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한번 다녀오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항상 걸림돌이 된 것은 비행기값이었다.
비행기값이라고 하니까 엄청난 오해를 부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물론 비행기를 한 대 구입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냥 도쿄까지 갔다 오는 항공권으로 만족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항상 그 가격이 딸의 한달치 월세랑 맞먹었고
그렇게 비행기값이 월세랑 등호를 그으며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면
그때부터 비행기값은 비행기를 한대 사는 돈처럼
엄청난 장벽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도쿄로 딸보러 가자고 비행기를 한 대 살 수야 없는 노릇이지.
그래서 딸을 보고 싶은 마음은
제주항공이 도쿄에 취항하여
20만원 안짝에 도쿄까지 오갈 수 있을 때까지 참아보자는 방향으로 굳어있었다.
그러던 내가 급작스럽게 도쿄로 떠나게 된 것은
동생이 도쿄에 가서 딸 한 번 보고 오라고 내게 마련해준 항공권 덕택이었다.
동생에게 도쿄에 가면 뭘 사다줄까하고 물었더니
토토로 열쇠 고리를 사다 달라고 했다.
딸이 사는 동네 주조에는 열쇠 고리를 파는 가게는 있었지만
토토로는 구경도 할 수 없었다.
딸은 이케부쿠로에 가면 선샤인 시티라고 있는데 거기엔 있을 거라고 했다.
도쿄에 온지 닷새째 되는 날, 이케부쿠로를 찾았다.
집을 나선 것은 오후 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이었다.
딸은 항상 다니는 길이 정해져 있지만
나는 집을 나서 어디를 갈 때면 그때마다 가는 길을 달리했다.
오늘 들어선 길에선
내 시선이 어느 집의 2층 창앞을 한참 동안 기웃거렸다.
그냥 창이었으면 무심히 지나갔을 창을
촘촘히 놓인 화분이 잠시 끌어안고 놓아주질 않았다.
꽃이 한창일 때는 이 길을 가는 누구나 화사한 마음으로 이 앞을 지났으리라.
이 집은 집 자체만으로도 눈길을 끌었음직하다.
주변의 현대식 건물과 달리 오래된 연륜을 가진 듯 보였다.
우선 지붕이 한겹을 더 겹쳐 이중으로 올려놓은 했다.
창문도 고풍스런 느낌에서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마당 한켠의 무성한 덩굴식물이었다.
덩굴식물이 타고 올라간 나무는 죽은 나무인지 산 나무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 정도면 마당에 나무와 덩굴식물을 가꾸어 놓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나무와 덩굴식물을 꽉꽉 눌러담아 놓은 느낌이다.
마당도 정글이 될 수 있다.
아무래도 이 집은 마당에만 담아놓기에는 초록과 꽃이 넘쳤나 보다.
넘친 초록과 꽃은 담벼락을 따라 늘어선 화분으로 고스란히 담겼다.
그러니 초록과 꽃이 마당을 넘쳐나는 집들은 슬슬 화분을 준비해야 한다.
새로운 길로 마을을 가던 걸음이
어느 새 매일 다니던 길로 접어들었다.
이 길은 사실은 시장길이다.
그 길에 작은 절이 하나 있는데
한문으로 끝나는 이름을 보면 끝에 절사(寺)자를 붙여놓고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머리 속에 박혀있는 절의 이미지와 동일하게 겹쳐지지는 않았다.
더구나 문앞에 맹견주의라는 문구까지 걸려 있어
안으로 들어가 보기는 쉽지가 않았다.
오늘도 지나가다 그냥 그 절을 올려다 본다.
담위로 높다랗게 키를 키운 나무가 브레이크 댄스에 열심이다.
주조역의 북쪽 입구로 들어가 건너편으로 건너간다.
마침 플랫폼에 들어와 있던 열차가 막 떠나고 있다.
열차의 다음 역은 아카바네역이다.
그러니 일단 그곳에서 다시 멈출 것이다.
그 뒤는 어떻게 되는지 나로선 알 수가 없다.
주조역을 자주 이용하긴 했지만
이곳에서 열차를 타고 세 정거장 이상을 가본 적이 없다.
그것도 지금 열차가 가는 방향으로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
항상 이 반대 방향으로 두 정거장 만에 열차를 내려
다른 열차로 갈아타곤 했었다.
여기서 두 정거장밖에 되지 않는 그 역은 바로 이케부쿠로이다.
오늘 또 다시 내가 가려고 하는 역이기도 하다.
어느 하루, 밤에 왔던 이케부쿠로의 거리를 오늘은 낮에 왔다.
