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 토요일,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산가는 길은 기차와 승용차, 버스, 비행기 등등으로 나뉘어지고
버스를 선택해도 고속버스와 시외버스로 또 나뉘어진다.
내가 선택한 것은 동서울에서 해운대까지 가는 시외버스였다.
강변역의 동서울 터미널이 집에서 가깝다는 것이 그 이유의 전부였고,
행선지가 해운대라는 것도 그 이유의 강조점으로 삼기에 충분했다.
난 버스에서 내려 곧바로 부산 바다를 보고 싶었다.
내려가던 날의 부산길을 기록해본다.
이 기록에는 사실과 허구가 뒤섞여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일을 마무리했다. 일이 마무리되지 않은 여행길은 여행의 발걸음을 무겁게 만든다. 마무리되지 않은 일은 중력의 자장을 갖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길에 나선 걸음의 발목을 잡는다. 떠난 길에서 일의 중력에 발목이 잡히기 싫어 아침 일찍 일을 마무리했다. 미리 확인하고 점찍어둔 버스 시간은 10시 30분이었지만 꼼지락거리는 사이에 이미 오전 시간이 9시 30분을 넘기고 있었고, 시간은 내 마음을 급하게 만들었다. 그 다음 버스 시간은 12시로 훌쩍 넘어가 버린다. 집을 나선 것은 9시 50분쯤이었다. 집을 나서자 푸른 여름의 흔적 사이로 노란 가을을 사이사이 끼워놓은 골목의 느티나무가 잘갔다 오라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도 잘갔다오마고 손을 흔들었다.
역시 강변역의 동서울 터미널은 집에서 가깝다. 10시 15분쯤 창구에서 표를 끊었다. 표끊는 여자가 묻는다. “한 장이요?” 내가 답했다. “같이 갈 수 있으면 두 장을 끊던가요.” 여자가 째려보고는 한 장을 끊어주었다. 요금은 28,900원이었다. 내가 해운대까지의 버스 시간을 확인하며 착각을 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해운대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었다. 5시간 30분이 걸리는 시간을 나는 4시간 30분으로 착각을 했다. 나는 무려 1시간이나 내 마음을 버스보다 더 먼저 해운대로 내려보내 나를 기다리게 했다. 기다리는 것이 내 마음이라 조금 느긋하기는 했다. 내 마음은 내가 한 시간 정도 늦는 것은 얼마든지 이해해 줄터이니. 내 속에 같이 사는 내 마음이 그 정도도 이해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오랜 세월을 같이 살았겠는가. 늦어도 느긋할 수 있는 것이 내 몸 속에 같이 사는 내 마음의 기다림이다.
버스는 세 자리만 남고 다 찼다. 번호를 짚어가며 내 자리를 찾아 들어오다 보니 내 자리 옆에는 예쁜 여자가 앉아 있다. 로또에 맞은 기분이었지만 난 그 자리를 포기하고 맨 뒤의 창옆에 있는 번호 없는 자리에 앉았다. 이상하게 그 버스는 맨 뒤 두 자리에 번호가 없었다. 번호가 없으니 아마도 아무도 그 자리를 요구하지는 못할 거다. 차창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가야 하는 내게 그건 날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위치도 다른 자리보다 조금 높아 시야 확보도 원활한 자리였다.
버스가 떠나면서 사람들은 모두 분홍색 커튼을 펼쳐 바깥 시야를 차단했다. 사람들은 눈을 찌르듯 덤벼드는 날카로운 햇볕을 못견뎌 했다. 부산에 도착할 때까지 커튼은 거의 걷히는 법이 없었다. 사람들은 바깥 풍경에 대한 갈증보다 내려감은 눈 속에서 즐기는 편안한 잠에 더 익숙했다.
버스 속에서 왠 바보같은 녀석을 하나 보았다. 나중에 알았는데 내 자리 옆에 앉아 있던 예쁜 여자는 엉뚱한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 자리는 바로 그 바보 같은 자식의 자리였다. 짜식, 빈자리에 그냥 앉아 가지, 굳이 자기 자리 내놓으라고 했다. 그 여자 좌석 번호 확인하더니 어, 내 자리는 여기 앞자리네 하면서 앞자리로 갔다. 그 녀석 내내 혼자 앉아서 갔다.
