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의 청계산으로 향하게 된 것은 순전히 구름 때문이었다. 하늘 높이 구름이 부풀어 오르면 사람의 마음도 부풀어 오르고, 그러면 부푼 마음을 집안에 묶어두기가 어려워진다. 구름은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보이지만 왠지 구름의 눈높이는 높이가 아니라 지역으로 눈을 맞추어야 할 듯한 느낌이다. 그러니까 도시는 구름이 있어도 구름과 눈을 맞출 수 없는 곳이다. 구름과 눈을 맞추려면 산으로 가야 한다. 나는 산으로 가기로 했다.
그러나 그 산이 쉽게 결정이 난 것은 아니었다. 마음은 우선 가까운 남한산성을 가장 먼저 떠올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마음이 곧장 남한산성으로 기운 것은 아니었다. 너무 자주 갔다는 식상함 때문에 남한산성은 그만 마음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그 산성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의 절반이 서울이란 거대한 도시란 것도 남한산성을 마음에서 밀어내는데 한몫했다. 도시라는 말보다 마을이란 이름이 어울리는 풍경을 내려다보며 그 마을 위로 구름의 풍경을 두고 싶었다. 다음으로는 도봉산과 소요산이 입에 올랐다. 너무 멀다는 느낌이 들었다. 두 산 모두 내 마음의 갈등을 넘어서지 못했다.
결국 마음은 국수역에서 내려 갈 수 있다는 청계산으로 기울고 말았다. 회사로 가던 그녀가 차를 돌려 팔당대교를 넘어간 뒤 나를 팔당역에 내려주고 갔다.
생전 처음 팔당역에서 전철을 탔다. 전철에 오르기 전에 작은 생수 두 병을 샀다. 한 병에 700원씩, 1,400원. 일반 수퍼에서는 500원에 파는데… 미리 수퍼에 들를 걸하는 후회를 슬그머니 눌러주어야 했다. 400원 어치의 후회였다.
팔당역은 지하에 있는 역이 아니라 노천역이다. 역은 지붕의 사이를 비워놓아 그 틈새로 하늘의 구름과 눈을 맞출 수 있다. 비가 오면 빗방울이 그 틈새로 가운데를 엿볼 것이다. 비오는 날도 이곳에서 한번 전철을 타보고 싶다. 용문까지 가니 그쯤 가면 걷다가 올만한 곳이 있을 것이다. 20~30분에 한 대씩 전철이 오니 언제고 기다릴만한 시간이란 것도 매력이다. 아마도 비오는 날엔 빗방울이 후둑후둑 지붕을 두들기다 발을 잘못디딘 녀석들이 가운데의 허방으로 쑥 빠지고 말 것이다. 그럼 나는 지붕에서 그렇게 시끄럽게 뛰놀더니 아주 옹골지다고 고소해하며 낄낄거릴지도 모른다.
지붕은 가운데만 약간 비워놓았지만 옆은 아예 휑하니 비워놓았다. 전선줄이 가늘게 허공을 긋고 지나가며 시야를 방해하긴 하지만 역의 옆으로 놓인 예봉산과 적갑산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여러 번 올랐던 산들이다. 사실 예봉산 꼭대기까지 간 것은 몇 번 되지 않는다. 항상 꽃을 쫓아가다가 샛길로 빠지곤 했었다. 오늘은 그 산의 산자락 아래서 다른 산으로 가는 전철을 기다리고 있다.
열차는 휘어지면서 부드럽게 역으로 들어올 것이다. 곡선은 감싸안는 듯한 느낌의 선이다. 찌르듯 다가서는 직선보다 느낌이 훨 좋다. 나는 나를 감싸안고 청계산까지 데려다줄 열차를 기다렸다.
운길산역을 지난 열차가 양수리로 들어가는 철교를 지나간다. 전철 안의 사람들은 반쯤 차 있어서 좌석 또한 듬성듬성 이빠진 듯 비어 있었다. 좌석을 널널하게 꿰차고 앉아 북한강을 올려다 보며 사진을 찍었다.