밤에 왔을 때 건물들이 장벽처럼 길을 둘러싸고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낮에 와도 그 느낌은 여전하다.
선샤인 시티를 찾는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다행히 건물이 높아 거의 어디서나 보였다.
가운데의 높다란 흰건물이 선샤인 시티이다.
조금 우회를 하긴 했지만 무사히 그 옆에 있는 공원까지 갔다.
공원에는 나무가 무성했고 마치 폭포를 눕혀놓은 듯한 조형물도 있었다.
공원의 이름은 히가시 이케부쿠로 중앙공원이다.
이케부쿠로의 동쪽에 있는 공원이란 뜻이다.
커다란 나무들이 줄맞추어 서 있다.
누가 너네들보고 4열 종대로 모이라고 소리친 건 아니지?
건물들이 높은 키를 뽐낸다.
건물들은 키를 속성재배한다.
재배가 끝나면 건물의 키는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나무는 키를 속성재배하지 않는다.
언제나 햇볕이 따뜻한 편안한 곳을 꿈꾸며
건물의 이름을 선샤인 시티라고 지었겠지만
정작 우리의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나무 밑에 앉았을 때이다.
나무는 굳이 이름짓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 푸근하다.
히가시 이케부쿠로 공원의 한켠에선
노인들이 장기에 열심이다.
장기 두는 재미와 구경하는 재미가 같이 자리하고 있다.
장기는 구경하며 훈수두는 재미가 더 크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실제로도 그런지 구경하는 사람이 더 많기는 했다.
참 높다.
옛날의 우리는 펼쳐져서 살았는데,
요즘의 우리는 차곡차곡 겹쳐져서 살아간다.
선샤인 시티라는 글자는 확인했는데
들어가는 입구가 여러 곳이라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지 잠시 헷갈렸다.
사람들이 한가한 곳으로 들어갔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나 보다.
지하로 들어가자 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였다.
근데 내가 착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생긴 것이 비슷해서 그렇지 1년내내 여기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번 스쳐지나가는 여행객의 판단은 믿을 것이 못된다.
동생이 사다달라고 한 토토로 열쇠고리 파는 곳은
지하 3층까지 내려가야 했다.
영어가 잘 통하질 않아서
점원과는 그냥 서로 단어를 주워섬기면서 말을 했다.
돈계산하기 귀찮아서 카드를 사용했다.
선샤인 시티 돌다가 소녀시대 노래를 들었다.
한국어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말 한국 걸그룹들이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건가.
하지만 한국의 걸그룹 노래는 유감스럽게도 나도 잘 모른다.
선샤인 시티에서 나오자 거대한 고가도로가 눈앞을 가로막고 서 있다.
고가도로는 차는 높이 받들지만
사람들은 모두 그 밑으로 수구리고 지나가도록 만든다.
기계 문명의 숭배자같으니라구.
고가도로만 있었다면 선샤인 시티를 빠져나온 나의 기억은
그 거대한 구조물에 대한 억눌림으로 마감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고가도로의 옆엔 고가도로의 난간에 닿도록
높다랗게 키를 키운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나무는 고가도로가 억누른 그 현대 문명의 중압감 앞에서
내가 허리를 꼿꼿하게 펴주게 하고 남음이 있었다.
나는 아무런 중압감없이 고가도록 밑의 횡단보도를 건넜다.
선물은 샀지만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엔 섭섭하다고 느끼는 순간,
이미 발걸음이 어느 골목으로 들어선다.
공원같아 보이는 곳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가보니 절이다.
한문을 우리 식으로 그대로 읽으면 본립사(本立寺)란 이름의 절이다.
본래는 서 있는 절이었다는 뜻인가.
그런 뜻은 아니고 아니고 아마도 본자는 근본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렇다면 세상과 삶의 근본을 세우는 엄청난 의미를 가진 절이다.
일본식으로는 혼류지라고 읽는 듯하다.
바로 옆에 나무가 많은 공터가 있었는데
이 절을 통해 돌아서 들어갈 수는 있었지만
정작 그 공터로 곧장 들어가는 길은 커다란 철재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절이라고는 했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절의 이미지와는 크게 달랐다.
동생과 통화하면서 묘지봤냐는 얘기를 들었는데 설마했었다.
도쿄와 같은 대도시에 무슨 묘지가 있겠냐 싶었기 때문이다.
혼류지에 들어와서 동생이 말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거의 절의 대부분을 묘지가 가득 메우고 있었다.
비석과 나무로 된 명패 비슷한 것들이 너무 많아
이제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도
무덤을 같이 쓰는 처지가 되었나보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역시 우리 나라와는 많이 다르다.