예상과 달리 버스는 중부고속도로로 가질 않고 잠실대교를 건너 경부고속도로를 찾아갔다. 버스는 그 길이 가락동을 거친 뒤 서울의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가면 된다는 것을 잘알고 있었다.
잠실대교를 건널 때 차창에 담긴 서울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나는 “서울이여, 안녕”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하게 슬픔이 밀려들었다. 건조하고 메마른 도시 서울을 떠날 때도 안녕이라고 말하면 떠나는 길이 슬퍼진다. 서울은 슬픔과 어울리는 도시가 아니니 그 슬픔이 서울에서 오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니 그 슬픔은 안녕이란 말에서 온 것이다. 안녕이란 말은 말 속에서 이미 슬픔이 배어있는 말이다. 그래서 아무리 메마르고 건조한 곳이라고 해도 그곳을 앞에 놓고 안녕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슬퍼진다. 그러니 건조하고 메마르고 차갑게 작별을 고하고 싶다면 절대로 안녕이라고 말해선 안된다. 하지만 난 이미 서울에게 안녕이라고 말한 뒤였다. 때로 우리는 말하고 난 뒤에야 깨닫는다. 나는 안녕이란 말 속에 이미 슬픔이 배어있다는 것을 그 말을 속삭여 보고야 깨달았다. 그 슬픔은 먼길을 떠날 때만 비로소 감지가 된다. 그 슬픔이 감지된 것을 보면 부산길은 먼길이 분명하다.
버스는 톨게이트를 지나친 뒤에도 쉬지 않고 달렸다. 하지만 옆의 차로에선 차들이 상당히 밀리고 있었다. 버스가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었던 것은 버스전용차로 덕분이기도 했지만 버스는 몇 대 안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옆의 차로를 보니 승용차들은 3개의 차선을 점유하고도 끊임없이 밀리고 있었다. 차로 3개를 내주어도 밀릴만큼 승용차는 많다. 차로 한 대만 차지하면 씽씽 달릴 수 있을 정도로 버스는 그다지 많지 않다.
멀리 하늘의 구름이 팔을 좌우로 펼쳐들고 있었다. 사진은 그 느낌을 담아내지는 못했다. 추수를 끝낸 논엔 무엇인가를 말아놓은 둥근 흰 덩어리들이 눈에 띈다. 볏짚을 말아서 포장해놓은 것이다. 볏짚 원형 곤포 사일리지라고 한다는 말이 있다. 한번 들어선 아무도 모를 듯하다. 가축의 겨울 사료용으로 볏짚을 포장해 놓은 것이다.
갑자기 길가에서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른다. 아마도 논이나 밭에 불을 놓았나 보다. 불놓기는 벌레들을 잘 구워 땅에게 대접하는 농부의 가을 의식이거나 아니면 봄의식이다. 하이에나도 아닌데 생을 마친 벌레들을 날것으로 먹어야 했던 땅은 이때 맛있게 구워진 벌레들로 육질을 맛본다.
서울을 출발하여 2시간여를 달린 끝에 금강휴게소에 도착했다. 잠시 쉬어간다고 했다. 시간은 오후 1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휴게소에서 내려다 보이는 금강변을 따라 잠시 걸었다. 집을 나설 때 나를 배웅했던 아침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가을 햇볕이라 그런지 오후 1시인데도 많이 기울어진 듯 보였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햇볕을 따라 고개를 약간 비스듬히 기울여 각도를 맞추고 금강변에서 맛보는 잠깐의 오후를 즐겼다.
서울을 떠날 때의 하늘은 사실 뿌연 하늘이었다. 그러나 중간의 하늘은 아주 구름이 좋았다. 고저의 변화없이 일직선으로 달리는 산이 나타났고, 대신 그 위의 구름이 고저를 그리며 산의 윤곽을 대신하고 있었다.