차창에 선팅을 짙게 해서 색깔이 많이 죽었다. 사람들에겐 차창으로 보이는 강의 풍경에 대한 갈증보다 쏟아져 들어오는 강한 햇볕에 대한 고역이 더욱 컸나 보다. 그래서 용문행 전철의 창은 보여주기보다 오히려 바깥을 막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막힌 창의 북한강 하늘에도 구름은 가득했다.
국수역에서 내린 뒤 등산로 입구를 찾아 걸어가다가 논가에서 원추리를 만났다. 목젖이 길게 튀어나올 정도로 주황빛 노래를 목청껏 부르고 있었다. 잠시 그 노래를 눈에 담았다.
내 걸음이 따라간 길은 정자리란 마을을 지나쳐 산으로 접어들었다. 중간에 버스를 한 대 만났다. 이런 곳에서 버스는 자주 만나기가 어렵다. 다들 차를 갖고 다니는 세상이라 버스 이용객이 적은 관계로 아주 띄엄띄엄 다니기 때문이다. 버스는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길로 들어와선 다시 방향을 틀어 오던 길로 돌아나갔다.
찻길을 버리고 산길로 접어들자 지상에선 흙빛 대지 위에서 초록이 부풀어 오르고 하늘에선 푸른빛 하늘 가득히 구름이 부풀어 오르며 세상을 반반으로 나눈다. 부풀어 오른 지상의 초록은 한 계절을 가고, 부풀어 오른 하늘의 구름은 그저 몇 시간만 머물 것이다. 오래도록 머무는 것과 잠시 피어났다 사라지는 것들, 그 둘이 오늘은 한 자리에서 부풀어 오르는 마음으로 함께 하고 있다.
산으로 접어들자 초록이 범람하여 하늘은 잘 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가끔 공터처럼 위를 비워둔 곳이 나타난다. 보통 지상의 공터엔 쓰레기가 모이기 마련이지만 숲의 나무가 위를 비워둔 공터엔 하늘과 구름이 가득 채워져 있다.
나무 한그루가 등산로를 가로 질러 몸을 길게 누이고 있다. 갑자기 뜬금없이 어릴적 불렀던 노래가 생각났다. “나무야, 나무야, 서서자는 나무야. 나무야, 나무야, 누워서 자거라” 쳇, 나무보고 누워서 자라니, 그게 할 소리야. 누워서 자면 죽은 나무인데 나무보고 죽으라는 소리야, 뭐야. 어릴 때 아무 생각없이 불렀던 노래를 흥얼거리다 갑자기 딴지 걸고 넘어져 본다.
사실 나무는 모두 평행으로 자란다. 이렇게 머리를 한 자리로 모으고 숙덕거리는 법은 거의 없다. 그러나 광각으로 찍어놓으면 이 꼴이 된다. 그렇긴 해도 쭉쭉 뻗어나가는 형상은 그대로이다. 저렇게 쭉쭉 몸을 뻗으니 시원하기는 하겠다. 나도 팔 한번 뻗어보았다. 조금 키가 자란 느낌이 들었다.
1000m도 안되는 산이라 우습게 생각하고 왔는데 숲이 상당히 무성하다. 머리 위로 시선을 들어보면 어디나 하늘을 꽉 막아두고 있다. 여기저기 틈은 있지만 몸으로 비집고 들어오기엔 좁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어딘가에 크게 뚫린 출입구가 있게 마련이다. 바로 저기이다. 뚫어놓은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가 잎을 갉아먹어 뚫어 놓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마 겨울이라면 빈가지 사이로 시선이 상당히 멀리까지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름산에선 무성한 나뭇잎에 가려 시선이 멀리까지 가질 못한다. 그저 산길을 따라 휘어지기 직전까지만 잠깐씩 열릴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나무의 품에 온전히 묻혀볼 수 있는 것이 여름산이다. 그 품은 산마다 다르고 오르는 높이마다 다른데 이 곳은 떡갈나무의 품이다.
난 요런 나무를 만나면 무척이나 궁금하다. 얘, 너네들은 하나인 데 갈라선 거니, 아님 여럿인데 하나가 되고 싶어 부등켜 안고 있는 거니.