우리는 죽으면 자연으로 돌려보내는데
여기 일본에선 죽음을 여전히 산자의 곁에 가까이 두는 구나.
하지만 산자의 곁에 두었어도 묘지는 죽은 자의 공간인지
절에서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는 사람들 이외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눈에 띄지 않았다.
그 적막한 죽음의 공간엔 적요가 낮게 깔려 있었다.
혼류지의 문이다.
보통 한국에서 절은 부처님이 계신 곳이지만
일본의 절은 그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묘지 때문인지
마치 죽음이 모여 쉬고 있는 곳 같았다.
문을 들어서면 죽음이 자욱했고,
문을 나서면 삶들이 분주했다.
이케부쿠로역 바로 앞의 길에선
길이 건물로 밀봉되어 있는 느낌이 있어 답답했는데
조금 떨어진 이곳에선 길가로 늘어선 키큰 가로수 때문인지 그 답답함이 덜했다.
중심에 가까워지면 갇히며, 조금 벗어나면 숨통이 트인다.
다시 이케부쿠로역앞이다.
역시 밀봉된 거리 같다는 느낌은 여전하다.
멀리 보이는 흰색의 높은 건물은 건물이 아니고 사실은 거대한 굴뚝이다.
굴뚝의 정체를 알려면 그 밑의 건물을 알아야 한다.
그 밑의 건물은 토시마 쓰레기 소각장 건물이다.
구경하지는 못했다.
도심 한가운데 쓰레기 소각장이 있다니 조금 놀라웠다.
보궐선거가 있나 보다.
누군가 휴대용 확성기에 깃발 하나만 들고 열심히 유세중이다.
우리 말에 단기필마란 말이 있는데
정말 깃발하나 들고 확성기를 말삼아 홀홀 단신으로 나온 사람같다.
지나는 사람들은 전혀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다.
이국의 낯선 나그네만이 한참 동안 알아듣지도 못하는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다시 주조역이다.
아마도 내가 도쿄에 와서 가장 친숙하게 낯을 익힌 곳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이 주조역이 될 것이다.
역의 주변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샅샅이 동네 구경을 할 때
항상 내가 마치 자장이라도 가진 동네의 중심처럼 돌아가곤 했던 역이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 그 소박한 규모가 좋았다.
역앞의 작은 잔디밭에선 사람을 본 적이 없어 들어가면 안되는 곳인가 했었는데
오늘 보니 젊은 엄마가 아이들 데리고 들어가서
그곳에서 무엇인가 하고 있었다.
딸의 집으로 들어오다 보면
작은 소공원이 하나 있다.
공원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민망할 정도로 작아서
아무래도 소녹지라고 부르는 것이 적당할 공간이다.
이 소녹지를 오갈 때마다 가장 눈에 띈 것이 이 꽃이다.
한국의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한강으로 나가다가 어느 집에서 몇 번 보았던 꽃이다.
이름은 천사의 나팔이라 부른다.
영어 이름은 Angel’s Trumpet이어서 그 나팔이 사실은 트럼펫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 꽃을 일러 부부젤라꽃이라 부르곤 했었다.
보기와 달리 독성이 있다.
독성은 있는지 몰라도 부부젤라처럼 시끄럽지는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늘은 이 꽃도 한 장 찍어두었다.
4 thoughts on “이케부쿠로를 어슬렁거리다 – 9일간의 도쿄 여행 Day 5”
처음 하신 도쿄 여행에서 사진에 담고 올리신 생각이
여느 초행길의 여행기 같지 않습니다.
마치 남들이 분주히 오가는 도쿄의 유명지, 중심지는 안중에 없다는 식으로
도쿄의 변두리 속살을 관조하는 느낌이 새롭습니다.
은근히 여행 고수십니다.
해외여행만큼 손쉬운 여행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사는 건 비슷해도 사는 모습은 다르니 눈에 아주 잘들어오는 거 같아요.
익숙한 것에서 새로움을 보는 건 정말 어려운 거 같아요.
그래서인지 해외 여행기는 좀 날로 먹는 느낌이 들어요.
/키를 키운 나무가 브레이크 댄스에 열심이다/
김동원님의 표현에 나무가 다르게 보이네요^^
춤을 추는 나무는 정말 키가 잘 클것 같아요
이쁜따님을 만나러 가셔서 정말 풍요로운 사진과 여행기^^
잘 읽고 가요~~~~
팔을 꼬불꼬불 구부리는게 그 브레이크 댄스잖아요.
가지를 어떻게 저렇게 꼬불꼬불 구부리는지…
마치 거대한 분재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또 한주 시작이네요. 좋은 한주 되세요.