뿌엿던 서울 하늘이 벗겨지고 한동안 아주 화창한 하늘이 이어졌으나 버스가 구미쯤으로 가까이 다가서면서 하늘의 구름은 다시 짙게 변했다. 하늘이 그 짙은 구름의 층에 구멍을 내고 그 구멍으로 빛을 빗줄기처럼 쏟아내고 있었다. 세례는 물로 씻어내는 것이지만 빛의 세례도 좋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뜨는 해를 맞으려 동틀 무렵의 산에 오르는 것도 알고 보면 빛의 세례로 마음을 씻어내고 싶은 욕망 때문인지 모르겠다.
버스는 곧장 부산으로 가질 않고 울산으로 들어갔다. 옥현주공아파트 앞이라는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사람들을 내려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그리고 울산 시외버스 정류장에도 들렀다. 이어 다시 부산으로 향한다. 울산을 지나칠 때 야음동이란 동네 이름을 보았다. 낮에 가도 야음을 틈타서 가는 느낌이 드는 동네일까. 그 방향으로 가는 차들이 야음을 틈타 살금살금 가는 듯이 보이지는 않았다. 시간은 오후 4시를 지나고 있었다.
드디어 부산 해운대에 도착했다. 창밖에선 해가 지고 있었다. 시간은 다섯 시였다. 여섯 시간 반이 걸렸다. 배웅은 아침이 했는데 부산에서 나를 마중나온 것은 저녁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미리 알아둔 1001번 좌석버스를 탔다. 내 옆에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서고 그 중 여자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둘이 계속 대화를 나누면서 버스를 타고 간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노라니 부산말은 끝을 모두 가나다로 끝낸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가 누가, 너가 알고 있나, 모른다… 뭐, 이런 식이랄까. 남자가 여자에게 물었다. 너네 언니 몇 살이가. 원숭이띠다. 그래서 그렇게 잔대가리를 굴리나. 또다른 대화도 있었다. 남자가 먼저 시작했다. 롯데 백화점으로 갈 걸 그랬다. 와? 빽사려고, 빽. 와, 그걸 사려하는데. 빽. 담에 사면 되지 않나. 빽. 남자는 여자가 무슨 얘기를 해도 그저 빽이란 단 한마디밖에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제일 힘들었던 것은 그 대화를 들으면서 내 입가로 삐져나오려는 웃음을 참는 것이었다.
중간에서 버스에서 방송이 나왔다. 다음이 부산진 역이란다. 나는 부산역에서 내려야 한다. 나는 옆에 서 있는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부산진역과 부산역을 같은 건가요. 아주머니가 답했다. 아니라예. 어디서 내릴 건데예. 내가 부산역이라고 답했더니 아주머니가 말했다. 한참 남았어예. 부산진역을 지나자 버스의 방송은 다음이 부산역이라고 했다. 뭐야, 이거, 한참 남았다고 하더니. 난 부랴부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론 부산진역의 다음 역인 부산역에서 곧바로 내렸다. 그리고 17번 버스로 갈아탔다.
지명들을 귀담아 들으면서 나는 17번 버스를 타고 송도로 가고 있었다. 내가 내린 곳은 남부민초등학교였다. 이제 거리엔 저녁이 아니라 어둠이 잔뜩 밀려와 있었다. 길 건너편으로 시커멓게 입을 벌린 골목들이 몇 개 보였다. 그곳 중 하나를 골라 들어가면 나를 바다로 안내할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길을 건너 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은 허리를 이리저리 비틀며 바다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허리를 트는 품새로 보아서 이 곳의 골목은 여자임에 분명했다.
골목의 중간쯤에서 지붕 위를 걷던 고양이를 만났다. 경계의 몸짓이 완연했지만 카메라를 들이대자 사진 한장 찍는 것은 협조해 주었다.