하나하나 뜯어내면 조각조각 뜯겨져 나올 듯한 바위 하나를 만났다. 그 옛날 무수한 물결이 겹쳐 이 바위가 된 것일까. 물결도 굳어질 수 있는 것일까. 혹시 끊임없이 일렁이던 물결의 불안이 오랜 세월의 소망을 축적하여 드디어 두드려도 흔드리지 않을 굳건한 안정을 손에 넣었을 때 그 자리에 바위가 서게 되는 것은 아닐까. 혹시 저 바위 위에 앉아 있으면 그 오래전의 과거 속에서 출렁대던 물결의 추억이 아련하게 일어나기도 할까.
청계산에서 만났던 꽃 중에서 가장 흔했던 꽃, 큰까치수염이다. 그러나 까치는 보지 못했다. 여기서 면도하고 멋낸 뒤에 다들 다른 산으로 가버렸나 보다. 가끔 까마귀가 까악까악 울어대는 소리는 들렸다.
청계산 정산으로 가는 길목에서 형제봉을 거친다. 주변에 나무가 무성해 아래쪽을 보기 어려웠으나 목책으로 전망대를 마련해놓아 시원하게 산 아래쪽을 조망할 수 있었다. 멀리 양평쪽까지 다 보인다. 매일 차로 가던 곳은 오늘은 눈으로 한달음에 가본다. 역시 산에 와서 구름을 곁들여 보는 풍경이 좋다.
사람들 몇이 형제봉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이런 날더운 날엔 너무 높은 산은 위험하다는 얘기도 있었다. 오늘 같은 한여름엔 청계산이 오르기에 딱 좋다는 얘기였다. 이런 날 바위가 많은 용문산 같은 곳은 위험하다고 했다. 사람들은 용문산이 입장료를 받는지 안받는지로 잠시 티격태격했다. 나는 끼어들지 않았다. 난 용문산은 항상 돈을 내고 들어간 기억을 갖고 있었다. 돈이 없이 산의 문턱까지 갔다가 못들어 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지는 법이니까.
큰까치수염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종종 등산로 주변에서 하늘말나리를 만났다. 꽃을 잘 모르면 마을 어귀에서 만났던 원추리와 헷갈리기 딱좋다. 원추리와 달리 나리꽃은 모두 얼굴에 주근깨가 있다. 햇볕은 원추리가 더 많이 받는 것 같은데 어떻게 피부 관리를 하길래 원추리는 얼굴에 주근깨가 하나도 없고 나리꽃은 햇볕도 잘 안드는 숲속에 피어 있는데도 주근깨 투성이다. 사람과 달리 꽃은 주근깨가 있는 나리꽃이 더 예쁘다.
드디어 청계산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 표지석이 둘이다. 아마 요게 처음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높이가 658m라고 말하고 있었다.
청계산의 또다른 정상 표지석이다. 모양으로만 보면 요게 좀더 괜찮은 듯 싶다. 정상에 간이 막걸리집이 있었지만 문은 닫혀 있었다. 금, 토, 일에만 문을 여는 듯 보인다. 한잔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냥 헛물만 켜는 수밖에.
청계산 정상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이번에도 역시 양평 방향의 풍경이다. 저 강줄기는 그러니까 남한강 줄기이다. 요즘 남한강 줄기는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댐과 보로 강을 막으면 강이 속병으로 곯는다.
청계산 정상은 헬리콥터 착륙장을 겸하고 있어 사방으로 전망이 트였다. 내가 산에 오른 날에는 흰구름이 아주 좋아 산 아래쪽 풍경보다 하늘의 구름에게 더 눈길이 갔다. 손가락으로 쿡 찌르면 피식하고 바람이 빠질 듯 부풀어 올라 있었다.
어디로 내려갈까 고심을 하다 올라온 길을 버리고 고현리 마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길이 상당히 험했다. 나중에는 거의 밀림을 헤치고 나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하지만 그 길에서 산수국 군락지를 만났다. 그렇게 많은 산수국은 처음이었다. 가파른데 피어 있어 그다지 많이 찍지는 못했지만 가을이나 겨울에 그 군락지에 가서 다시 산수국 사진을 찍어볼까 생각중이다. 산수국은 진 뒤의 모습도 사진에 담을만하기 때문이다. 산수국은 거의 여름 한창 때의 모습을 하나도 흐트러뜨리지 않고 삶을 정리한다. 다만 색은 지키지 못한다.
