에 느낌을 넣기 위한 미세한 움직임도 감지되었다.
손이란 그것보면 참 대단하다.
느낌이 손을 타고 현으로 가며,
또 손은 건반 위에서 춤을 춰 선율을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음, 다른 것을 둘째치고
미인을 아내로 맞이한 것은 꼭 축하해주고 싶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연습 구경하다 다시 바깥으로 나왔다.
멀리 양수리쪽으로 구름이 아주 좋다.
음악회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설레임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강변에서 두 여인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빈 의자들도 둘의 얘기에 귀를 기울인다.
뒤쪽으로는 한강이 잔물결을 타고
두물머리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하늘은 비가 올듯 약간 흐려있어 사람들을 걱정하게 했으나
또 한편으로 푸른 하늘을 여기저기 열어두어
비는 안오겠지 하는 기대를 품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결국 하늘은 사람들의 기대 쪽으로 손을 들어 주었다.
자리는 앉아서 무슨 얘기를 해도
그냥 시가 될 듯한 자리였다.
게다가 오늘은 그 얘기의 추억에
좋은 음악까지 함께 해주리라.

Photo by Kim Dong Won

이 날 명사회자로서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서재석 선생님.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역시 카르멘에게 건넨 꽃다발과
무릎꿇고 바치고 싶었지만
아내가 두 눈 부릅뜨고 보고 있어
그만 어정쩡한 자세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그많은 사람들 앞에서 털어놓고야만 고백의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그 고백을 웃음으로 무마해 주었다.
곡의 앞에서 때마다 짧게 곁들여준 해설은
나같은 클래식 문외한들에겐 큰 도움이 되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이 날의 음악회를 마련해주신 이승련 선생님 가족.
가운데가 이 날의 주인공인 나인국, 이회영씨.
첼리스트와 피아니스트 부부이다.
양쪽의 두 분은 이회영씨 부모님인 안예숙, 이승련 선생님.
아버지의 회상 속에서 딸에 대한 사랑을 읽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부부의 연주.
1부에선 드보르작의 첼로협주곡 B단조 작품번호 104번의 1, 2악장을 들었고,
2부에선 「그리운 금강산」을 들었다.
「그리운 금강산」은 김지현이란 분이 결혼 선물로 편곡해주셨다고 들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박근배씨의 바순 연주.
「Hymn」이란 곡을 연주했다.
사회자의 해설에 의하면
「당신의 밤과 음악」이란 라디오 프로그램의 시그널 뮤직이라고 한다.

Photo by Kim Dong Won

메조소프라노 김상희씨의 카르멘 열창.
이 날 몇몇 분들이 카르멘에게 장미꽃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아주 예의바른 카르멘이어서
나이든 분들에게만 정중하게 한송이씩 건넸다.
그러나 노래는 열정적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롯시니의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 중에서 한 부분을 들려주고 있는
바리톤 김동원씨.
윽, 이 날 나까지 포함해서 김동원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자그마치 세 명이나 있었다.
이러다 나까지 나가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것은 아닌지
저으기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Photo by Kim Dong Won

공연의 마지막에 모두가 함께 노래 하나를 불렀다.
사람들은 노래를 듣기만 하고 끝낸 것이 아니라
노래로 하나가 되어 공연을 마쳤다.

Photo by Kim Dong Won

공연 후에는 식사 자리가 마련되었다.
음악에 맛난 식사까지 대접받다니 이런 호사가 없다.
이승련 선생님 생일도 겹쳐있었는가 보다.
출연진들이 아버님께 노래 선물을 했다.
음악이 무대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난 음악이 이렇게 생활과 함께 할 때, 이상하게 친근감이 가더라.

Photo by Kim Dong Won

두물머리쪽으로 보니 저녁 하늘이
아름답고 웅장하게 구름을 펼쳐
푸른 환호로 음악회의 피날레를 장식해 주고 있었다.