골목의 끝은 마치 빛으로 만들어놓은 투명 문과 같았다. 나는 그곳을 열고 나가 송도 해변을 찾아갔다. 길을 잘못들어 들어갔던 곳을 다시 나오기도 했지만 그렇게 크게 헤매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남항의 방파제둑 위에 섰다. 멀리 보이는 산이 봉래산이다. 시간은 여섯 시였다. 약속 시간은 일곱 시이다. 아직 한 시간의 시간이 남아있다. 서울을 떠난지 무려 여덟 시간 반만에 나는 해운대를 거쳐 송도에 왔다. 원래는 아침 일찍 도착하여 해운대 바다를 보고 그러다 송도로 자리를 옮긴 뒤 송도 암남공원의 꽃들을 카메라에 담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지만 부산은 그렇게 가까운 곳이 아니었다. 아침에 떠난 나를 안아준 것은 송도 해변에선 까맣게 밀려온 밤이었다. 바닷 바람이 거세게 내 곁을 지나갔다. 모자를 벗겨갈 듯하여 불안했다. 난 남은 시간의 송도 해변을 잠시 어둠과 바람 속에서 쏘다녔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그곳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8 thoughts on “길의 기록 – 동서울에서 부산의 해운대와 송도까지”
내일 일찍 부산으로 여행 갈 계획을 세우며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님 블로그를 발견하곤 아무 생각없이 글을 읽어 내려가다보니 제가 꼭 님의 여정에 동행을 한 기분이네요. 중간에 빵 터져서 침대위에서 뒹굴러도 보고 어떤 부분에선 스윽 내리기도 했지만 사진도 사실적으로 묘하게 빠져들고 즐거운 포스팅이었습니다!부산 잘다녀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가는 부산 여행 갈만하더군요.
가장 좋은 것은 역시 저렴한 버스비인 거 같아요.
흠, 심야버스로 내려가면 새벽 6시경 도착하는데
부산 돌아보고 다시 심야버스로 돌아오면 여관비도 아낄 수 있지만
대신 버스 차창밖의 풍경은 포기해야 해요.
낮에 가서 아낀 버스비로 하루 자는게 좋을 거 같아요.
너무 오랜만 아닌가요
여기에 오려면 수만리를 돌아야 와지는 이유를 저도 울엄마도 산신령도
모르신답니다.
아직 파악! 치어나는 웃음 여전하신가요? 명창님?
명창? ㅋㅎㅎ
다다음 주에 모임있을 예정이 꼭 나오세요. 어머님 모시고.
여기 오려면 수만리 돌아와야 하는 건 이 동네가 오블 동네가 아니고 제가 오지에 마련해놓은 나홀로 집이라서 그래요.
뜰기님도 보고 싶네요.
아이고 힘들어라~ 내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힘들게 달려온 것 같네요. ㅋㅋ
골목은 여자임이 분명했다.^^
그래도 참 용케 길을 헤매지 않고 바닷가로 내려오셨네요.
갑자기 뒤에서 사람 놀래키는 재주를 가진 동원님!!!
여행하면서 버스 속에서 이렇게 사진을 왕창건지는 경우도 드문 것 같아요. 지루하지는 않았어요. 아무래도 좋은 사람들이 기다린다는 설레임 때문이었던 듯.
저 볏짚 태우는 연기와 지는 노을과 버스 창문틈으로 들어오는 그 냄새를 맡으면 그냥 가슴 한구석이 아립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어디에서 맡아도 똑같은 느낌으로 다가 옵니다.
그리고 부산에는 ‘라’도 많습니다. ~카더라, ~있더라 등 … ‘동사+더라’로 서울말로 ‘~ 것 같아요’의 느낌 정도!
동서울 터미널은 출장 때 가끔 심야버스 타러 가는데요. 직원이 술한잔 하고 내려가라 하면 11시 반차 예매해 놓고 근처에서 마시다가 심야버스 타고 내려오곤 했습니다. 잠결에 기사분이 곡예운전하는 것보고는 이제는 못하겠습니다.
그럼 부산말은 가나다라로 거의 마무리되는 건가요.
저도 심야버스 한 번 이용할까 했는데 그럼 그건 삼가야 겠네요. 심야에 잠자다 저 세상으로 가면 좀 곤란하기는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