사실 고현리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 것은 그곳으로 내려가면 계곡이 있다고 알려주고 있는 안내도의 그림 때문이었다.
실제로 계곡을 만났고, 그곳에서 잠시 달아오른 발을 식혔다. 계곡의 물은 이상하게 차다. 청계산의 계곡 또한 마찬가지여서 발을 담그고 오래 버티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길이 너무 험해 계곡을 만난 반가움 못지 않게 후회도 심했다. 중간에 길을 놓쳐 다시 하산로를 찾아내느라 잠시 헤매기도 했다.
산을 거의 다 내려왔을 때 산딸기를 만났다. 허기가 져서 좀 따먹었다. 철이 지난 딸기는 맛이 없는 법인데 상당히 달아서 먹을 만했다.
산을 내려온 뒤 알아보니 국수역에서 상당히 멀리 벗어나 있었다. 동네 할머니께 국수역으로 가는 방향을 물었더니 언덕을 넘어가는 고갯길을 가리킨다. 발이 아파 엄두가 나질 않았다. 마을에 버스가 다니냐고 했더니 그렇단다. 1시간 정도 마을의 버스 정류장에서 노닥거리며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는 양평쪽으로 가는 버스여서 그 버스를 타고 나가 국수역이 아니라 아신역에서 전철을 타고 돌아왔다.
아신역에선 국수역을 떠난 열차가 터널을 빠져나와 역으로 들어오는 것이 빤히 보였다. 깜깜한 터널을 지나오며 불을 켠 전철은 마치 눈을 똥그랗게 뜨고 역을 노려보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계속 눈을 뜨고 오는 것은 아니었고 터널을 빠져나오자 불을 껐다. 한낮의 전철은 터널 속에서만 눈을 뜨고 그밖의 구간은 눈감고 다닌다. 하긴 어두운데서만 눈을 뜨면 된다. 밖은 눈감고도 훤하기 때문이다.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내린 도심역에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빗속을 뚫고 집으로 돌아왔다. 비는 모든 곳에 내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미 내가 사는 곳은 거쳐간 뒤였다. 요즘 비는 그렇게 발이 달렸는지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내가 올랐던 청계산 쪽으로 간 듯했다.
6 thoughts on “양평의 청계산을 오르다”
먼저, 산딸기 하나 따먹고^^
나리꽃이 멋지네요.
저번에 암남공원 갔을 때 낚시터까지는 못 내려갔었지요.
이틀 전 손ㄴ미이 와서 내려갔다가 절벽에 나리꽃 두 송이가 나란히 피어있는 걸 보고 감탄을 했었는데…
부부싸움은 잘 끝나셨나요? 하하하
부부싸움은 안하는게 최고인 듯 싶습니다.
해도해도 잘 마무리가 안됩니다.
암남공원에서 꽃만 찍고 돌아다녀도 시간가는 줄 모를 듯 싶습니다.
담달에 얼굴뵙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청계산, 좀 긴 편이죠?
구름이 벗 되어 외롭진 않으셨던듯.
저희는 봄 가을에 갔는데, 꽃은 별로 못 봤던 것 같아요.
저희도 여러 번 이용했는데, 덕소에서 용문까지 국철이
등산 인구 저변 확대에 큰 공을 세우는 것 같습니다.
국수역 방향 등산로는 괜찮은데 그 반대편은 아주 험하더라구요. 후회 많이 했습니다. 경관도 별로고. 이제 그쪽으로는 가지 않으려구요. 그냥 산수국 군락지까지만 가고 다시 오던 길로 가는게 낫겠다 싶어요.
이제 원추리와 나리는 구분할 수 있게 됐습니다.^^
나리꽃은 시골에서 자랄 때 많이 봤는데 원추리는 본 기억이 별로 없어요. 어느 시집을 읽다가 그 속에 원추리가 나와서 관심을 갖고 알아본 꽃이었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