13 thoughts on “강변의 풍경이 협연해준 음악회 – 이회영과 함께 하는 음악 산책

    1. 예술도 이웃과 얼마든지 나눌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요. 모두가 행복해 했습니다.
      이상하게 무대에 있는 분들이 아는 분들이면 뿌듯함이 배가 됩니다.

  1. 아버지의 사랑을 생각해보게 하는 음악회였지.
    딸에 대한 사랑, 가슴 따뜻해지는 저녁이었다고나 할까…

    두 시간 가까이 협연과 독주와 반주까지…
    쉽지 않은 시간이었을텐데 그의 연습량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에 대한 딸의 전폭적인 신뢰,
    행복한 밤이었다네~^^

    1. 한국에선 특히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의미가 큰 거 같어.
      여전히 아들 아들하는 구석이 남아있는 나라니까.
      난 우리 딸 낳고 병원에서 벌어진 풍경을 보곤 우리 나라가 조선시대로 돌아간 거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할 정도였으니까.
      이번 음악회는 음악만 들은 게 아니라 사랑도 볼 수 있었던 아주 특별한 음악회였던 거 같어.

  2. 이스트맨님 쥔장도 안오는 블록을 다 찾아오시고….죄송하네요..ㅎㅎ
    저 연주회는 참 좋았을거같네요~
    저도 요즘 연주회를 자주 가게 되는데…다닐수록 빠져든다고 할까요?
    자꾸 찾게 되네요~^^

    1. 많이 바쁘신가 보다 생각했지요.
      아참 바둑이님도 독일에서 공부하셨죠.
      이 분들도 독일에서 음악 공부를 했더라구요.
      음악회는 내가 무슨 복에 이런 호사를 다 누리나 싶었죠 뭐.

    2. 바쁘기도 했고..인터넷세상보다는 아날로그세상에서 살다보니 뜸했습니다~^^
      독일에서는 공부라고까지는 못했구요..그냥 어영부영있다왔죠..머~^^;; 음악하시는 분들은 독일 이태리는 웬만하면 다 가시더라구요…독일에 음악하는 한국인이 서울 김서방만큼이나 많거든요.^^
      연주회는 무료도 많아요. 시에서 하는 청소년음악회는 저렴도 하고요..아마츄어 연주회도 공짜고 꽤 볼만하답니다~^^

    3. 저도 온라인에서 알아서 오프에서 얼굴보고 그러고 있지요.
      온오프도 다 나름 매력있는 거 같어요.
      이제 슬슬 바뻐지려구 하네요.

  3. 와우~ 그 날의 연주들이 다시 들리는 듯 하오이다.
    주인공이 참 아름다웠죠.
    백옥같은 피부와 파우워플한 연주, 안어울리는 듯하나 강하게 남는 조화.
    제가 잠이 눈을 부릅뜨기 했었죠.
    ‘아니, 저 싸람이 왜 갑자기 무대위로 뛰어드는거야?…’
    그리곤 잠시후 생각했죠.
    ‘아니, 왜 저리 어정쩡 멋없이 꽃을 바쳤데? 하긴 언제 해봤어야 순간동작이 나오지..”
    본인도 그 순간이 지나고 아쉬웠나보죠. 그 어정쩡함을 변병하는 멘트를 그렇게 날니다니..

    1. 전 사실 목짜님이 사회 아주 잘 보실 것을 미리 알고 있었거든요.
      근데 사람들이 끝나자마자 아주 잘했다고 하시길래
      당연한 걸 무얼 그리 칭찬하시나~ 했어요.
      (요거, 완전 아부성 발언같은데 사실이거든요.^^)

      그 변명성 멘트가 없었으면 그 어정쩡함이 지워지질 않았겠죠.
      참으로 센스있는 멘트셨어요.^^

    2. 흐흐, 무릎꿇고 모험을 하셨으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요.
      피카소가 그랬거든요. Yes, art is dangerous. If it is pure it is not art. 예술의 무대 였으니 무릎꿇어도 분명히 용서 받으셨을 거에요. ㅋㅋ

    3. 요즘 제 얼굴을 올려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여유 있게 진행했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
      순간들이었죠.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